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2.2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히9. 유언으로서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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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9장  [311내너를위하여] [540주의음성을내가들으니]

==손으로 지은 성소와 온전한 성소
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속죄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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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9장 땅의 성소와 하늘의 성소
1.  첫 번째 언약에도, 예배 규칙과 세상의 성소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2.  한 장막, 곧 앞칸에 해당하는 장막을 지었는데, 그 안에는 촛대와 상이 있고, 늘 차려 놓는 빵을 놓았으니, 이 곳을 '성소'라고 하였습니다.
3.  그리고 둘째 휘장 뒤에는 '지성소'라고 하는 장막이 있었습니다.
4.  거기에는 금으로 만든 분향제단과 모두 금으로 입힌 언약궤가 있고, 그 속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와 언약을 새긴 두 돌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5.  그리고 그 궤 위에는, 영광에 빛나는 그룹들이 있어서, 속죄판을 그 날개로 내리덮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것들을 자세히 말할 때가 아닙니다.
6.  ○이것들이 이렇게 배치되어 있어서, 첫째 칸 장막에는 언제나 제사장들이 들어가서 제사의식을 집행합니다.
7.  그러나 둘째 칸 장막에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가는데, 그 때에는 반드시 자기 스스로를 위하여, 또 백성이 모르고 지은 죄를 사하기 위하여, 바칠 피를 가지고 들어갑니다.
8.  이것은 첫째 칸 장막이 서 있는 동안에는, 아직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드러나지 않았음을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9.  이 장막은 현 시대를 상징합니다. 그 장막 제의를 따라서 예물과 제사를 드리지만, 그것이 의식 집례자의 양심을 완전하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10.  이런 것은 다만,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예식과 관련된 것이고, 개혁의 때까지 육체를 위하여 부과된 규칙들입니다.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다시 말하면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거쳐서,
12.  오직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룩하여 주셨습니다.
13.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해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14.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우리를 죽은 행실에서 떠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그는 첫 번째 언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약속된 영원한 유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16.  유언의 효력을 논의하는 곳에서는, 유언한 사람이 죽었다는 확인이 꼭 필요합니다.
17.  유언이라는 것은 유언한 사람이 죽어야만 효력을 냅니다. 유언한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유언은 아무런 효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18.  그러므로, 첫 번째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은 아닙니다.
19.  모세가 율법을 따라 모든 계명을 백성에게 말한 뒤에,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와 함께 송아지 피와 염소 피를 취해서, 언약책에 그리고 온 백성에게 뿌리고
20.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21.  또 같은 방식으로, 그는 장막과 제사의식에 쓰이는 모든 기구에다가도 피를 뿌렸습니다.
22.  율법을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피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속죄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조물은 이런 의식으로 깨끗해져야 할 필요가 있지만,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이보다 나은 희생제사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24.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성소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그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십니다.
25.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실 필요가 없습니다.
26.  그것은, 그가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셔야 하였다고 하면, 그는 창세 이래로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기를 희생제물로 드려서, 죄를 없애시려고 시대의 종말에 오직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27.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 지시려고, 한 번 자기의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 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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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9 Amplified Bible

==The Old and the New

1 Now even the first covenant had regulations for divine worship and for the earthly sanctuary. 

2 A tabernacle (sacred tent) was put up, the outer one or first section, in which were the lampstand and the table with [its loaves of] the sacred showbread; this is called the Holy Place. 

3 Behind the second veil there was another tabernacle [the inner one or second section] known as the Holy of Holies, 

4 [a]having the golden altar of incens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covered entirely with gold. This contained a golden jar which held the manna, and the rod of Aaron that sprouted, and the [two stone] tablets of the covenant [inscribed with the Ten Commandments]; 

5 and above the ark were the [golden] cherubim of glory overshadowing [b]the mercy seat; but we cannot now go into detail about these things.

6 Now when these things have been prepared in this way, the priests continually enter the outer [or first section of the] tabernacle [that is, the Holy Place] performing [their ritual acts of] the divine worship, 

7 but into the second [inner tabernacle, the Holy of Holies], only the high priest enters [and then only] once a year, and never without [bringing a sacrifice of] blood, which he offers [as a substitutionary atonement] for himself and for the sins of the people committed in ignorance. 

8 By this the Holy Spirit signifies that the way into the Holy Place [the true Holy of Holies and the presence of God] has not yet been disclosed as long as the [c]first or outer tabernacle is still standing [that is, as long as the Levitical system of worship remains a recognized institution], 

9 for this [first or outer tabernacle] is a symbol [that is, an archetype or paradigm] for the present time. Accordingly both gifts and sacrifices are offered which are incapable of perfecting the conscience and renewing the [inner self of the] worshiper. 

10 For they [the gifts, sacrifices, and ceremonies] deal only with [clean and unclean] food and drink and various ritual washings, [mere] external regulations for the body imposed [to help the worshipers] until the time of reformation [that is, the time of the new order when Christ will establish the reality of what these things foreshadow—a better covenant].

11 But when Christ appeared as a High Priest of the good things to come [that is, true spiritual worship], He entered through the greater and more perfect tabernacle, not made with hands, that is to say, not a part of this [material] creation. 

12 He went once for all into the Holy Place [the Holy of Holies of heaven, into the presence of God], and not through the blood of goats and calves, but through His own blood, having obtained and secured eternal redemption [that is, the salvation of all who personally believe in Him as Savior]. 

13 For if the sprinkling of [ceremonially] defiled persons with the blood of goats and bulls and the ashes of a [burnt] heifer is sufficient for the cleansing of the body, 

14 how much more will the blood of Christ, who through the eternal [Holy] Spirit willingly offered Himself unblemished [that is, without moral or spiritual imperfection as a sacrifice] to God, cleanse your conscience from dead works and lifeless observances to serve the ever living God?

15 For this reason He is the Mediator and Negotiator of a new covenant [that is, an entirely new agreement uniting God and man], so that those who have been called [by God] may receive [the fulfillment of] the promised eternal inheritance, since a death has taken place [as the payment] which redeems them from the sins committed under the obsolete first covenant. 

16 For where there is a will and [d]testament involved, the death of the one who made it must be established, 

17 for a will and testament takes effect [only] at death, since it is never in force as long as the one who made it is alive. 

18 So even the first covenant was not put in force without [the shedding of] blood. 

19 For when every commandment in the Law had been read by Moses to all the people, he took the blood of the calves and goats [which had been sacrificed], together with water and scarlet wool and with a bunch of hyssop, and he sprinkled both the scroll itself and all the people, 

20 saying, “This is the blood of the covenant [that seals and ratifies the agreement] which God ordained and commanded [me to deliver to] you.” 

21 And in the same way he sprinkled both the tabernacle and all the containers and sacred utensils of worship with the blood. 

22 In fact under the Law almost everything is cleansed with blood, and without the shedding of blood there is no forgiveness [neither release from sin and its guilt, nor cancellation of the merited punishment].

23 Therefore it was necessary for the [earthly] copies of the heavenly things to be cleansed with these, but the heavenly things themselves required far better sacrifices than these. 

24 For Christ did not enter into a holy place made with hands, a mere copy of the true one, but [He entered] into heaven itself, now to appear in the very presence of God on our behalf; 

25 nor did He [enter into the heavenly sanctuary to] offer Himself again and again, as the high priest enters the Holy Place every year with blood that is not his own. 

26 Otherwise, He would have needed to suffer over and over sinc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but now once for all at the consummation of the ages He has appeared and been publicly manifested to put away sin by the sacrifice of Himself. 

27 And just as it is appointed and destined for all men to die once and after this [comes certain] judgment, 

28 so Christ, having been offered once and once for all to bear [as a burden] [e]the sins of many, will appear a second time [when he returns to earth], not to deal with sin, but to bring salvation to those who are eagerly and confidently waiting for Him.

==Footnotes

Hebrews 9:4 The Greek participle translated “having” probably conveys the notion of “associated with it” and hence refers to the fact that the altar of incense, although located in the Holy Place according to Ex 30:6, here does not refer to location but to use, given the fact that the incense wafted behind the veil into the Holy of Holies.

Hebrews 9:5 I.e. the lid of the ark where blood was sprinkled by the high priest.

Hebrews 9:8 During the age of the old covenant a worshiper had no direct access to God.

Hebrews 9:16 This Greek word may also be translated “covenant” as in v 18 and the author may be engaging in deliberate word play here playing off of both meanings.

Hebrews 9:28 See Is 5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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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9  New King James Version

==The Earthly Sanctuary

1 Then indeed, even the first covenant had ordinances of divine service and the earthly sanctuary. 

2 For a tabernacle was prepared: the first part, in which was the lampstand, the table, and the showbread, which is called the [a]sanctuary; 

3 and behind the second veil, the part of the tabernacle which is called the Holiest of All, 

4 which had the golden censer and the ark of the covenant overlaid on all sides with gold, in which were the golden pot that had the manna, Aaron’s rod that budded, and the tablets of the covenant; 

5 and above it were the cherubim of glory overshadowing the mercy seat. Of these things we cannot now speak in detail.

==Limitations of the Earthly Service

6 Now when these things had been thus prepared, the priests always went into the first part of the tabernacle, performing the services. 

7 But into the second part the high priest went alone once a year, not without blood, which he offered for himself and for the people’s sins committed in ignorance; 

8 the Holy Spirit indicating this, that the way into the Holiest of All was not yet made manifest while the first tabernacle was still standing. 

9 It was symbolic for the present time in which both gifts and sacrifices are offered which cannot make him who performed the service perfect in regard to the conscience— 

10 concerned only with foods and drinks, various [b]washings, and fleshly ordinances imposed until the time of reformation.

==The Heavenly Sanctuary

11 But Christ came as High Priest of the good things [c]to come, with the greater and more perfect tabernacle not made with hands, that is, not of this creation. 

12 Not with the blood of goats and calves, but with His own blood He entered the Most Holy Place once for all, having obtained eternal redemption. 

13 For if the blood of bulls and goats and the ashes of a heifer, sprinkling the unclean, [d]sanctifies for the [e]purifying of the flesh, 

14 how much more shall the blood of Christ, who through the eternal Spirit offered Himself without [f]spot to God, cleanse your conscience from dead works to serve the living God? 

15 And for this reason He is the Mediator of the new covenant, by means of death, for the redemption of the transgressions under the first covenant, that those who are called may receive the promise of the eternal inheritance.

==The Mediator’s Death Necessary

16 For where there is a testament, there must also of necessity be the death of the testator. 

17 For a testament is in force after men are dead, since it has no power at all while the testator lives. 

18 Therefore not even the first covenant was dedicated without blood. 

19 For when Moses had spoken every [g]precept to all the people according to the law, he took the blood of calves and goats, with water, scarlet wool, and hyssop, and sprinkled both the book itself and all the people, 

20 saying, “This is the blood of the covenant which God has commanded you.” 

21 Then likewise he sprinkled with blood both the tabernacle and all the vessels of the ministry. 

22 And according to the law almost all things are [h]purified with blood, and without shedding of blood there is no [i]remission.

==Greatness of Christ’s Sacrifice

23 Therefore it was necessary that the copies of the things in the heavens should be [j]purified with these, but the heavenly things themselves with better sacrifices than these. 

24 For Christ has not entered the holy places made with hands, which are [k]copies of the true, but into heaven itself, now to appear in the presence of God for us; 

25 not that He should offer Himself often, as the high priest enters the Most Holy Place every year with blood of another— 

26 He then would have had to suffer often sinc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but now, once at the end of the ages, He has appeared to put away sin by the sacrifice of Himself. 

27 And as it is appointed for men to die once, but after this the judgment, 

28 so Christ was offered once to bear the sins of many. To those who eagerly wait for Him He will appear a second time, apart from sin, for salvation.

