| 개역개정]제84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주의친절한팔에405.*저높은곳을향하여491.*구주를생각만해도85.*주안에있는나에게370.*주와같이길가는것430.*내주를가까이338.*내구주예수를더욱사랑314.*주음성외에는446.*내맘의주여소망되소서484.*주예수님내맘에오사286.*주예수내맘에들어와289.*주사랑하는자다찬송할때에249. **주나의모든것되시도다.*내마음엔주를향한사랑이.*나의말에귀를기울이사.*나약해있을때에도.*가는곳이어딜까.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보좌에서 중보하시며, HS으로 내주하시는 JC)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현세)와 영화(내세)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지고지선의 진복=하나되신Q자신)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 How lovely is your dwelling place Almighty Lord There's a hunger deep inside my soul Only in your presence, are my heart & flesh restored, how lovely is your dwelling place ((Maranatha Singers)) --------------- [NIV]제84Psalm 84 For the director of music. According to gittith. Of the Sons of Korah. A psalm. 1 How lovely is your dwelling place, O LORD Almighty! 2. My soul yearns, even faints, for the courts of the LORD; my heart and my flesh cry out for the living God. 3. Even the sparrow has found a home, and the swallow a nest for herself, where she may have her young -- a place near your altar, O LORD Almighty, my King and my God. 4. Blessed are those who dwell in your house; they are ever praising you. Selah 5. Blessed are those whose strength is in you, who have set their hearts on pilgrimage. 6. As they pass through the Valley of Baca, they make it a place of springs; the autumn rains also cover it with pools. 7. They go from strength to strength, till each appears before God in Zion. 8. Hear my prayer, O LORD God Almighty; listen to me, O God of Jacob. Selah 9. Look upon our shield, O God; look with favor on your anointed one. 10. Better is one day in your courts than a thousand elsewhere; I would rather be a doorkeeper in the house of my God than dwell in the tents of the wicked. 11. For the LORD God is a sun and shield; the LORD bestows favor and honor; no good thing does he withhold from those whose walk is blameless. 12. O LORD Almighty, blessed is the man who trusts in you. ----------- Longing for the Temple Worship. To the Chief Musician; set to a [a]Philistine lute. A Psalm of the sons of Korah. 84 1 How lovely are Your dwelling places, O Lord of hosts! 2 My soul (my life, my inner self) longs for and greatly desires the courts of the Lord; My heart and my flesh sing for joy to the living God. 3 The bird has found a house, And the swallow a nest for herself, where she may lay her young—Even Your altars, O Lord of hosts, My King and my God. 4 Blessed and greatly favored are those who dwell in Your house and Your presence; They will be singing Your praises all the day long. Selah. 5 Blessed and greatly favored is the man whose strength is in You, In [b]whose heart are the highways to Zion. 6 Passing through the Valley of Weeping ([c]Baca), they make it a place of springs; The early rain also covers it with blessings. 7 They go from strength to strength [increasing in victorious power]; Each of them appears before God in Zion. 8 O Lord God of hosts, hear my prayer; Listen, O God of Jacob! Selah. 9 See our shield, O God, And look at the face of Your anointed [the king as Your representative]. 10 For a day in Your courts is better than a thousand [anywhere else]; I would rather stand [as a doorkeeper] at the threshold of the house of my God Than to live [at ease] in the tents of wickedness. 11 For the Lord God is a sun and shield; The Lord bestows grace and favor and honor; No good thing will He withhold from those who walk uprightly. 12 O Lord of hosts, How blessed and greatly favored is the man who trusts in You [believing in You, relying on You, and committing himself to You with confident hope and expectation]. Footnotes Psalm 84:1 A technical musical term, meaning uncertain. Psalm 84:5 Lit their. Psalm 84:6 Possibly a kind of plant. --------------- RSV / NRSV, Psalms, Chapter 084 To the choirmaster: according to The Gittith. A Psalm of the Sons of Korah. //To the leader: according to The Gittith. Of the Korahites. A Psalm 84:1 How lovely is thy dwelling place, O LORD of hosts! 84:1 How lovely is your dwelling place, O LORD of hosts! 84:2 My soul longs, yea, faints for the courts of the LORD; my heart and flesh sing for joy to the living God. 84:2 My soul longs, indeed it faints for the courts of the LORD; my heart and my flesh sing for joy to the living God. 84:3 Even the sparrow finds a home, and the swallow a nest for herself, where she may lay her young, at thy altars, O LORD of hosts, my King and my God. 84:3 Even the sparrow finds a home, and the swallow a nest for herself, where she may lay her young, at your altars, O LORD of hosts, my King and my God. 84:4 Blessed are those who dwell in thy house, ever singing thy praise! [Selah] 84:4 Happy are those who live in your house, ever singing your praise. Selah 84:5 Blessed are the men whose strength is in thee, in whose heart are the highways to Zion. 84:5 Happy are those whose strength is in you, in whose heart are the highways to Zion. 84:6 As they go through the valley of Baca they make it a place of springs; the early rain also covers it with pools. 84:6 As they go through the valley of Baca they make it a place of springs; the early rain also covers it with pools. 84:7 They go from strength to strength; the God of gods will be seen in Zion. 84:7 They go from strength to strength; the God of gods will be seen in Zion. 84:8 O LORD God of hosts, hear my prayer; give ear, O God of Jacob! [Selah] 84:8 O LORD God of hosts, hear my prayer; give ear, O God of Jacob! Selah 84:9 Behold our shield, O God; look upon the face of thine anointed! 84:9 Behold our shield, O God; look on the face of your anointed. 84:10 For a day in thy courts is better than a thousand elsewhere. I would rather be a doorkeeper in the house of my God than dwell in the tents of wickedness. 84:10 For a day in your courts is better than a thousand elsewhere. I would rather be a doorkeeper in the house of my God than live in the tents of wickedness. 84:11 For the LORD God is a sun and shield; he bestows favor and honor. No good thing does the LORD withhold from those who walk uprightly. 84:11 For the LORD God is a sun and shield; he bestows favor and honor. No good thing does the LORD withhold from those who walk uprightly. 84:12 O LORD of hosts, blessed is the man who trusts in thee! 84:12 O LORD of hosts, happy is everyone who trusts in you. ========== 다윗의 이름이 이 시편 표제 안에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가 이 시편의 저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시편이 그의 탁월한 기질을 매우 많이 풍기고 있으며, 그에 의해 지어진 제63편의 시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에 의해 그의 성을 떠나도록 강압받았을 때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그곳에 있지 못하게 된 것을 탄식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곳이 궁성이었기보다 거룩한 성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편은 하나님과 그와의 교제를 바라는 은혜로운 영혼의 경건한 영감을 포함하고 있다. 비록 표제가 붙어 있지 않을지라도 이는, 안식일이나 우리의 엄숙한 집회일을 위한 시편이나 노래로서 간주되는 것이 알맞다. 시편 저자는 여기에서 큰 믿음을 갖고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1. 