==Footnotes

Hebrews 9:2 holy place, lit. holies

Hebrews 9:10 Lit. baptisms

Hebrews 9:11 NU that have come

Hebrews 9:13 sets apart

Hebrews 9:13 cleansing

Hebrews 9:14 blemish

Hebrews 9:19 command

Hebrews 9:22 cleansed

Hebrews 9:22 forgiveness

Hebrews 9:23 cleansed

Hebrews 9:24 represen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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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9장
1.  Now even the first [covenant] had regulations of divine worship and the earthly sanctuary.
2.  For there was a tabernacle prepared, the outer one, in which [were] the lampstand and the table and the sacred bread; this is called the holy place.
3.  And behind the second veil, there was a tabernacle which is called the Holy of Holies,
4.  having a golden altar of incens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covered on all sides with gold, in which [was] a golden jar holding the manna, and Aaron's rod which budded, and the tables of the covenant.
5.  And above it [were] the cherubim of glory overshadowing the mercy seat; but of these things we cannot now speak in detail.
6.  Now when these things have been thus prepared, the priests are continually entering the outer tabernacle, performing the divine worship,
7.  but into the second only the high priest [enters], once a year, not without [taking] blood, which he offers for himself and for the sins of the people committed in ignorance.
8.  The Holy Spirit [is] signifying this, that the way into the holy place has not yet been disclosed, while the outer tabernacle is still standing,
9.  which [is] a symbol for the present time. Accordingly both gifts and sacrifices are offered which cannot make the worshiper perfect in conscience,
10.  since they [relate] only to food and drink and various washings, regulations for the body imposed until a time of reformation.
11.  But when Christ appeared [as] a high priest of the good things to come, [He entered] through the greater and more perfect tabernacle, not made with hands, that is to say, not of this creation;
12.  and not through the blood of goats and calves, but through His own blood, He entered the holy place once for all, having obtained eternal redemption.
13.  For if the blood of goats and bulls and the ashes of a heifer sprinkling those who have been defiled, sanctify for the cleansing of the flesh,
14.  how much more will the blood of Christ, who through the eternal Spirit offered Himself without blemish to God, cleanse your conscience from dead works to serve the living God?
15.  And for this reason He is the mediator of a new covenant, in order that since a death has taken place for the redemption of the transgressions that were [committed] under the first covenant, those who have been called may receive the promise of the eternal inheritance.
16.  For where a covenant is, there must of necessity be the death of the one who made it.
17.  For a covenant is valid [only] when men are dead, for it is never in force while the one who made it lives.
18.  Therefore even the first [covenant] was not inaugurated without blood.
19.  For when every commandment had been spoken by Moses to all the people according to the Law, he took the blood of the calves and the goats, with water and scarlet wool and hyssop, and sprinkled both the book itself and all the people,
20.  saying, "THIS IS THE BLOOD OF THE COVENANT WHICH GOD COMMANDED YOU."
21.  And in the same way he sprinkled both the tabernacle and all the vessels of the ministry with the blood.
22.  And according to the Law, [one may] almost [say], all things are cleansed with blood, and without shedding of blood there is no forgiveness.
23.  Therefore it was necessary for the copies of the things in the heavens to be cleansed with these, but the heavenly things themselves with better sacrifices than these.
24.  For Christ did not enter a holy place made with hands, a [mere] copy of the true one, but into heaven itself, now to appear in the presence of God for us;
25.  nor was it that He should offer Himself often, as the high priest enters the holy place year by year with blood not his own.
26.  Otherwise, He would have needed to suffer often sinc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but now once at the consummation of the ages He has been manifested to put away sin by the sacrifice of Himself.
27.  And inasmuch as it is appointed for men to die once and after this [ comes] judgment,
28.  so Christ also, having been offered once to bear the sins of many, shall appear a second time for salvation without [reference to] sin, to those who eagerly await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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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9장 (개요)
바울은 구약의 섭리가 낡아졌고 사라졌다고 선언한 후 더 나아가서 히브리인들에게 구약과 신약의 섭리는 서로 조화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려고 하였다.
구약 안에 있는 섭리가 아무리 탁월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신약을 설명하여 주는 것이며 하나의 모형에 지니자 않는다. 

그러므로 그림자가 본체보다 뛰어날 수 없듯이 구약의 섭리가 신약의 섭리보다 뛰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구약은 결코 구약 자체만으로 안주하려는 것이 아니고 복음의 교회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은 본문에서 다음의 내용을 다루었다.
Ⅰ. 예배드리는 장소, 즉 성막에 대하여(1-5).
Ⅱ. 성막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와 섬김에 대하여(5-7).
Ⅲ. 그 다음 바울은 이 모든 구약의 제의의 영적인 의미와 주된 목적을 설명하였다(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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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 내의 기구(히 9:1-7)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바울은 하나님께서 지상에 배우신 예배하는 장소, 즉 성막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것을 바울은 "세상에 속한"것이라고 칭하였다.  이러한 성소는 세상의 재료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건물은 반드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그것을 "성소"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스라엘 왕이신 하나님의 궁전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셨다.  또한 그는 모든 다른 왕들과 마찬가지로 왕위에 어울리는 거주하실 장소와, 수행원과, 부속물과 저장물을 필요로 하신다.  

이 성막은(이 성막의 모형이 출애굽기 25장-27장에 묘사되어 있다) 이동식 성전이었다.  

이 성막은 인성을 입으신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삶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지내셔야 함을 나타내 주는 상징이었다.  이 그리스도는 안에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임재해 계셨던 것이다.  또한 이 성막은 어디든지 요청되는 곳으로 달려야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태세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 성막은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본문에서는 구분된 안쪽 부분을 둘째 장막이라 하였고 바깥쪽 부분을 첫째 장막이라고 하였다.  

이 장막들은 다같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첫째 장막은 이 세상 교회의 투쟁적인 역할을 나타내며 또한 그리스도의 두 본성 중의 인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반면 둘째 장막은 교회의 승리를 나타내며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양쪽 장막에 안치된 기구들이 어떤 것들인지가 본문에 전해지고 있다.
1. 첫째 장막.  이곳에는 몇 가지 물건들이 있는데 본문에 그 목록들이 제시되어 있다.
(1) 등대(燈臺). 
물론 이 등대에는 등잔이 올려져 있지 않는, 따라서 불이 없는 그런 등대는 아니었다.  이 등대에는 언제나 불이 붙어 있는 등잔이 올려져 있었다.  

그곳에 등잔이 있을 필요가 있는 까닭은 성소에는 빛이 들어 올 창문이 없기 때문이었다. 
성막에 창문이 없어서 불이 없이는 캄캄했던 것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섭리의 알 수 없는 성격과 신비로움을 인식시키려는 뜻이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불은 등잔불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가져다 나누어 주실 빛은 아주 밝은 빛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빛의 원천이시고 우리의 모든 빛은 바로 그분에게서 비쳐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또한 상과 진설병이 놓여 있었다.
이 상은 등대 바로 맞은편에 놓여 있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빛(하나님의 본성과 성품, 곧 삼위일체하나님 그분의 영광<성품, 이름, 능력>의 어떠하심)에 의지하여 [말씀 분별하며] 그리스도와 또 다른 사람과 사귐을 가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는 그리스도의 상으로 나갈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빛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분간(참되게 분별)하여야만 한다. 
이 상위에는 열두 개의 빵이 놓여 있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빵은 안식일에 바쳐진 후 일주일간 그 자리에 놓았다가 그 다음 안식일에 새 것으로 교체하곤 하였다. 
이 진열된 빵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  먼저 우리는 이 빵이 궁전에 있어야 할 양식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겠다.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에게는 이러한 양식이 필요 없는 것이지만 지상의 왕들의 궁전에는 먹을 것이 있어야 하므로[믿는이 각자는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안에서 그의 이름으로 섬기는 왕들이다!!] 이것을 상징하기 위해 매 주일 빵을 새롭게 가져다 놓았다고 볼 수 있겠다).  

또는 이 진열된 빵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의 영혼을 위하여 즉 그들의 영혼이 결핍을 채워 주고 위안을 주기 위하여 주시는 생명의 떡을 상징한다고 볼수도 있겠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이시다.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먹고 남을 만큼 충분한 떡이 준비되어 있다.  우리는 특히 매주일마다 새로운 떡을 그리스도께로부터 새로이 공급받아야 한다. 

이 바깥 장막을 "성소" 또는 "성전"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거룩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건축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성전은 거룩한 예수를 상징하며 또 그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맞아들이는 곳임을 나타낸다.
2. 둘째 장막. 그것은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으로써 "지성소"라고 칭하여졌다. 지성소는 하늘나라를 상징하기도 한다.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지어 놓는 이 성소휘장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한다.  이 몸이 찢기어지므로 우리는 그 길을 통해 우리의 지성소인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안에 있는 기명들에 대하여 살펴 보자.
(1) 금향로.[[거룩한 향을 사르는 금제단은 성소안에, 성소휘장에 인접한 곳에 두었고, 향을 살라 금향로에 담아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가서 속죄소를 향연으로 가려야 했다!!]  
금향로는 향을 담은 그릇이거나 향을 태우도록 만들어진 금제단을 말한다.  그것은 두 가지 다 그리스도의 유형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에 행하실 중재를 나타낸다.  

이 그리스도의 중재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공로와 그의 희생에 의한 속죄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공로와 속죄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고 또 그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2)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4절). 
이것 역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즉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의를 완성하신 사실과 또 그가 율법에 완전히 복종하셨음을 상징한다.  

언약궤 안에는 무엇이 있으며, 그 위에는 무엇이 있는가? 본문에 말씀되고 있다.
① 언약궤의 안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첫째, 그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긍항아리"가 있었다.  

이 만나는 이스라엘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들의 집에 저장하고자 하였을 때는 곧 부패하던 그 만나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주의 집안에 저장된 만나는 썩지 않고 언제나 신선하고 달콤하게 보존되었었다.  

그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의 인격과 우리가 받은 은혜와 우리의 공적인 신선하게 보존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여 준다.  

만나는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생명의 떡을 상징하기도 한다.  즉 그것은 불멸하게 하는, 신들이 먹는 음식을 상징한다.  

만나는 또한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헤매는 주의 백성들을 놀라운 기적으로 먹이신 사건을 기념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은총을 결코 잊지 않게 하고 또 이후에도 하나님을 불신하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해 진열된 것이기도 하였다. 
둘째, "아론의 싹난 지팡이." 

이것은 주권적 선택, 곧 하나님께서 아론을 레위 족속 가운데서 택하시어 그로 하여금 모든 이스라엘 족속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섬기게 하신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또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심은 그렇게 하심으로 그 백성들의 불평을 그치게 하시고 또 백성들이 제사장 직책을 침해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민 17장).  

이 지팡이는 모세와 아론이 그것으로 놀라운 기적을 행한 하나님의 지팡이였다.  이 지팡이 또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새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시다(슥 6:12).  

모세의 싹난 지팡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듯이 그는 백성들을 영적으로 해방시켜 주시고 보호하시고 영의 양식을 공급하시며, 또 그의 백성들의 적들을 무찌르시는 것이다.  또한 이 지팡이는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하기도 한다.  

바로 이 하나님의 공의이신 지팡이가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치시므로 말미암아 시원하고 생기를 주는 생수가 그로부터 우리의 영혼에게로 흘러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언약이 비석"들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영적 도덕적인 율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언약궤 안에 이 언약의 비석들이 보존된 것은 하나님이 이 거룩한 율법을 중요시하심과, 또 그러기에 우리도 이 하나님의 율법을 정성껏 지켜야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힘에 의해 수행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우리의 복종은 하나님께 결코 용납될 수가 없다.