하나님의 규례에 대한 그의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1) 그것에 대한 그의 존중(1). (2) 그것으로 향한 그의 열망(2-3). (3) 그것을 즐긴 자들의 행복에 대한 그의 확신(4-7). (4) 그 규례를 향유함에 대한 큰 행복(10). 2. 규례의 하나님께 대한 그의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1) 하나님께 향한 그의 열망(8-9). (2)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11). (3)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의 행복에 대한 그의 확신(12). 이 시편을 노래하는 가운데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께 대해 가졌던 것과 같은 열렬한 믿음을 지녀야 한다. 그러면 노래하는 것이 매우 즐거워진다. ===========내마음 그리스도의 집, 공중예배의 즐거움(시 84:1-7) 시편 저자는 여기에서, 공중의식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강제로 제지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그러한 예배의 가치를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다음을 주목하자. Ⅰ. 거룩한 제도 속에서 그가 본 놀라운 아름다움(1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어떤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의 성소에 천사들이 임재하는 것으로 인해, 여기에서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 부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장막에는 쉐키나(하나님의 엄위)가 뒤따랐고(어떤 사람들의 견해대로), 그 그룹들로써 상징되었던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그 장막은 그의 것이다. 그 장막에는 백성들이 모이는 여러 뜰이 있고, 장막 자체가 한 개의 성소와 한 개의 지성소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개의 장막(원문은 “당신의 장막들”)으로서 언급되어 있다. 이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진실로 성별된 모든 사람이 보기에 그것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은혜로운 영혼은 훌륭한 것,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거룩함 속에 있는 그리고 거룩한 역사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본다. 장막은 초라한 거처였지만, 외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거룩한 법령을 덜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은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거룩함의 아름다움은 영적인 것이고, 그 영광은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Ⅱ. 공중규례 또는 오히려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을 다시 즐기기를 바라는 열망(2절).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그것은 간절한 열망이었다. 육과 혼과 영이 그것에 동의했다. 그는 그 반대의 생각이 하나라도 일어나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격렬한 열망이었다. 그것은 야망에 또는 탐욕에 또는 방탕에 젖어 있는 자의 열망과도 같았다. 그는 Q의 뜰에 다시 그의 자리를 얻게 되기를 사모했고, 부르짖었으며, 그가 쇠약해질 정도로 끈질기게 졸라대었고, 지연되는 것을 거의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몹시 바라면서 기도로써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여호와의 뜰 자체가 아니었다. “내가 주를 알고, 다시 주와 교제를 나눌 수 있다면!”(요일 1:3) 만일 우리가 규례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 규례는 헛된 것이다. Ⅲ. 하나님의 제단에 인접해 있는 건물 안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작은 새들의 행복에 대한 그의 질투(3절). 이것은 하나님의 제단에 대한 그의 사모하는 마음을 훌륭하고 놀랍게 나타낸 표현이다.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이 작은 새들, 그리고 다른 새들도 본능과 자연적인 지시를 따라 스스로 집이나 나무에 거처를 마련하며, 또한 어린새끼와 함께 안식하기 위해서 둥지를 튼다. 다윗은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전 뜰 주위에 있는 건물 안에 있다고 추측하고 있으며, 그 자신도 그들과 함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제단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궁전에서 살기보다는 오히려 그 제단 가까이에 있는 새 둥우리에서 살기를 원했다. 그는 때로 “날아가서 광야에 거할 비둘기 날개”를 원했다(55:6).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궁정으로 날아가 숨기 위해 참새의 날개를 원하고 있다.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같이 밤을 새운다”는 것은 매우 우울한 형편과 심령에 대한 묘사일지라도(102:7), 다윗은 진정 하나님의 제단 가까이에 있기 위해 기꺼이 그것을 그의 몫으로 취하려 했다. 많은 군중과 함께 죄를 섬기기보다 고독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낫다. 참새라는 말은 어떤 작은 새를 의미하는데(나의 추측으로는), 다윗 시대에 음악이, 즉 성악과 기악이 그 신성한 봉사에 매우 많이 소개되었을 때, 하모니를 이루기 위해 그들은 성전 뜰 주위에 새장을 매달아 놓고 새가 노래하게 했던 것 같다(왜냐하면 우리는 새가 소리를 발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주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4:12). 