② 언약궤 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5절) 본문에 보면 "속죄판을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었다"고 하였다(역주: 공동 번역 참조). 
첫째, 속죄판.  이 속죄판은 언약궤를 덮는 일종의 뚜껑이었다.  그것은 "속죄판"이라고 불리우며, 순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것은 언약의 비석들이 들어 있는 언약궤를 완전히 덮을 만큼한 크기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것 또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감쌀 만큼 완전하다는 사실과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 주신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죄된 우리 사이를 중재하시어 우리의 죄된 허물을 덮어 주신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둘째, "영광의 그룹" 이 속죄판을 내리덮고 있는 영광의 그룹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천사들의 형상들을 말한다.  

이것이 속죄판을 내리덮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의 큰 역사를 기쁨으로 관망하며 또 그들이 구속자의 지휘 아래서 구원의 후사가 될 사람들을 위하여 도울 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리스도의 유혹 받으심과 고난과 부활, 그리고 승천의 때에 옆에서 수종들었으며, 이제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도 그를 수종들 것이다.  

이 천사들은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을 뵈었고 또 방문하였었다.
Ⅱ. 구약의 섭리 가운데서의 예배처에 대하여 말을 끝낸 후 사도 바울은 그 장소에서 수행되는 예배와 의무에 관하여 언급하였다(6절).  

즉 이러한 성소의 각 부분과 여러 가지 물건들을 구비해 놓은 후 그곳에서 무엇을 행하여야 하는가를 말하였다.
1. 일반 제사장들은 항상 첫 번 장막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수행한다.  

다음을 유의하라.
(1) 제사장 이외에는 아무도 첫 번 장막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사실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사람은 목회사업에 관여하거나 직분을 함부로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2) 일반 제사장들은 첫 번 성소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이 [규례를 어기고]지성소를 들어가는 것을 사형에 해당되는 오만죄로 간주되었다.  

이 사실은 사역자들은 그들 자신의 위치를 알고 준수해야 하며 제 분수를 넘어서 그 위치를 벗어나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특권을 뺏을 수는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즉 사역자들이 자기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리거나 또는 그리스도가 정하신 규례에다가 그들 자신이 고안한 내용들을 추가[자의로 첨삭]하거나 또는 자기들의 고안한 것으로 인간들의 양심을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됨을 가르쳐 준다.
(3) 이러한 일반 제사장들은 항상 첫 번 장막에 출입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었다.  

즉 제사장들은 그들의 시간을 전부 바쳐서 성직을 수행하는데 전념해야 하며, 제사장 직분을 떠나서 이탈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사장들은 자기 맡은 직분을 수행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하며 제사를 드려야 할 시간에 자기들의 업무를 실지로 행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4) 일반 제사장들이 첫 번째 장막에 들어가는 것은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때에 부분적으로 하거나 도중에서 그쳐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충분히 합당하도록 완전히 수행하거나 한다.  

즉 예배의 시작을 잘해야 할뿐만 아니라 진행도 잘 하여야 하며, 끝날 때까지 잘 진행시켜 그들이 맡은 바 직분을 성실히 완성해야만 한다.
2. 안쪽 장막인 둘째 장막에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7절). 
이곳은 하늘나라를 상징하는데,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하늘로 오르셨던 것이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대제사장 이외에는 아무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도 자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즉 자기의 의와 공로에 의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2)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바깥 성소와 휘장을 거쳐야만 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생애와 고난의 죽음을 통하여 하늘나라로 들어가심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육신의 휘장은 운명하실 때 찢어졌다.
(3)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대제사장의 원형이신 그리스도는 이런 점에 있어서도 그의 유형인 대제사장들보다 훨씬 뛰어나시었다.  

왜냐하면 일년에 한번씩이 아니라 모든 복음의 섭리 시대를 통하여 단 한 번 들어가시는 것으로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4) 대제사장이 피흘리는 제물 없이는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으므로 우리를 위한 피흘리심이 없이는 하늘나라에 가실 수 없음을 의미하여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를 경험할 수 없고 또한 저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영광된 보좌에 갈 수 없음을 뜻한다.
(5) 율법 아래서는 지성소에 들어갈 대제사장은 먼저 자신과 자신의 죄를 위해 희생의 피를 드리고 그 다음에야 그의 백성들의 죄를 위해 희생의 피를 드릴 수 있었다(7절). 
이 사실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아래의 어떤 대제사장보다도 더욱 위대하신 분이란 것을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잘못이 없으셨으므로 스스로를 위해서는 스스로의 잘못을 위하여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율법에 의해 주어진 예표 준수를 위하여 무죄하셨지만 모든 인류의 죄를 전가 받으신 그리스도는 영원한 사죄의 효능이 있는 자기의 피를 의지하여 단번에 지성소로 들어가심으로써 [휘장을 찢으셨기에] 예수보혈 의지하여 예수이름으로 나아오는 모든 이들마다 하나님께 열납받도록 하셨다고도 해석한다))
또한 이 사실은 목회자들이 그리스도가 이름으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재할 때 그들이 먼저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써 자신의 죄를 사하여 주십사고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6) 율법시대의 대제사장은 자신을 위한 속죄제를 드린 후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백성들의 속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려야 했다. 
우리의 대제사장께서는 비록 자신을 위한 속죄를 드릴 필요가 없으나,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 드림을 잊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고통의 공로를 의지하여 이 땅에 거하는 자기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 탄원하신다.  

다음을 살펴 보자.
① 죄는 잘못된 행위를 말한다. 
즉 우리는 판단에 있어서나 생활에 있어서 큰 잘못을 저지른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크나큰 죄를 짓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누가 자기의 모든 잘못을 깨달을 수 있단 말인가?
② 이러한 잘못들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이외에 것으로는 씻겨지지 않는다.  또한 백성들이나 제사장이나 그들의 죄된 잘못들은 다같이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해 사함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의지하여 간구해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그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사 우리를 위해 간구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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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제사장직(1)(히 9:8-14)
위의 구절에서 바울은 장막에 대한 규례들과 율법의 경륜을 통해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우치시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즉 구약은 성령께서 구술하시는 대로 구약의 거룩한 사람들이 말하고 기록한 것이다.  

이 구약의 기록은 대단한 유용성과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먼저 받은 옛날 사람은 물론이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레위인의 율법 제도를 읽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께서 이것들을 통하여 무엇을 상징하였고 또 그들에게 알리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성령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보여주시고 확신을 주시고자 한 것들이 무엇인가가 몇 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Ⅰ. 이러한 제도를 통하여 성령이 보여 주시는 것은 첫 장막이 그대로 있는 동안에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오직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8절). 
이것이 성령께서 구약의 유형들을 위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한 가지 교훈이다.  

구약 시대에는 신약 시대에 비하여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이 분명하지도 않았고 또 그리로 들어가기도 좀처럼 쉽지도 않았다.  

이제 신약 시대에서는 불멸의 길이 밝히 나타났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의 영예요 또한 이 신약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 되는 것이다. 
구약의 시대에는 신약 시대처럼 그렇게 하나님께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없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다 충분하게 들어갈 수 있는 방들을 그는 또한 준비해 놓으셨다.

Ⅱ. 이러한 제도들을 통하여 성령이 보여 주시고자 한 두 번째 것은 이 장막은 장차 있게 될 것의 비유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9절). 
구약의 섭리는 어둠의 섭리였으며 기간이 짧은 것이었다.  그것은 다만 그리스도와 복음을 통해 실현될 것들의 유형을 잠시동안 보여 주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즉 그것들은 때가 되면 자신의 광채로 인해 스스로 모습을 나타내겠고 또 그의 나타남으로 모든 어두운 것들을 물러가게 할 장차 올 것의 형상에 불과하였다.  

다른 말로 그것들은 태양이 떠오르기 전의 별들과 같은 것이었다.
Ⅲ. 이러한 제도들을 통해 성령이 보여 주시고자 한 세 번째 것은 구약의 제단에 드려지는 희생제물과 봉헌물이 드리는 자의 양심까지 온전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제물들은 죄로 인하여 못쓰게 되고 더러워지는 것을 사람들로 피할 수 없게 하며 또 죄의 지배를 벗어나지도 못하게 한다. 
또 이러한 제물들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공포를 벗어나게 해 주지도 못한다.  이러한 제물들은 그 제물을 드리는 자의 빚을 탕감해 주지 못하며 그의 의혹을 제거시켜 주지도 못한다. 
인간이 비록 온 생애를 통하여 계속 여러 가지의 제사를 드릴 수 있을 지라도 결코 이 제사들을 통하여 마음의 평정을 얻거나 양심의 깨끗함을 얻을 수는 없다.  

물론 이 제사를 드리는 자들은 제사조차 드리지 않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세상적인 형벌로부터는 구제될 수는 있을지도 모르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과 같이 지옥으로부터 완전히 구원받을 수는 없다.
Ⅳ.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구약의 외적이며 육적인 규례에 지나지 않음을 가르쳐 주신다(10절).  

구약의 불완전함이 세 가지로 지적되고 있다.
1. 그 속성 자체가 불완전하다. 
구약의 규례는 다만 외적이며 육적인 고기와 음식과 여러 가지 씻는 것만을 규제한다.  이 모든 것은 육신의 일들로 별 유익이 없다.  이런 것들은 육신을 정결케 하여 줄 뿐이다.
2. 이러한 구약의 규례는 지키든 안지키든 무관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규례를 안지킬 때는 이 세상에서의 무거운 형벌이 주어진다는 것이 경고되었다.  이같이 이 구약의 규례가 힘겨웠던 것은 그 지키는 사람들로 약속된 자손, 곧 그리스도를 바라고 사모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3. 구약의 규례는 영원히 지켜지기 위해 수립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즉 그들에게 약속되었던 더 좋은 것들이 그들에게 실현될 때까지만 지속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대는 새로운 개혁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알려질 필요가 있는 모든 것들이 더 밝게 나타나며 모두에게 선한 뜻을 품고 아무에게도 악한 마음을 품지 않게 할 더 큰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며 또한 우리의 영혼과 언어에 좀더 큰 자유가 주어지며 복음의 규례를 따른 더욱 거룩한 삶이 실현되는 시대인 것이다. 
우리는 율법의 시대에 지내던 사람들보다 복음의 시대 아래 더 큰 유익을 얻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더 나아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더욱 나빠지게 될 것이다. 
복음에 입각한 삶이야말로 최상의 생이다.  복음에 입각해서 사는 삶에는 천박하거나 어리석거나 헛되거나 가혹한 것이 개재될 수 없는 것이다.
Ⅴ. 성령은 이를 통하여 우리에게 우리가 이러한 유형들을 원형이신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키지 않는다면 결코 이러한 유형들을 바르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신다.  

우리가 유형들을 원형에 적용시키게 될 때 원형이 유형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바로 저자는 이러한 목적으로 구약의 유형들을 상술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과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는 그의 서신을 통해 그리스도가 모든 율법에 대제사장들보다 무한하게 높으심을 전하고자 하였다(11,12절).  그는 다음과 같이 이 사실에 대하여 완벽하게 진술하고 있다.
1. 그리스도가 모든 대제사장들보다 무한하게 높으신 것은 "그리스도는 장래에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분" 이시기 때문이다.  

본문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볼 수 있겠다.
(1) "좋은 일"이란 구약 시대에 오리라고 하였었고 이제 신약 시대에 도래한 모든 좋은 것들을 말한다고 볼 수 있겠다. 
구약의 성도들도 구약의 섭리 아래서 여러 가지 영적이고 영원한 축복들을 누렸는데 이러한 축복들을 그들이 믿고 있었던 장차 오실 메시야에 의해 미리 주어진 것들이었다. 
구약은 장차 올 것의 그림자를 보여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신약은 구약에서 부분적으로 맛보고 또 오리라고 한 모든 것들이 성취된 시기인 것이다.
(2) "좋은 일"이란 기독교 시대 말기에 올 것들을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기독교 말기에 이루어질 것들에 대한 여러 가지 예언과 약속들이 말씀되고 있는데 "좋은 일"이란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모든 일들의 성취 여부는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제사장 직분에 달려 있는 것이고 또 그에 의하여 성취될 것이다.
(3) "좋은 일"이란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질 좋은 것들[영광]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신약과 구약은 다같이 온전히 성취된 것이다. 복음의 시대가 은혜의 시대라고 한다면, 하늘나라는 영광의 시대인 것이다.  

또 구약이 신약에 의해서 성취된 것 이상으로 신약의 약속은 하늘나라에 이루어질 것이다.  

과거에 있었거나 현재 존재하거나 장차 다가올 모든 좋은 것들을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에 근거한 것이고 또 거기에서 넘쳐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2. 그리스도가 모든 제사장들보다 무한히 높으신 것은,  "손으로 짓지 아니할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11절) 대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섬긴 장막은 이 세상의 장막이 아니라 그의 몸 곧 성령이 복된 처녀에게 임하시므로 수태된 인성이 바로 그가 섬기신 장막이었다.  

이 장막은 지구상의 모든 구조물 즉 심지어는 성막보다도 무한히 뛰어난 새로운 건물이며 또 새로운 구조의 장막인 것이다.
3. 그리스도가 다른 대제사장들보다 무한히 높으신 것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가 저희 대제사장들처럼 황소나 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보혈을 가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셨기 때문이었다. 
대제사장들이 가지고 소와 염소의 피는 그의 피를 상징한 것으로써 그의 피는 항소와 염소의 피보다 무한히 귀중한 것이다.
4. 그리스도가 다른 대제사장들보다 높으신 또다른 이유는 그가 일년에 한번씩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단 한번 들어가시므로 1년 유효의 죄사유를 얻어내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고 이로써 매년 지성소에 들어가는 일을 폐하셨기 때문이었다. 
다른 제사장들이 1년에 한번씩 지성소에 들어가야 했다는 것은 그 제사직의 불완전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만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승천의 유형으로 일년간의 죄 사유만을 획득한데 불과한 것이었다.  

이러한 구역의 제사제도에는 그러한 제도가 유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또 그것들이 원형과 비슷한 점을 지니고 있다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이미 있었다.  

이같이 구약의 제도가 유형에 불과하여 원형이 지니고 있는 것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못하다면 그것들은 결코 원형이신 그리스도에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5. 또한 성령은 구약의 희생 제물의 피가 지니는 효능이 어떤 것이고 그 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이를 통해 성령은 그리스도가 흘린 피의 능력이 보다 큰 능력이라는 것을 나타내주었다.
(1) 율법에 의한 희생 제물의 피의 효능은 육체를 정결케 하는 것에 불과하였다(13절). 
제물의 피는 외적 인간을 제의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불결을 면케 해 주고 또한 이 세상에서의 처벌을 면케 해주는 효능은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적인 몇 가지 특권의 자격을 부여해 주는데 불과한 것이었다.
(2) 성령은 이에 비해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은 더욱 큼을 바르게 지시하셨다(14절).  

그러므로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하였다.  이제 다음을 생각해 보자.
① 그리스도의 피가 그처럼 위대한 능력을 지니게 된 이유
첫째,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게 자신의 몸을 바친 때문이었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인성을 그의 신성의 제단에 비치셨다.  그는 홀로 제사장과 제단과 희생물의 삼중 역할을 하셨다.  

즉, 그의 신성이 제단과 제사장의 역할을 그의 인성이 희생물의 역할을 담당하셨다.  이제 이러한 제사장과 제단과 희생 제물은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게 충족한 것이었다. 
둘째, 그것은 그리스도가 영원한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그의 신성에 의하여 지지를 받으셨을 뿐 아니라, 성령에 의해 지지를 받으셨다.  

이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복종에 의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무한히 도와주셨다. 
셋째,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흠없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의 본성에 있어서나 생애에 있어서 조그마한 죄도 없으셨다.  이러한 사실은 흠없는 것을 요구하는 제사법에 아주 일치하는 것이었다.
② 그러면 그리스도가 피의 효능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그리스도의 피의 효능은 매우 크다.  그 피의 효능이 큰 이유는
첫째, 그의 피는 죽음에 이르는 행실로부터 양심을 깨끗이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 피는 죄로 오염된 영혼과 양심에까지 침투한다.  이 죄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영혼이 죽어 있으므로 죄가 비롯되며 또 죄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다.  사체를 만지는 것이 율법적으로 불결한 것이듯이 죄와 관계를 갖는 것은 사람을 불결케 하는데 영혼까지 불결하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죄를 깨끗이 하는 능력이 있다. 
둘째, 그리스도의 흘린 피가 우리로 하나님께 봉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의 피는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가로막는 죄를 없애 줄뿐만 아니라, 성령의 은혜스러운 영향을 통하여 영혼을 거룩하게 하고 재생시킨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대가로 지불하사 우리의 영혼을 거룩케 하고 재생시키신 것은 우리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생생한 방법으로 섬기게 하시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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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제사장직(2)(히 9:15-22)
본문에서 바울은 복음을 유언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복음을 그리스도의 새로운 마지막 유언으로 해석한다. 또한 이 유언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하고 그의 피의 능력이 역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Ⅰ. 본문에서 복음은 유언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로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한 유언으로 취급되고 있다
전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체결된 엄숙한 약속은 계약(=언약)이라고 칭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여기서는 유언이라고 칭하여진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계약은 쌍방간에 또는 다수인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합의를 말한다.  

계약 당사자들이 체결한 조약의 내용들은 그들의 능력 밖의 문제들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항들이다.  

이러한 계약에는 그 계약에 규정된 방법대로 시행되며 또 계약체결 기간동안만 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나 유언은 일방적으로 선포되는 행위이다.  

그것은 유언자의 자의에 의해서 선포된다.  또 그 유산은 유언자가 정해 놓은 유산 수취인에게 수여된다.  그러나 유언은 유언자가 죽었을 때에 비로소 효력이 있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는 신약(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라는 것과(15절) 또 그가 중보자가 되신 것은 여기서 언급된 몇 가지 목적과 목표를 인해서 이라는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1. 그가 중보자가 되신 것은 사람들을 율법 또는 첫 계약을 범한 그들의 범죄로부터 구해내시기 위해서였다. 
이 율법은 사람들의 범죄의 대가로 그들의 자유를 몰수해 버렸다.  그리고 인간들이 구원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채무자, 노예 또는 죄수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2. 또한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되신 것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이 영원한 기업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유언에 의하여 참 자격을 갖춘 유산 상속인들에게 물려 주시고자 하는 훌륭한 유산인 것이다.
Ⅱ. 신약 즉 그리스도의 유언이 효력이 있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죽으셔야만 했다.  유언은 죽음에서부터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다.  

바울은 두 가지 논증을 통해 이 사실을 증명했다.
1. 모든 유언의 일반적인 특징에 비추어서 그리스도의 유언을 논증하였다(16절). 
일반적으로 유언이 있는 곳에 그것이 효력을 나타내려면 반드시 유언자가 죽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유언자가 죽기 전에는 재산은 유언자의 소유이며 또 유언자는 자신이 내키는데 따라서 유언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거나 변경할 권한이 있는 것이다. 
유언자가 죽으면 유언이 바뀔 수 없게 되고, 또 유언이 효력을 발생하게 되기 전에는 유언에 의해 어떤 재산이나 권리도 집행될 수 없는 것이다.
2. 첫 언약이 효력을 지니기 위해서도 모세는 특별한 방법을 취했어야 했다는 점을 들어 그리스도의 유언을 논증하였다.  

즉 첫 언약도 피흘림이 없이는 실현될 수 없었던 것이다(18,19절). 
당시 모든 사람들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공의의 하나님에 의해 그들의 유업과 자유의 생명까지도 몰수당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비의 큼을 보여 주시고자 은혜의 계약을 그들과 체결하시고 구약 시대에 그 은총이 의미 하게나마 실시되도록 명령하셨다.  

그러나 그 계약도 피조물의 피와 생명이 없이는 안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의 상징으로서의 황소나 염소의 피를 받아들이셨고, 이러한 수단에 의하여 은혜의 계약이 구약 섭리하에 유효하게 하시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따라서 취한 방법이 본문에 상세히 언급되고 있다.
(1) 모세는 율법대로 모든 백성에게 계명을 다 말하였다(19절). 
모세는 모든 백성에게 언약의 취지와 또 그들이 해야 할 의무를 설명하였고 의무를 다하는 자에게 약속된 보상과 범법자들에게 주어질 형벌에 대하여 선언하였다.  

모세는 이 계약을 그의 백성들이 모두 받아들이기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요청의 방법은 특이한 것이었다.
(2) 그 다음 모세는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서 양털과 우슬초로 그 피와 물을 뿌리었다.  

이 피와 물은 창에 찔린 주님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와 물을 의미하였다.  그의 옆구리에서 나온 이 피는 사람들의 칭의와 성화를 위한 것이었다.  

또한 이 피와 물은 신약의 두 성례 즉 성찬과 세례를 나타냈다.  

붉은 양털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의[보혈의 공로]를 입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여, 우슬초는 {보혈 공로를 믿는]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하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이 피와 물을 우슬초와 붉은 양털로 다음의 것들에게 뿌리었다.
① 율법과 언약이 적힌 책에 뿌렸다. 
그것은 은혜의 계약이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확고해졌으며 그 피의 능력에 의해 우리에게 그 언약이 유익한 것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② 사람들에게 뿌렸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가 피를 흘리심이 우리를 적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아무 효과도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책과 사람들에게 피를 동시에 뿌렸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다같이 그 계약을 승인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 책과 사람에게 동시에 피를 뿌렸다는 사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과 하나님 상호간의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피를 뿌리며 또한 모세는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다"라고 말하였다.  

이 뿌려진 피는 그리스도의 피의 유형으로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은혜의 약속을 재확인해 주는 것이었다.
③ 장막과 모든 그릇에도 그 피를 뿌렸다. 
이 사실은 이 장막에서는 드려지는 모든 희생 제물과 수행되는 예배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의 거룩한 요소들에 붙어있는 부정한 것들이 제거된다.  이 부정한 것은 그의 대속의 피를 통하지 않고서는 씻겨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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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제사장직(3)(히 9:23-28)
바울은 본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을 위해서와 같이 정결케 해야 한다면 하늘에 있는 것들은 그보다 나은 제물로 정결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성령이 우리에게 알리려 하신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말한다.
Ⅰ.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도 청결케 할 필요가 있었다"(23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같이 명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명령은 꼭 지켜져야만 되는 것이었다.  

또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을 정결케 해야 했던 것은 이 세상의 유형으로 하여금 하늘나라에 있는 원형과 닮은꼴을 유지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명령이 옳은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은 하늘나라의 모형(복사판)이며, 성도들이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는 장소인 지상의 성전은 곧 지상에 있는 하늘나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Ⅱ. 본래 하늘에 있는 것들은 염소나 송아지보다 더 좋은 제물로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다.
본래 원형은 그 모형보다 더욱 훌륭한 법이다.  그러므로 원형은 더 좋은 제물을 드림으로써 성별될 필요가 있었다. 
이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은혜로 시작하여 영광으로 완성되는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특권인 것이다.  

이 하늘에 있는 것들은 적절한 제물을 통해서만이 사람들에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제물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율법의 제물보다도 한없이 훌륭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명백하다.
1. 율법 시대의 제물이 바쳐진 장소보다는 복음 아래서의 제물이 바쳐진 장소가 더 훌륭하다는 사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율법시대의 거룩한 곳은 손으로 만든 것으로 참 성소의 모형에 불과한 것이었다(24절).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은 비록 땅 위에서 이뤄졌지만 하늘에 올리워지셨고 거기서 매일 우리를 위해 중재하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늘에 오르사 안식을 취하시고 그가 받으셔야 마땅한 영광을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어 우리의 몸과 행위를 하나님께 우리 대신 봉헌해 주시며 우리 모든 일에 완전케 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하늘나라에 자리를 예비하시는 것이다.
2. 희생 제물 자체가 구약 시대 제물보다 훌륭하다는 사실에서 찾아 볼 수 있다(26절). 
율법 시대에 희생 제물은 그 봉헌자에 따라 각각 다른 짐승들의 생명과 피였다.  또는 짐승들의 피는 별 가치가 없는 것같기도 하였다.  