그리고 다윗은 이들의 행복을 부러워하고 있으며, 기꺼이 그들과 자리를 바꾸려 하고 있다. 다윗이 제단 위를 날아다니면서 단지 하나님의 궁정을 잠깐 보는 새들의 행복이 아니라, 거기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보금자리를 만든 새들의 행복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라. 다윗은 “하룻밤 지내기 위해 들어오는 나그네처럼”, 하나님의 집에 묵는 것으로 충분하게 여기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집을 그는 그의 보금자리, 그의 집으로 삼으려 했다. 즉, 여기에서 거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이 새들이 거기에서 그들 자신을 위해 둥우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그 새끼들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주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뜰 안에 자리잡고 있는 자들은 자기 자녀들 역시 하나님의 집에, 그의 성곽 안에 자리와 이름 잡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들이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새끼를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주여, 주께서는 주의 섭리로써 새들에게 그들의 천성에 합당하게 보금자리와 안식처를 마련해 주셨고, 그들은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보금자리이며, 나의 안식처인, 떠돌이새가 그 둥지를 그리워하는 것만큼 내가 원하는 주의 제단에, 나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주여, 주의 아기들보다 주의 새들에게 더 나은 것을 마련해 주시겠습니까?”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이, 나는 하나님의 제단을 떠나 유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제단은 나의 마땅히 더할 처소이기 때문입니다”(잠 27:8). “나는 다시 내 장소로 돌아오기 전에는 결코 편치 못할 것입니다.” 그 영혼이 하나님 안에 편히 있어 휴식하고 있는 자들은 그의 규례 가까이에 정주하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성막에는 두 개의 제단이 있었는데, 하나는 제물을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분향을 위한 것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뜰에 거하기를 원하는 가운데, 이 두 가지를 모두 주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속죄와 중보를 주시해야 한다. 끝으로, 어떻게 그가 이러한 청원에서 하나님을 주목하고 있는가를 관찰하자. “주는 만군의 여호와,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가난하며 고통당하는 신하가 그의 왕에게서가 아니고 어디에서 보호를 구하겠는가? 더욱이 그 “백성이 저희 하나님”에게서 구하지 아니하겠는가?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시다. 그와 그의 제단을 지키면서 살고 죽도록 하자. Ⅳ. 하나님의 제단에서 시중들 자유를 갖고 있는 사역자들과 백성들의 행복에 대한 찬사를 보라. “저희가 복이 있나이다. 언제 내가 그 축복의 기쁨으로 돌아가겠습니까?” 1. 장막 주위에 거주하면서 자기의 반차대로 그 봉사에 종사하는 사역자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복이 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즉 거기에서 편히 쉬고 거기에서 일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4절). 그는 그들이 항상 봉사하도록 감금당하고 있으며, 영구적으로 따분한 일을 맡아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하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이 세상의 가장 큰 방백보다도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탐욕하는 자를 축복하는 자들이 있으나, 그는 신앙적인 자를 축복하고 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그것은 그들이 좋은 임금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즉 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 각 제물의 일부를 받아 그들의 식탁을 항상 훌륭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선한 사업을 하기 때문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그리고 지상 위에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끊임없이 찬송하는 일 가운데 있다. 이것을 위에 있는 그의 집에 적용시켜 보라. 거기에 거하는 자들, 곧 천사들과 영화롭게 된 성도들에게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밤이나 낮이나 그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우리가 즐거운 영원을 그 안에서 보내기를 바라는 그 복된 일에 우리의 많은 시간을 사용하도록 하자. 2. 그 백성들, 그 나라의 거민들에게 복이 있다. 비록 그들은 제사장들처럼 하나님의 집에 항상 거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들의 절기, 즉 세 번의 큰 절기로 정해진 때에는 그것에 접근할 자유를 얻는다. 그 절기 때에, 모든 남자들은 거기에 참석할 의무가 있었다(신 16:16). 다윗은 이것을 부담으로 생각지 않았고, 그들에게 고역을 치르게 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처럼 참석할 수 있는 자들의 행복을 부러워하고 있다(5-7절). 그가 복된 자로 표명한 자들이 여기에 묘사되어 있다. (1) 그들은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에게 헌신하는, 그 뿌리깊은 원리로부터 나온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이다. “주께 힘을 얻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주를 자기 힘으로 삼고 강하게 주를 의지하는 자는, 주의 이름을 자기의 견고한 망대로 삼고, 그리로 달려가 안전함을 얻는(잠 18:10) 자는 복이 있다.