사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피의 유형[예표]이라는 점만 뺀다면 그것은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은 바로 자신의 몸이었다.  그는 자신의 피를 드렸다.  

또 그는 하나님과 본질상으로 일체가 되므로 그 피는 곧 "하나님의 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것이다.

3. 율법 시대에 제물은 반복하여 자주 드리는 것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한 번 드려짐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던 그리스도의 희생이 훨씬 뛰어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한번이면 모든 것에 족하기 때문에 존귀하고 완전한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지금도 계속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셨다가 다시 내려오셔서 또 죽으시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면 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그렇다고 할 때 이 위대한 사업은 in fieri - 즉 항상 진행 중이고 결코 완성되는 때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그리스도의 모습이라면 이성으로도 이해될 수 없을 것이요 또한 계시나 그리스도의 인격의 위엄에도 일치되지 않는 우스운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던 것이다"(26절).  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분배해 주시는 마지막 은혜의 섭리이다.
4. 율법의 제물이 별로 효험이 없는데 비해 그리스도의 희생은 효험이 있다는 사실에서 그리스도가 드리는 희생이 뛰어남을 찾아 볼 수 있다.
율법의 제물은 그것 자체로는 죄를 없앨 수 없었다.  즉 그것은 죄에 대한 사유를 허락 받을 수도 없고 도 죄를 막아낼 능력도 없는 것이다.  

죄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서 우리를 지배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한번의 희생으로 죄의 종말을 가져오시고 사탄의 사업을 멸망시키셨다.
Ⅲ. 바울은 인간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말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의 타당성을 논증한다.  

또 이 논증을 통하여 사도는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뜻에 비교하여 설명한다.
1.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섭리는 두 가지이다.
(1) 인간들은 반드시 죽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죽음과 동등한 어떤 변화를 겪어야만 한다. 
죽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며, 생명이 매듭이 풀리거나 산산이 찢겨져 버린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또 모든 관계가 죽음으로 일시에 단절되며 하늘나라에 대한 우리의 시련기간과 준비 상태가 끝나고 저 세상으로 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죽는다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나 일생에 한 번 치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잘 죽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경건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잘 죽을 것이요, 또 한번만 죽으면 된다는 것이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죄 속에서 죽어야 하는 악인들에게는 그들이 다시는 잘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이 큰 공포가 될 것이다.
(2) 죽은 뒤에 심판석으로 나아가 즉시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인간에게 정하신 하나님의 섭리였다. 
왜냐하면 영혼은 심판자인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영혼의 영원한 삶의 자리를 심판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세상의 종말이 오면 심판자에게 불려갈 것이다. 
인간이 죽어야만 하며 심판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인간에 관한 하나님의 불변의 섭리이다.  

이상과 같은 것이 인간들에게 정해진 하나님의 뜻이므로 인간들은 이 사실을 믿어야 하며 신중히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정하신 뜻도 다른 인간들의 경우와 비슷한 것이었다.
(1)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들, 즉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셨고 또 그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한 번은 제물로 바쳐지셔야 했다.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드려지셔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우리의 죄를 위하여 찔림을 당하시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의 백성들의 불의를 그리스도께 지우셨다.  

이들 그의 백성들의 수효는 비록 나머지 구속받지 못하는 인간들의 수효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대단히 많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들 모든 백성들이 그에게 모였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많은 형제들 가운데 장자가 되실 것이다.
(2) 그리스도가 그를 바라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죄없이 재림하실 것이라도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① 그리스도께서는 그때에는 죄없이 나타나실 것이다. 
그가 첫 번째 오셨을 때도 그에게는 죄가 없었으나, 그는 많은 인간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셔야 했었다.  

그가 첫 번째 오셨을 때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고 그리고 그는 죄 많은 육신의 모습을 입으시고 나타나셨다. 
그러나 그가 두 번째 나타나실 때 그는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첫 번에 그의 백성들의 죄를 온전히 사하셨으므로 이제는 그의 용모가 훼손되시지 않을 것이요 극도로 영화로울 것이다.
②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를 바라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그때 그는 그들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축복되게 하실 것이다.  그때에 그들이 수효가 다 찰 것이요 그들의 구원 또한 완성될 것이다. 
이제 다음을 관찰해 보자.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것은 참된 믿는 자들의 특징이 될 것이다.  믿는 자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믿는 자들은 희망과 성스러운 바램으로 그리스도를 우러러본다.  

그들은 모든 의무를 다하여 모든 규례를 지키며 섭리에 순응하면서 그리스도를 바란다.  그리고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재림을 예비한다.  

그의 재림이 믿지 않는 모든 자들에게는 갑작스러운 파멸이 될 것이지만(그들은 재림에 대한 경고를 이때까지도 비웃고 있다) 그의 재림을 바라는 자들은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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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9:1

>> 첫 언약에도...있더라 - 저자는 첫 언약 곧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대조하기 위해 첫 언약에 대해 먼저 진술하고 있다. 첫 언약에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두가지 방법은 임시적인 것이다(10절).  (1) 섬기는 예법 - 이것은 예배에 관한 규례이다. 첫 언약에도 완벽하고 거룩하게 규정되어 있다(6-10절).  (2) 세상에 속한 성소 - '세상에 속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코스미콘'(* )은 신약성경에서 대부분 '하나님과의 대적 관계'를 나타내는 반면에 본절의'코스미콘'은 하늘과 대조되어 '지상적인'이란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본문는 '손으로만든 성소'와 동일한 의미이다(24절).이 성소는 일시적일 뿐만 아니라 현재 세상의 불완전함을 반영한다(Lane, Hewitt).

=====9:2

 본절은 성소와 그 안에 있는 기물에 대한 진술이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쪽에 있던 '향단'(출30:1-10)은 언급되지 않는다.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이는 성소라 일컫고 - 본절은 첫 언약에서 나타난 '세상에 속한 성소', 즉 성막은 두 개의 방 즉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된다. 두 개의 방중 안쪽 방을 '지성소'라고 부르며(3절) 바깥쪽 방을 '성소'라 라고 부른다.

>> 등대 - 이것은 성소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가운데에 중심 줄기를 기준으로 양편에 세 개의 가지가 나와 있고 7개의 등잔과 22개의 꽃모양의 받침대가 있다(출25:31-39;27:20,21).

>> 상과 진설병 - '상'은 조각목, 즉 아카시아 수종의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진설병을놓아두는 곳이다. '상과 진설병'은 성소의 북쪽에 위치하며 12개의 진설병이 각각 6개씩 두 줄로 놓여 있고 안식일마다 교환되었다(레 24:8).이 떡은 무교병이었다(Philo,Lane).

=====9:3

>>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 '둘째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구분하는 휘장을 가리킨다(출 26:31-33;36:35,36;레 24:3).둘째 휘장의 뒷편 즉 안쪽에 있는 방을 지성소라고 부른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로 1년에 한번 대제사장만이 들어가 제사을 지냈다(7절).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구속 사역을 이루셨을 때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던 휘장이 찢어졌다(마 27:51). 이 사건은 성도들이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이제까지 제한 되었던 하나님의 존전(尊前)에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9:4

 >>금향로...있고 - '향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미아테리온'(*  )은 70인역에서는 '향로'로만 사용된 반면에,요세푸스(Josephus)나 필로(Philo)는 '향단'이란 의미로 사용하였다. '뒤미아테리온'은 본래 성소에 속한 기물로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 앞에 있었다(출 30:6;40:26). 그런데 본절에서는 지성소에 있는 기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향로'와 지성소와의 관계에서 해결할 수 있다.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곧 속죄일에 향을 피운 향로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다.그는 속죄제를 드리기 전에 하나님 앞에 분향하여 그 연기로 속죄소를 가리웠다(레 16:12, 13). 향의 연기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와 속죄소를 가리워 범죄한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면하도록 하였다(출 20:18, 19). 비록 향로는 항상 지성소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성소에 속한 기물(器物)로 볼 수 있다(Hewitt,Bruce, Morris). 더욱이 본절의 '있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쿠사'(* )는 '...에 속하다'란 의미로 향로가 지성소 속에 고정 배치된 기물이라기보다는 긴밀한 관계를 맺은 것임을 시사한다(Hewitt, Morris).

>>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 - '언약궤'는 아카시아 나무 즉 조각목으로 만든 상자로서 '증거궤'라고도 불렸다(출 25:22). 언약궤 안에는 세 가지가 들어 있다.

>>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 - 이것은 하나님께서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셨던 양식임을 알리기 위한 증거였다(출 16:32-34).

>> 아론의 싹난 지팡이 - 이것은 아론이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중에서 제사장 직분을 위해서 하나님의 선택함을 입은 사람임을 알리기 위한 증거였다(민17:1-11).

>> 언약의 비석들 - 이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의 돌판이며, 그 내용은 십계명이다(출 25:16;31:18;신 9:9;10:3,4).

=====9:5

>> 수 없노라 - 저자는 70인역을 따라 언약궤 뚜껑을 '속죄소'라고 부르고 있다(출25:17, 21, Philo). 대제사장은 속죄일에 속죄제의 피를 속죄소에 뿌렸다(레 16:14,15). 속죄소인 언약궤의 뚜껑에는 한쌍의 그룹(cherubim)이 있었다. 이 그룹은 언약궤의 뚜껑 위에서 날개를 펴고 서로 마주 대하는 모습으로서 하나님의 보좌를 수호하는 천사들이다(겔 10:1-8;계 4:6-8).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다(삼상 4:4;시80:1;99:1). 더욱이 '영광'은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룹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Bruce, Morris). 한편 저자는 그룹에 대해서 더 이상의 언급을 피한다. 그 이유는 저자가 본서를 통해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옛 언약을 상징하는 성막에 대한 자세한 교훈이나 설명이 아니라 옛 언약을 상징하는 성막에 대한 자세한 교훈이나 설명이 아니라 옛 언약과의 비교를 통해 새 언약의 우월성과 완전성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Hewitt).

=====9:6

>>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 '첫 장막'은 '성소'를 가리킨다.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섬기는 예(禮)는 세가지엿다. (1) 아침마다 금향단에 분향하였다(출30:7-8). (2) 저녁마다 등대에 불을 밝혔다(출 27:20, 21). (3) 매 안식일마다 떡상에 열 두개의 진설병을 교체하였다(레 24:8, 9).

=====9:7

>>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 '둘째 장막'은 '지성소'를 가리킨다. 이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년 중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레 16:11-16). '일차씩'은 횟수로 한 번을 가리킨다기보다는 '하루씩'으로 보는것이 더 타당하다(Morris). 왜냐하면 대제사장이 최소한 두 번 지성소에 들어간 것이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레 16:12,15). 한 번은 대제사장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들어갔다. 이렇게 두번 외에도 수 송아지의 피를 뿌리기 위해서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으며(레 16:14), 랍비 전승에 의하면 앞서 언급한 세 번의 경우 외에도 번제를 드리고 나서 놓아둔 기구와 불 담는 그릇을 제자리에 갖다 놓기 위해서 들어갔다(Morris).

>>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 '허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그노에마톤'(* )은 대제사장 자신과 백성들이 모르고 범한 죄로소 무지를 가리킨다(Morris,Hewitt). 이러한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대제사장은 '피'를 드려야만 했다. 저자는 본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매개체로서 '피'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이후에 언급될 논쟁에서 그리스도의 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Lane).

=====9: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 저자는 성령께서 옛 언약의 성막이 주는 의미를 가르쳐 주신다고 진술한다. 옛 언약의 성막이 주는 의미는 새 언약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온전한 구속 사역을 이루시기 전까지는 7절에서 언급한 '성소'와 '지성소' 그리고 제의적인 규례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Bruce,Lane) . '첫 장막'은 6절에서와 같은 '성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세워진 '성막'을 가리키며(Johnsson, Young, Bruce, Morris), '성소에 들어가는 길'은 곧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시사한다(Bruce, Morris).

=====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 장막은 완전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하는 상징이다. '현재까지'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장막이 있던 때까지를 가리킨다. 이렇게 해석할 때 본절은 구역 시대에는 아직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길이 열리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2) 바로 지금까지를 가리킨다. 이렇게 보면 본절은 당시의 성막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대조로 성막은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갈 수 없는 반면에,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함을 시사한다. 이 두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다(Bruce, Morris).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 본문은 구약 시대의 성막이 불완전한 이유를 나타낸다. 그것은 구약 시대의 성막과 제사로는 양심을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구약 시대의 의식(儀式)인 '예물과 제사'는 외형적이어서 내면적이며 영적인 양심을 온전케 할 수 없다.  '양심'의 헬라어 '쉬네이데신'(* )은 하나님과의 전인적 관계를 의미하며,  '온전케'에 해당하는 헬라어 '텔레이오사이'(* )는 몸뿐만 아니라양심까지 죄의 오염으로부터 깨끗해지는 것을 의미한다(Lane). 구약 시대의 의식은 일년에 한번씩 행해지는 속죄 제사를 통해서(7,25절;10:1-3) 영원한 정화를 할 수 없었으므로(Johnsson) 하나님과 섬기는 자 사이의 전인적 관계를 회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회복을 위해 참 장막인(8:2) 그리스도의 희생과 언약이 성취되어야 했다.

=====9:10

>>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 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 장막에 관련된 규정들은 물론 구약성경에 나타난 모든 규례들 즉 '먹는것'(레 11장)과 '마시는 것'(레 10:8,9;11:33-38;민 6:2,3), 그리고 '씻는 것'(출 30:20;레 15:4-27;17:15,16;민 19:7-13)에 관한 규례들은 모두 육체와 관련된 외형적인 예법이다. '육체의 예법'은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것으로 새 언약으로 대체될 때까지만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옛 언약이다. 옛 언약의 제의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양심이 깨끗해지고(11-14절) 하는 성소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10:19, 20) 새 언약이 성취될 때까지만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새 언약이 성취됨으로 그것의 지위와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었다(Hofius, Lane).

=====9:11

 개역성경에는 '데'(*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1-10절에 언급된 불완전하고 제한된 첫 언약으로부터 새 언약으로 주제가 바뀜을 시사한다.

>>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 '장래 좋은 일'은 옛언약이 제공해 주지 못한 온전한 죄의 씻음과 하나님께로 자유롭게 나아가게 해주는 새 언약의 구속을 의미한다(Morris). 이러한 영적 축복은 구약의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들이 속죄일에 행한 제사와는 달리 영원한 새 언약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취한 종말론적 특성을 반영한다(Johnsson, Grundmann, Lane). 한편 '오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게노메스'(* )는 부정 과거로서 새 언약의 좋은 일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Morris). 그러나 아직 완전히 실현된 것은 아니다.

>>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 '말미암아'의 헬라어 '디아'(* '통해서')는 도구격으로 그리스도께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에 의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있음을 시사한다. 그러기에 혹자는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 천국이라고 주장하나(Bruce) '그리스도 자신의 몸'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Calvin, Morris,Westcott). 왜냐하면 저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해서 새 언약의 구속 사역이 성취되었음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24절;10:20).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 구약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속죄일에 동물의 피를 통해서 구속 사역을 행하였다(레 16:3, 5-11,15,16). 염소는 백성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었으며 송아지는 대제사장 자신과 가족을 위한 희생 제물이었으나 그 효력은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것이었기에 매년 속죄일마다 희생 제사를 드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새 언약의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온전한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다(Lane). 즉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희생 제사는 영원하며 완전한 것이었다(Hewitt).'단번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파 팍스'(* )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속죄 사역의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매년 반복되는 옛 언약의 구속 사역과는 달리 반복의 가능성이나 필요성이 없음을 시사한다(Morris, Lane). 한편 '성소'는 '지성소'를 가리키는 것으로(Hewitt) 본절에서는 지상의 장막이 아닌 하나님의 존전인 하늘 성소를 가리킨다(Lane, Bruce, Morris). 그리스도께서 속죄 사역을 성취하셔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심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전한 성취를 시사한다(Lane).

=====9:13

>>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 본문은 옛 언약 하에서 드려진 동물의 피의 효력에 대한 언급이다. '염소와 황소의 피'는 일반 제사에 드려진 제물이었음은 물론 속죄일에 대제사장과 가족, 그리고 백성의 속죄를 위한 피였으며 (12절), '암송아지의 재'는 정결케 하는 의식에 사용되었으며, '재'는 부정한 것을 깨끗게 하는 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민19:1-10). 이러한 희생 제물의 피와 재는 효과가 있는 것이나 단지 외형적이며 상징적으로 깨끗해지고 거룩해지는 것에 불과하였다(Morris, Lane).

=====9:14

>> 하물며...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 본문은 새 언약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속 사역의 효과에 대한 언급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옛 언약의 제사보다 질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옛 언약의 제사가 성취할 수 없는 것 즉 양심을 깨끗이 하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막던 죄를 제거하는 구속 사역을 성취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새 언약의 목적이다. 새 언약을 통해서 양심이 깨끗해진 그리스도인들은 옛 언약 하에서 불완전한 속죄로 인하여 제대로 섬길 수 없었던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

>>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디아 프뉴마토스 아이오니우) - '프뉴마토스'에 대해서 혹자는 그리스도 자신의 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 자신의 인격과 영을 통해서 구속 사역이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nell). 그러나 '프뉴마토스'는 성령을 통해서 주어진 임무를 성취하는 이사야서의 '주의 종' 사상을 암시하는 것으로 성령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사42:1;61:1,Bruce, Morris, Lane).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과는 달리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속죄 사역을 이루신 대제사장이심을 시사한다(Morris, Lane).

>>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 - '흠 없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모몬'(* )은 70인역에서 결점이 하나도 없는 희생 제물을 가리킬 때 사용된 희생 제사 용어이다(민 6:14;19:2). 이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완전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것은 완전한 순종의 성취를 시사한다(5:8, 9;10:5-10, Hewitt, Lane).

=====9:15

>>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 '이를 인하여'는 본문이 11-14절에서 언급한 내용의 결과임을 나타내다. 특히 이것은 앞절에서 언급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양심을 깨끗이 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한 것을 가리킨다(Morris,Lane, Hewitt). 한편 '중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시테스'(* )는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죽음의 효과를 시사한다(Michel).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종말론적 구속을 성취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기로 약속하신 새 언약을 실현시키셨다(8:8-12;10;16,17;렘 31:31-34). 따라서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이시다.

>>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새언약의 중보자가 되신 목적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첫 언약하에서 외형적인 면만 속죄한 불완전한 요소를 해결하여 온전한 속죄를 이루었다.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율법의 불완전성을 해결하여 양심까지 깨끗하게 속죄시킴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하여금 기업을 얻게 하였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녀들에게 주어질 '기업'은 죽은 사람의 유언에 따라 얻는 재산을 가리키는 것으로(Morris) 영원한 구원을 시사한다(1:14;5:9,Lane).

=====9:16,17

>>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유언'에 해당한는 핼라어 '디아데케'(* )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언약. (2) 유언. '디아데케'는 신약성경에서 보통 '언약'을 가리키나 본절에서는 '유언'을 의미한다. 유언은 언약과는 달리 반드시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기 위해서 죽어야만 하셨음을 시사한다(Hewitt, Lane). 이러한 죽음의 필요성은 언약의 절차에서 비롯된다 구약에서 언약의 비준(批准)은 희생 제물에 의해서 보증된다(창 15:9-21;출 24:3-8;시 50:5;렘 34:17-21, G.E. Mendenhall).그리스도는 이러한 새 언약의 비준을 위한 희생 제물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고자 하시는 새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으며(요 4:34;6:38, 39) 아들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는 새 언약의 효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죽으셔야만 했다(8:9-12;요6:40).

=====9:18

>>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은 것이 아니니 - '이러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호덴'(* )은 본절의 결론이 16,17절에서 언급된 법적 원리에서 유래된 것임을시사한다. 제사 의식에서 희생 제물이 대표하여 피를 흘림으로 언약의 효력이 발생한 것처럼 새 언약에서도 대리자의 죽음을 통해 언약의 효력이 발생하였다. 새 언약에서는 구속 사역이 한 사람의 대리적인 죽음을 통해 성취되었으나 첫 언약 즉 옛 언약에서는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의 죽음을 통해서 외형적인 구속 사역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옛언약이든 새 언약이든 간에 '디아데케'('유언')의 효력이 발생되기 위해서는 죽음이 필수적인 조건이었다(Morris).

=====9:19

 저자는 본절에서 구약 시대에 언약 체결을 위해 희생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출애굽기 말씀을 인용하여 기술하고 있다(출 24:3-8).

>>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 구약시대에 언약을 맺는 과정은 세가지 단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중 본절은 첫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계명을 백성들에게 선포함으로 언약을 맺기 위한 항목과 조건들을 제시하는 것이다(Morris). 언약의 조건들을 선포하면 백성들은 받아들일는지에 대한 가부(可否)를 결정해야만 한다. 조건의 선포 후에 두 번째 과정은 언약의 내용들을 책에 기록하는 것이나 본절에서는 이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 본문은 언약 체결의 세 번째 과정이다. 피뿌림의 과정을 통해서 언약의 비준이 결정된다. 출 24장에는 피를 백성에게 뿌렸다는 사실은 기록되어 있으나 '물과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였다'는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물과 양털 그리고 우슬초'는 대개 시체를 만져서 부정해진 자나(민 19:1-22) 문둥병자(레 14:4-6, 49-51)를 정결케 하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구약성경에서 '책'에 뿌렸다는 사실 역시 나타나지 않으나 이것은 사람의 손이 닿은 책이 부정할 수 있기 때문에 정결례(淨潔禮)를 행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Morris).

=====9:20

>>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 본문은 출 24:8(LXX)의인용이다. 저자는 70인역 출 24:8을 본절에 인용하면서 두 가지를 변경하였다. (1) 70인역의'이두'(* ,'보라')가 본절에서 '투토'(* ,'이것')로 변용(變用)되고 있다. 이 사실은 저자가 본절에 인용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성만찬 말씀과 일치시키기 위해 변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Lane, Hewitt). 따라서 본절은 '주의 만찬'을 암시하며(마 26:28;막 14:24, Spicq,Michel, Thomas). 희생된 동물의 피에 의해서 옛 언약의 효력이 발생됨을 시사한다(Lane). (2) 70인역의 '디에데토'(* ,'위탁하였다')가 본절에서는 '에네테일라토'(* ,'당부하였다')로 바뀌었다. '디에데토'는 하나님께서 첫 언약을 제정하셨음을 암시하는 반면에, '에네테일라토'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기 위해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이 비준해야 함을 시사한다(Hughes).

=====9:21

>>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 본절은 후대에 이루어진 장막의 정결 과정과 연결된다. 장막의 봉헌은 첫 언약과의 연속성을 내재하고 있으며 첫 언약이 보다 구체적이고 제도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Morris). 이러한 장막의 봉헌 후 모세는 아론 집안의 제사장들을 피와 기름으로 거룩하게 하였으며(레 8:23,24,30) 또한 장막과 그에 필요한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하였다. 구약성경에는 장막과 모든 기구에 기름만 바른 것으로 나타나나 본절에서는 피를 뿌렸던 것처럼 장막과 기구에도 피를 뿌린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Bruce,Morris).