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40:4, 146:5). 믿음의 행위를 자기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자기의 힘으로 한다면 그 일은 분명 성공하지 못한다), JC의 은혜의 힘으로 해나가는 자들은 진실로 행복하다. 우리의 모든 풍족함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 다윗은 다시 하나님의 장막으로 돌아가 여호와 그의 하나님께 힘을 얻어 봉사하고, 고난을 견딜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2) 그들은 거룩한 의식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다.” 즉, 자기의 목적으로서 하나님 안에 자기의 행복을 둔 자는 주께로 인도하는 모든 길을, 그들의 은혜를 강하게 하고, 주와의 교제는 지속시켜 주는 그 모든 방법들을 기뻐한다. 그들은 이러한 길로 행할 뿐만 아니라, 그들 마음속에 그것을 둔다. 이보다 더 가깝게 그의 마음에 두는 걱정이나 관심, 즐거움이나 기쁨은 없다. 새 예루살렘을 자기의 눈 안에 두는 자들은 그것으로 이르는 길을 마음속에 두어야 하며, 그것을 지켜야 한다. 그들의 눈은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하며, 그 길을 숙고해야 하고, 그것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리고 좌우로 빗나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의 힘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규율로 삼고, 그것을 따라 행해야 한다. (3) 그들은 거룩한 의식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어렵게 하고 위축되게 하는 것들을 이겨내려는 자들이다(6절). 그들은 그 명절에 예배드리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올 때(일부의 견해대로), 메마르고 모래로 된 골짜기를 많이 지나야 하므로 거의 갈증으로 죽을 지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을 막기 위해 그들은 작은 웅덩이를 파서 빗물을 받아 담아둔다. 그것은 그들과 다른 사람들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마련된다. 그들이 샘을 만들 때, 하늘의 비가 그곳을 채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은혜는 우리에게 부족하지 않으며, 항상 우리에게 풍족하다. 그들의 길은, 바카(Valley of Baca)가 의미하듯이, 눈물 골짜기 가운데 있었다. 즉(다른 사람들의 해석처럼), 물기가 많은 골짜기 가운데 있었다. 그것은 습한 기후지대에 있었으므로 “비로 은택을 입힐 때”, 물이 고이거나 길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통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물을 빼내고, 도랑을 파냄으로써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자들이 편리하도록 거기에 길을 만들어놓았다. 시장에 이르는 길과 마찬가지로 교회로 이르는 길도 관심을 기울여 잘 수선해 두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① 그들은 그 여행에 대해 선한 뜻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그 엄숙한 명절에 참석해야 했을 때, 그들은 불순한 날씨로 인해 또는 나쁜 길로 인해 되돌아가려 하지 않았고, 또 그것을 집에 머무르는 구실로 삼으려 하지도 않았다. 의무의 길에 놓인 어려움은 우리의 결심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풍세를 살핀 자는 파종하지 않는다.” ② 그들은 시온으로 이르는 길을 가장 훌륭하게 만들었다. 나쁜 길을 고치기 위해 계획했고 수고했으며, 제거될 수 없는 불편한 점은 될 수 있는 한 참았다. 우리가 하늘로 이르는 길은 바카 골짜기를 통과하게 되어 있으나, 하나님께서 천성을 향해 가는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해 놓으신 그 위안물들을 우리가 잘 활용한다면, 그것은 샘의 곳이 될 수 있다. (4) 그들은 드디어 여행의 목적지에 올 때까지 계속 전진하는, 그리고 갑자기 중단하지 않는 자들이다(7절).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가리이다.” 그들이 각 마을을 지나 목적지에 접근할수록 그들의 무리는 점점 불어나 마침내 매우 많게 된다. 길을 앞선 자들은 뒤에 오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하고 말하면서(122:1-2), 그들에게 요청할 때까지 머물러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상호적인 사랑의 표적으로 한덩어리가 되어 함께 갈 수 있게 했다. 또는, 그 특별한 사람들은, 여행의 지루함과 그들이 당한 역경으로 인해 피로해지기는커녕, 예루살렘으로 올수록 더 생기 있고 활발해졌고, 따라서 “점점 힘을 얻으며” 나아갔다(욥 17:9). 이처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약속되어 있다(사 40:31). 그들이 약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도 그들은 강하다. 그들은 (일부의 견해대로) “덕행에서 덕행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덕이 있는 여자에게 사용되는 것과 같은 단어다. 그리스도인의 행로를 밀고 나가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은혜 더함을 발견할 것이다(요 1:16). 그들은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고후 3:18). 하나의 영광스런 은혜에서 또 하나의 은혜로 이르러, 마침내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각 나타나” 그에게 영광을 드리고, 그로부터 축복을 받는다. 은혜 속에서 자라는 자들은 드디어 영광 속에서 완전해질 것이다. 