=====9:22

>>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 '거의'의 헬라어 '스케돈'(*  )은 정결케 함에 있어서 피를 제외한 다른 예외적인 방법이 있음을 나타낸다. 그 예외의 방법은 네 가지이다. (1) 전쟁터에서 노략한 전리품은 '물'로 정결케 하였다(민 31:23). (2) 속죄제에서 비둘기조차도 드릴 수 없는 가난한 자는 '곡물'을 제물로 드려 정결케 되었다(레 5;11-13). (3) '향'을 속죄제로 드리기도 하였다(민16:46). 그러나 이러한 정결 방법은 예외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경우 희생 제물이 피를 통해서 정결케 되었다.

>>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피 흘림'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이마텍퀴시아스'(* )는 '피를 의미하는 '하이마'(* )와 '쏟아 붓다'라는 의미의 '엑퀸네인'(* )의 합성어로 피를 통한 속죄를 묘사하기 위해서 저자가 만든 조어인 듯하다(Bruce, Lane, Morris). 사람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타락하였고 그 결과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죽을 죄인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생명이 있는 피 흘림이 필요하였다(레 17:11). 첫 언약에서는 희생 제물의 피를 통해서 죄 사함을 얻고 생명을 소유할 수 있었으며, 새 언약에서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온전한 사함과 생명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피 흘림은 죄사함을 얻기 위한 절대적(絶對的)인 조건이다.

=====9:23

 저자는 본절에서 '하늘에 있는 것들'과 그 모형인 '지상에 있는 것들'을 비교하여 희생 제물의 피와 그리스도의 피를 대조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그러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운'(* )은 본절이 19-22절에서 논한 내용에서 비롯된 추론임을 시사한다. 한편 구약에서 모세를 통해 허락하신 첫 언약과 장막을 통한 희생 제사는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다. 이러한 모형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 흘림이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율법에 따라 정결케 하는 것은 피 흘림이 없이는불가능하기 때문이다(22절).

>>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 '하늘에 있는 것들'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1) 혹자는 사람들의 죄로 인해 더렵혀진 '하늘 성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ne). (2) 혹자는 하늘 성소에 들어갈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uce, Spicq, Morris, Moffatt, Delitzsch,Hewitt). 이 두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다.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인 지상에 있는 것들은 피로써 정결케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외형적인 정결케 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더 좋은 제물' 즉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영적이고 내적인 양심의 정결을 필요로 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이기 때문이다(엡 2:22). 한편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하는 '제물'의  헬라어 '뒤시아이스'(* )는 복수이다. 이것은 한번의 제사로서 속죄 사역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내는 총칭적 용법으로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제사가 단번에 행한 영원한 제사임을 시사한다(Morris).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통해 들어가신 곳은 지상의 성소가 아니다. 지상의 성소는 단지 외형적(外形的)인 것만을 속죄하는 불완전한 것으로 하늘의 실체를 보여주는 그림자에 불과하기때문에 그리스도는 지상 성소의 실체인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거하는 성소인 참 하늘에 들어가신 것은 (Hofius) 이미 십자가 상에서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지상의 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들처럼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위함이었다(Hewitt, Morris, Bruce).

=====9:25

>>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일년에 한 번씩 속죄일에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희생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다(레 16장). 이러한 속죄 행위는 매년 반복 되었으며 이 속죄 행위를 위해 매년 다른 희생 제물의 피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구속 사역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은 영원한 효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반복해서 드릴 필요가 없다. '드리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페레'(* )는 제사 행위를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로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드린 사역과 속죄일의 제사 행위를 비교하고 있다.

=====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 '그리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페이'(* )는 문자적으로 '만일 달랐다면'이란 의미이다(Morris). 이것은 저자가 설정한 가정(假定)으로 옛 언약의 대제사장들이 행한 것처럼 '만약 그리스도께서 자주 자신을 드렸다면'이란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옛 언약의대제사장처럼 자주 자신을 드렸다면 여러 번 죽음을 당하셔야 했을 것이다.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본문은 앞서 언급한 사정에 대한 대답이다. 저자는 그 대답으로 '단번에'라는 표현을사용하고 있다. '단번에'는 앞서 언급한 '자주'와 대조 되어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절정에 나타나셔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 죄를 완전히 제거하셨음을 나타낸다(Bruce, Lane, Hewitt). 한편 '세상 끝'은 구속 사역의 성취의 때인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상에서 구속 사역을 성취함으로써 개인의 종말과 역사의 종말을 도래(到來)케 하셨다(Bruce, Morris).

=====9:27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의 최종적인 완전성을 증명하는 예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며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 죽음은 불가항력적인 것이며 최종적인 것이다. 죽음 이후에 모든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

=====9:28

>>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본절은 사 53:12(LXX)에 나타난 주의 종의 사역을 암시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앞서 언급한 모든 인생에게 적용된 죽음의 원리가 적용되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으셨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이 인생의 최종성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목적 또한 최종적(最終的)인 것이다. 그가 자신을 '단번에' 드린것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온전히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 본절은 구약의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리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간 것과 연결된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리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갔을 때 백성들은 근심 가운데 대제사장이 직무를 마치고 지성소에서 나오기를 밖에서 기다린다. 대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왔을때 백성들은 대제사장이 대신 드린 속죄제를 하나님께서 받으셨음을 확신하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셔서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가(24절) 자신을 기대하는 자를 위하여 두번째 나타나시는'파루시아'(* , '강림')와 대비된다(Lane, Bruce). 옛 언약의 대제사장들이 속죄제의 제물을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초림과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통해 백성들의 죄를 완전히 제거하시고 하나님 존전에서 중보 사역을 행하시며(24절), 또한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속죄제를 드리고 성소에서 나올 때 밖에서 기다리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속죄제를 드리고 성소에서 나올 때 밖에서 기다리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속죄제를 받으셨음을 확신하고 기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그리스도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자들은 구원의 상속자로서(1:14;2;3, 10;5:9) 영원한 기업을 누리며 완전한 구원을 소유하게 된다(Hewitt,Lane,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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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장에서 새 언약의 탁월성을 언급한 저자는 이제 옛 언약 하에서의 제사와 그 의미를 다루면서 새 언약의 우월성을 다시 부각시킨다. 다시 말해서 8:1-6이 새 언약의 제사장으로서의 예수의 등장을 주로 강조하였고 8:7-13은 새 언약의 필요성과 기원을 대략적으로만 말했다면, 본장은 옛 언약의 핵심인 인간 제사장을 통한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구속과 새 언약의 핵심인 예수를 통한 영원하고 완전한 구속을 세부적으로 비교, 대조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7장에서부터 계속되어진 대조의 표현을 탁월하게  사용하면서 저자의 의도에 따라 중심 개념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표현 양식. 본장을 포함하는 본서의 중심 단락인 7:1-10:18은 여러 가지의 생생한 대조들로 그 메시지가 증거되고 있다. 즉 옛 언약과 새 언약이 함께  대조가  되어 옛 언약은 그 결점을 드러내고 새 언약은 그 우월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지상  장막의 고상함과 아름다움은 하늘 성소의 위엄과 영광에 밀려 옆으로 비켜날  수 밖에  없었다(1-5절). 외적인 것은 내적인 것과 대조가 되었다(10,13,14절). 또한 한정된 일시적인 것들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과 강하게 대조가 되었다(9,10,12절). 자원한 것이  아니라 규례에 의해 드려진 동물의 피는 자원하여 드리신 하나님의 아들이 피와 대조가  되었고(12-14절) 불완전하기 때문에 계속 드려야만 했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단번에 완성된 제사와 대조되었다(25,2절).   약속은 성취에 의하여 대치되었다. 해마다 사람의 죄를 생각케 하던 제사들이  영원히 그것을 잊으시겠다는 변치 않는 약속으로 대치되었고(10:3,17),  하나님 앞에  서서 섬기던 제사장들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로 대치되었다. 즉 본서의 저자가 열정을 가지고 증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율법에 대한 복음의 우월성, 옛 언약에 대한 새 언약의 우월성, 불완전함에  대한  현재의 확실한 축복에 관한 것이다. 그 대조의 내용을 희생 제사를 중심으로 하여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 중심 개념과 저자의 의도. 

원수들에게서 괴롭힘을 당하고 심한 박해를 받고  있던 1세기의 유대인 성도들은 기독교 진리에서 떨어지거나(3:12)  흘러  떠내려갈(2:1)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이들은 율법 아래 있을 때 훨씬 더 안녕과 부요함을  누렸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본장에서 구약의 옛 언약이 육체의 예언(10절), 모형(23절), 그림자(24절)로 표현된 것은 저자가 바로 위와 같은 신앙적 위기에 빠진 유대인들에게 구약의 제물인 양도 불완전하고 그 제사장도 불완전하지만, 예수만이 스스로 제물인 동시에 그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하고도 유일한 존재임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결국 본서의 저자는 예수가 희생 제물과 그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 구약의 완성자란 사실, 즉 신약과 구약의 연속성 및 발전성을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구약의 율법에만 얽매여 율법을 완성한 자를 도리어 배척하는 시대 착오적  모순을 자각시키고자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저자는 세 가지 확실한 사실들을 강조한다. 즉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를 덮어주는 용서와(22절) 현재를 위한 중보와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미래의 상속(15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논점은 1세기 성도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의 성도들에게 해당된다.

  저자는 위기와 절망의 시대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조용하지만 확신있게 전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죄와 고독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  되신다.

우리들의 과거의 죄는 '죄를 속하려고 죽으신'(15절) 그리스도로 인해 사해졌다. 이제 우리는 '새 언약의 중보'(15절)인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얻었다. 그리고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장차 썩지 않을 기업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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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 언약의 필요성(9:1-10)

  저자는 옛 언약이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성급하게 무시해버리지는 않는다. 그는 옛 언약이 부분적인 가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이전의 영광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본장 초두에서 먼저 세상에 속한  섬기는  예법을 설명한 후 그 한계를 밝힘으로써 자신의 본래 의도인 더 좋은 언약의 필요성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1) 성막의 상징적 의미. '첫 장막'(2절)인 '세상에 속한 성소'(1절)는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식양대로 지어진  것이다(출 25:40; 39:32). 이 같은 식양을 따라 세워진 성소와 성소의 각종 성물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성막의 구조와  성물들의  상징적 의미를 살피는 것은 본장의 이해를 심화시켜 준다 하겠다.

    (까) 성막의 구조와 상징적 의미. 

광야에 세워진 성막에 대해서는 출애굽기 25-40장까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아래 그림에 나타나는 대로 장막(tabernacle)은   성막의 뜰(sanctuary)과 성소(the Holy Place)및 지성소(the Holy of Holies)로  이루어져 있다. 성막의 뜰(sanctuary)은 길이 약 50m, 폭 25m이고 주위의 막은 2.5m  높이에 가늘게 꼰 세마포장이었다. 이 성막의 내부는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  부분은 성소요, 제일 깊숙한 부분은 지성소였다.   이 성막은 이동식 성전이었다. 이것은 바로 인성을 입으신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삶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음을 나타내주는 상징이다. 또한 이 이동식 성전은 어디든지 요청되는 것으로 가서 달려가 싸워야 하는 성도의 영적 태세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문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 성막의 내부 중 바깥쪽의 성소를 '첫 장막'이라 부르고 있으며(6절) 맨안쪽의 지성소를 '둘째 장막'이라고 부르고 있다(7절). 이 장막들은 다같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바, 첫째 장막은 이 세상 교회의  투쟁적인 역할을 나타내며 또한 그리스도의 두 본성 중에서 인성을 나타낸다. 반면에 둘째 장막은 교회의 승리를 나타내며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성막이  성소의 뜰 -> 성소 ->지성소로 점차 그 규모가 축소되고 있음은 하나님께서  죄인들로부터 엄격히 구분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다) 각 기구들의 상징적 의미. 장막 안의 각 부분에는 하나님이 명하신 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장막 자체나 그 구조뿐 아니라 기구, 즉 성물들도 깊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a) 뜰에 있는 기구들. 