갈대아역에는 이렇게 해석되어 있다. “그들은 지성소에서 교훈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율법에 대해 그들이 들인 수고는 그 위엄이 시온에 거하고 있는 하나님 앞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한 가지 의무에서 또 한 가지 의무로, 기도에서 말씀으로, 우리가 배운 것을 실행하는 것에서 더 배우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그 은택이 나타나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 자신에게는 영원한 위로가 될 것이다. ------------- 즐거움을 주는 하나님의 규례(시 84:8-12) Ⅰ.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해주시도록 원했던 것을 별달리 언급하지 않고서,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시고 용납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 비록 이제는 하나님의 율례에서 추방당하고 제지되었지만, 그 율례에 대해 사랑과 존경을 고백했을 때는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던 때문이다. 그 고백 속에서 그의 모든 소망을 명백히 하나님께 알려드림에 있어서 그 어느하나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시기를, 그의 상태를 보시고, 그의 선한 마음을 보시고, 그의 얼굴을 살펴보시기를, 즉 그것이 어떠한 상황에 있으며, 얼마나 그의 안색이 하나님의 궁정으로 향한 그의 갈망을 나타내고 있는가 살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는 그 자신을 (많은 사람들의 견해대로)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자”라고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다윗은 주에 의해, 그리고 주를 위해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탄원 속에 무엇이 나타나고 있는가. 1. 그는 여러 가지 영광스러운 칭호 아래 있는 하나님을 주시허고 있다. ─모든 창조물을 지휘하시므로 하늘과 땅에 대한 모든 권세를 지니신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야곱의 기도하는 자손들에게 “너희가 나를 구함이 헛되도다”라고는 결코 말씀하시지 않은 하나님, 즉 “야곱의 하나님”으로서─그리고 그의 백성들을, 그들의 열조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의거해, 그의 특별한 보호 아래 두시는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으로서 주시하고 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이니라”(창 15:1). 다윗이 하나님의 장막 은밀한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숨을 수(27:5) 없을 때에는, 그는 자기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그의 방패가 되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기를 바랐다. 2. 그는 중보자를 주시하고 있다. 다윗이 그의 기름부음에 대해 언급했으므로(45:7), 나는 이 말을, “주의 메시야의, 주의 기름부은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을 아뢸 때,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의 얼굴을 살펴보시고 그를 위해 우리를 용납하시며, 그 안에서 우리를 기뻐하시기를 원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총의 눈으로 “주의 기름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실 것이다. 주의 기름부으신 자는, 우리가 그가 없이 감히 우리의 얼굴을 보일 수 없을 때, 그의 얼굴을 보이신다. Ⅱ. 그는 하나님의 의문에 대한 그의 사랑을, 그리고 그가 하나님 자신을 의지하고 있음을 진술하고 있다. 1. 하나님의 궁정은 그가 택한 곳이었다(10절). 그는 거룩한 의문에 대해 매우 큰 존경심을 품었다. 그는 그것을 그 어느 것보다 귀하게 여겼다. 그는 그들을 귀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나타내는데, 다음에서 이에 대해 살펴보자. (1) 그 어느 시간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을 택함으로써 나타내고 있다. 세속적인 일들을 모두 떠나 신앙적인 봉사를 수행하면서 지내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사옵니다.” 이는 아무리 사람 자손들의 모든 즐거움 가운데서 지낸다 할지라도 이 세상 다른 곳에서 지내는 것보다 주의 궁정에서 지내는 것이 나음을 말하고 있다. 천 (KJV.“a thousand”; 그는 “천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보다 낫다는 말을 당신이 천년이나 천세대로 읽을 수도 있다. 만일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다윗도 거기에 동의할 것이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 하루의 안식일, 하루의 명절이─비록 하루뿐일지라도─ 내게는 매우 반가울 것입니다”(유대인 율법학자들의 일부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아니, 내가 그로 인해 그 다음 날 죽는다 할지라도, 이 세상의 일과 즐거움 속에서 보낸 수년보다 나을 것입니다.” 이러한 즐거움이 있는 한 날은 “천 날을 쫓을 것이요, 두 날은 만 날을 쫓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비할 데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나이다.” (2) 다른 장소보다는 예배하는 장소를 택함으로써 나타내고 있다. 당당하게 주인으로서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가장 낮은 직책에서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옵니다.” 그가 장막까지도 집이라 부르고 있음을 주목하라. 그 안의 하나님의 임재는 그 휘장을 궁전보다 더 위엄 있게 만들며, 성보다 더 강하게 만든다. 그것은 나의 하나님의 집이다. 그의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는, 그가 수금으로 연주하기를 매우 사랑했던 달콤한 선율이었다. 좋은 근거 위에서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는 자들, 그러한 자들만이 그의 궁정을 기뻐한다. 나는 악인이 거하는 그 장막의 왕보다는 차라리 하나님 집의 문지기가 되겠다. 차라리(단어 그대로) 문지방에 눕겠다. 그것은 거지가 있는 장소다(행 3:2). “그래도 괜찮다”(다윗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집에 있지 못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거기에라도 있는 것이 낫다.”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매우 좋아했다. 거기에서 상좌를 차지하는(마 23:6) 그들이 위대한 인물로 보이는 것을 좋아했다. 거룩한 다윗은 그것을 갈망하지는 않고 있다. 그가 단지 문지방에 있도록 허락만 받는다면, 그는, “주인이시여,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종에 관한 율법을 시사하면서 그것을 이렇게 읽고 있다. “나는 악인의 장막에서 자유롭게 사느니보다는 차라리 내 하나님의 집 문설주에 매여 있겠다.” 종들이 떠나가서 자유하지 않으려 할 때는, 그 종들은 문설주 앞으로 가 그 귀를 뚫어야 했던 것이다(출 21:5-6). 다윗은 그의 주인과 그의 일을 매우 사랑했으므로 영원히 이 봉사에 묶여 있기를, 더 자유롭게 그 일을 행할 수 있기를 원했으며, 죄에 대한 가장 큰 자유보다는 의무에 대한 속박을 매우 사랑하였기 때문에, 결코 거기에서 떠나 자유케 되기를 원치 않았다. 이처럼 최상의 기쁨은 거룩한 의무에 전념하는 거룩한 마음을 소유한다. 그들에게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얻는 만족감과 비교될 만한 것은 없다. 2. 하나님은 그의 소망이요 기쁨이며, 모든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그의 하나님의 집을 사랑했다. 왜냐하면, 그의 기대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었고, 거기에서 그는 하나님과 교제하곤 했기 때문이다(11절). 다음을 보자. (1)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 대해 무엇이 되고 계시며, 또 되실 것인가?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비록 여기에서 흑암 속에 있으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면, 그는 빛을 비추시고 활기를 부어주는, 우리를 안내하고 지도하는 해가 되실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위험 가운데 있으나, 그는 우리에게 빈번히 날아오는 맹렬한 창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해 주는 방패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사, 그의 은혜로 우리의 방패가 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의 빛에 행하고”, 결코 우리 자신을 그의 보호 밖으로 내어던지지 말자. 그러면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좋은 것을 모두 공급해 주는 해이며, 모든 악에서 우리를 막아주는 방패이시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그는 그들에게 무엇을 수여하고 계시며, 또 하실 것인가?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리이다.” 은혜는 우리에게로 향한 하나님의 선한 의지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의미한다. 영화는, 그가 우리를 양자로 하시어 우리에게 부여하신 존귀와 그가 아들의 기업을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영광의 준비로서 은혜를 그들에게 주실 것이며, 저 세상에서 은혜의 완성으로서 영광을 주실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 그가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그리고 한편,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 곳마다 영화를 주실 것이며(왜냐하면 은혜는 영화의 시작이며, 그 전조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지금 은혜를 주시지 않는 또는 그가 주시는 은혜를 헛되게 하는 자에게는 이후에 영화를 주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양쪽 세상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협력하는 두 가지 큰 것인 은혜와 영화를 하나님께서 주신다면, 우리는 그가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정직히 행하는 것,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서 고지식함과 경건한 성실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은 모든 선한 백성들의 특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즉 이 세상을 지나가는 데에 필요불가결한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함을 확신할 수 있다. 은혜와 영화를 확고히 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더할 것이다.” 이것은 포괄적인 약속이다. 그리고 이것은 성도들이 받는 현재의 위로에 대한 보증이므로, 그들은 그들이 원하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무한하신 지혜자께서 그것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않은가를 살펴보시거나 무한하신 자비자께서 그것을 합당한 때에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정직히 행하도록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자. 그리고서 우리에게 유익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리라는 것을 믿도록 하자. Ⅲ. 그는 앞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 복받을 것을 언명하고 있다(12절). 규례에 대한 자유와 하나님의 집에 대한 특권을 가진 자는 복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에 대해 방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우리는 축복받는 일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우리가 주님의 전에 갈 수 없다면, 우리는 믿음으로써 그 전에 계신 주님께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해질 것이며, 편안케 될 수 있다. ------[이른비]-------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 11:14) 이스라엘은 지중해성 기후와 아열대성 기후가 교차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건기의 여름과 우기의 겨울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5월 중순경에 시작되는 여름 동안 이스라엘에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고 고온 건조한 날씨만이 계속된다. 그러나 10월 중순경부터 시작되는 겨울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5개월 가까이 지속된다. 하늘의 비만을 의존하여 경작하는 이스라엘 농업은, 겨울 우기 동안만 가능한 셈이다. 겨울 우기 동안 내리는 비는 세 종류로 구분된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내리는 이른 비(10월 경)와 겨울 우기가 끝나는 마지막 기간에 내리는 늦은 비(4월 경), 그리고 이 두 기간 사이에 내리는 겨울비 등이 그것이다. 겨울비를 장맛비라고도 부른다. 이 세 종류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의 비가 겨울비이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각각 전체 강우량의 15%에 불과한 반면, 겨울비는 70%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성경에서 양이 훨씬 적은 이른 비와 늦은 비가 강조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비록 강우량은 미미하지만, 그것이 농작물에 끼치는 영향과 중요성이 무척 크기 때문이다. 즉 이른 비가 내려야만 여름 동안 메말라 있던 땅이 젖고 부드러워져 파종이 가능하게 된다. 늦은 비는 겨울 우기 동안 자란 곡식들을 더욱 충실하게 맺게 하는 역할을 한다. 비록 적은 양이긴 하지만, 적당한 때에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농작물 재배에 있어서 많은 양의 겨울비보다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스라엘에서 비는 인간 삶과 직결된 필수적 요소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모두의 목이 타게 되어 있고, 삶은 가뭄으로 인하여 핍절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비를 내려 주신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가장 큰 은혜요 복이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은혜와 복 가운데 더욱 중요한 것은, ‘양’의 겨울비가 아니라 ‘질’의 이른 비와 늦은 비이다. 이것은 성경의 강조점이 양보다 기능과 역할에 있음을 보여준다. 성경이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신다고 하신 것이 그 때문이다. ‘때’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에트’로서, ‘대답하다’를 의미하는 ‘아나’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곧 ‘에트’는 필요에 부합하는 최적의 때라는 뜻이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결정적 기회의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이다. 때를 따라 비가 내린다 하여도, 그것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은 아니다. 파종과 가꿈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기회와 여건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회를 활용할 줄 아는 지혜와 성실한 노력을 의미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라”(신 28:12)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때를 따라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신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런 은혜와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과까지도 주실 것이라는 일방적인 기대감을 갖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을 열어 주신다는 뜻이다. ‘복’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베라카’는 기본적으로 ‘생산성의 회복’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우리에게 내려주신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도나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기회와 복을 거부하는 셈이 된다. 하나님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겸손한 마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래를 향하여 우리의 꿈을 정성껏 심고 가꾸는 성실한 손, 그리고 미래에 주어질 결실을 인내로 바라보며 기다리는 깊고 깨끗한 비전의 눈, 이것이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아름다운 모습이다. http://nocr.net/index.php?mid=eng_rsv_nrsv&category=68699&page=5&document_srl=74233 한글 번역본 집합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