성막의 뜰에는 성소와 지성소로 이루어진  성막  본체와 물두멍, 번제단이 위치해 있었는데 이곳을 제외한 나머지 장소에선 제사장들이 제물을 잡거나(레 1:3,11; 3:2,8; 4:4)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먹었다(레 6:16,26;  7:6).  즉 성막의 뜰은 희생으로 드려지는 동물들이 죽임을 당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을 제사장들이 먹는 화목의 장소였다.

  뜰 앞에 있는 번제단 위에는 놋그릇이 있었는데 제물이 거기에서 바쳐졌으며,  번제단 네 모퉁이에는 뿔이 있어서 여기에 제물로 바쳐지는 동물이 묶여졌다. 또한 뜰  안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물두멍이 있었는데 제사장은 그의 거룩한 직분을 행하기 전에 그곳에서 몸을 씻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전에 회개가 선행되어야 함을 상징한다.

      (b) 성소의 성물들과 상징적 의미. 

첫째 장막(6절)인 성소  남쪽에는  순금으로 만들어진 등대가 있었다. 이 등대는 성소를 밝히기 위해 있었는데(출  25:37)  세상의 빛이신 예수와(요 1:4) 세상의 빛의 사명을 위임받은 신자들을 상징한다.

  성소 북쪽에는 떡상이 있고 그 위에는 매 안식일마다 한번씩 뜨거운 것으로  갈아놓는 12덩이의 떡이 있었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12지파가 하나님 앞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여기 놓인 떡은 하늘이 주신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상징하며(요6:35,54) 동시에 하나님께서 영혼의 양식으로 일상 생활에 주시는 말씀을 상징한다(신8:3; 마 4:4).

  마지막으로 성소 안쪽 지성소로 가는 휘장 앞에는 향단이 놓여 있었다. 이 향단에서는 아침과 저녁마다 등불을 정리 할 때에 향을 피웠으며 향불은 언제나 끊이지 않았는데 이는 예수께서 구원의 향기이심과(엡 5:2) 성도들이 드리는 끊임없는 기도를  상징한다(계 5:8; 8:3-5).

      (c) 지성소의 성물들과 상징적 의미. 

성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지성소에는 금향로가 있었다(4절). 성소에 있는 분향단은 고정시켜 놓고 매일 아침  저녁에  향불을 피우지만, 이 금향로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씩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법궤 앞에 향을 피워 법궤가 향의 연기에 의해 가리워지게 하기 위한  조그마한  그릇이다. 이는 첫 언약 때의 제사장도 역시 사람이므로 하나님을 보면 죽게 됨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출 19:7-25).

  또한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었다(4,5절). 이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언약의 비석이 들어 있었다. 만나 항아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광야에서 먹이시던 하나님의 은혜를 후세에 가르치기 위하여,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자손들을 대제사장으로 부르셨음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언약의 비석들은 하나님이 내리신 계명을 모든 시대의 백성들이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남겨진 것이다.

  한편 언약궤 위에는 속죄소가 뚜껑으로 덮여 있었는데 이곳은 '죄를 속해주는 장소'라는 뜻에서 '속죄소'(출 39:35)로, 그리고 '은혜를 베푸시는 장조'라는 의미로 '시은좌'(출 39:35)라고도 불렸다.

  마지막으로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언약궤 위에 있었다(5절). 이  그룹들은 하나님의 보호,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영광의 중보, 하나님과 사람의  화평을  상징한다.

  (2) 첫 언약의 예법과 성소를 통해 성령이 보여주시는 것. 

8-10절은 옛 언약의 제도를 통하여 성령이 보여주시는 것을 소개한다.

  첫째로, 성령이 보여주시는 것은 첫 장막이 그대로 있는 동안에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열려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구약 시대는 신약 시대에 비하여  하늘  나라에 이르는 길이 분명하지도 않았고 또 그리로 들어가기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신약 시대에서는 불멸의 길이 밝히 나타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의 광채가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었다.

  둘째로, 이러한 제도들을 통하여 성령이 보여주시는 것은 이 장막이 장치  있게  될 것의 비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9절). 이 제도들은 다만 그리스도와 복음을 통해 실현될 것들의 유형을 잠시 동안 보여주는 데 의의가 있다.

  셋째로, 성령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구약 시대의 제단에 드려지는 희생제물과  봉헌물이 드리는 자의 양심까지 온전하게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온  생애를 통하여 계속 여러 가지 제사를 드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제사들을 통하여 세상적인 형벌로부터 구제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죄와 지옥으로부터의 완전한 구원은 불가능하다.

  넷째로, 성령께서는 이 제도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맡겨 두신 구약 시대의 외적이며 육적인 규례에 지나지 않음을 가르쳐 주신다(10절).

  다섯째로, 성령은 이 제도를 통하여 우리가 이러한 유형들을 원형이신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키지 않는다면 결코 이러한 유형들을 바르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이러한 성령의 보여주심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첫 언약에 속한 예법과  제도의 약점을 발견하게 된다.

    (까) 첫 언약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만나서 속죄받고 은혜받으며 영광에  동참하는 것이 보편화되지 못했다(6,7절). 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에 있어서의 제약을 나타냄으로 지성소로 들어가기 위한 새 언약의 필요성을 요청한다.

    (다) 피를 드린 점에서도 옛 언약의 약점이 있다(6절). 옛 언약의 제사장은  자신을 위해서도 짐승의 피를 드려야 했다. 이는 새 언약의 대제사장이 자신을 위해  피를 드리지 않은 것에 비교해 볼 때 큰 약점이다. 또한 옛 언약의 모든 예법은 심령보다는 육체적인 것에 강조점을 두었다. 예를 들면 레위기 11장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서 발생한 부정을 씻는 일에 중점을 두었으며, 민수기 19장은 죽은 자와  접촉하는  데서 발생한 부정을 씻는 일에 중점을 두었고, 레위기 12-15장은 일상 생활 중에  질병으로 발생한 부정을 씻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 고로 옛 언약의 제도는 육에 관한한  철저했지만 영에 관해서는 약점을 지닌다(10절).

    (따) 10절은 이 첫 언약에 따른 제도가 개혁 때까지만 맡겨둔 것이라 하여 그  자체가 약점이 있어 반드시 개혁이 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2. 새 언약에 의한 새 역사(9:11-22)

  본문은 이제 구약 시대 제사 제도의 참된 실체인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즉 저자는 본문을 통해 비록 구약 시대 제사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에 미흡하였지만 그리스도의 희생 제자는 영원한 효력이 지속되는 제사이며 유언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유언자의 죽임이 필연적이듯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연적임을  주장한다.

  (1) 그리스도가 드린 새 제사의 영적 효력. 저자는 이제 옛 언약의 제한된 효력으로 인한 좌절로부터 '장래 좋은 일'에 관한 언급으로 주제를 바꾸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짐승의 피가 아닌 바로 자신의 피를 흘리시고 하늘의 더 크고  온전한  장막, 곧 영원한 성소로 들어가셨다. 이 새 언약과 그리스도 자신을 제물로 하여 드려진  이 제사는 어떤 영적 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 그 효력은 다음의 세 가지 즉  우리의 구속을 이루심, 우리의 양심을 깨끗게 하심, 우리의 섬김을 거룩케 하심에서 찾을  수 있다.

    (까) 새 언약은 우리의 구속을 이룬다. 율법하에서는 아무도 용서의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죄를 없게 하지 못하는' 결정적 약점 때문에 옛 제사는 계속 행해져야 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우리로 하여금  죄사함의 확신을 갖게 하셨다(12절).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는 지난 날의 죄와 앞으로의 죄까지도 모두 해결하여 준다. 이 때문에 참되게 회개하는 성도는 그분께서 자기 피로  드리신 희생으로 말미암아 곧바로 그리고 영원히 사함받는 것이다.

    (다) 새 언약은 우리의 양심을 깨끗게 한다. 율법이 규정한 어떤  항목을  어겨서 의식법상 부정케 된 사람들은 옛 언약이 제시한 방법을 통하여 외적으로 정결케  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다시 의식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 본문은 14절에서 "그 제사가 이러하였는데 하물며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필요를 더욱 충족시키지 못하겠느뇨  ?"라고 수사학적으로 묻고 있다. 

이제 우리는 정결함과 온전함과 깨끗한 양심을 얻게 되었다. 이는 결코 정결케 하는 의식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화목 안에서 이루어졌다. 율법은 이를 능히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부정하고 더러운 양심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정결함을 받고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제사 제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우리의 악한 양심이 깨끗하게 되어진 사실을 기쁘게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따) 새 언약은 우리의 섬김을 거룩하게 한다. 불행하게도 인간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자신들도 만족을 얻지 못한 채 죽은 행실을 따르는 데에만 자신들의 정력을 쏟아왔다. 그러나 위에서 살핀 대로 이제 새 언약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우리는 죽은 행실로부터 벗어났다. 그런데 죽은 행실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 중 소극적 측면에 불과하다. 14절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적극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가 그것이다. 여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어떤 때를 따라 혹은  규정된 의무를 따라 섬기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섬긴다'고 할 때 사용된  헬라어 '라트류에인'(  )은 '완전한 복종으로 말미암는 거룩한 사역에의 섬김'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경배하며 예배하는 섬김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인 것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

  (2) 예수의 희생 제사의 우월성.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에 속한 대제사장으로  오셨다. 본서는 예수께서 좋은 일의 대제사장이심을 열 가지로 표현하였다.   첫째,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시다(2:17).   둘째,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시다(4:14).   셋째,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대제사장이시다(4:15).   넷째,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시다(5:6; 6:20).   다섯째,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대제사장이시다(7:16).   여섯째, 영원히 갈리지 아니하는 대제사장이시다(7:24).   일곱째,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대제사장이시다(7:25).   여덟째, 하늘 지성소에서 일하시는 대제사장이시다(8:1,2).   아홉째, 구약 시대의 모든 제사 제도를 완성시키신 대제사장이시다(24-26절).   열째, 만왕의 왕으로 오는 대제사장이시다(28절).

  이렇게 좋은 일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을 이루시며 드린 제사의 특징과 위대성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까) 제사의 특징. 새 언약의 역사를 이루신 우리 주님의 죽음은  자발적인  제사 즉 자신을 드린 제사였다. 이 제사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겠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제사는 '희생'이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제사라고 말할 때, 그 제사는 유대인만이 드릴 수 있는 특수한 제사가 아니라 한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제사였음을 의미한다. 유대인이 그의 전존재와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증거로서 자신의 가장 비싸고 가장 선한 것을 하나님께 가져와 온전히 드렸듯이, 그리스도는 그의 전존재를 온전히  하나님께 '산 제사'(living sacrifice)로 드린 것이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제사는 '자기 희생'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구약  시대의 희생 제사와 제물 자체에서 아주 달랐다. 기본적으로 구약 시대의 제물은  동물이었고 대리적 제물이었으나 예수의 제물은 자기 자신이었다. 예수의 제물은  또다른  점에서 구약 시대의 제물보다 뛰어나다. 즉 구약 시대의 제물은 죽음을 강요당했지만  예수의 제물은 자유 의사에 따른 것이다. 또한 동물을 제물로 드린 구약의 제사는 율법에  의해서 요구되었지만 이와 반대로 예수의 제물은 사랑의 소산으로 자발적이다. 뿐만  아니라 동물은 사고력이나 이성이 없으므로 죽음을 당하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예수께서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의지적으로 자기를  드리셨다. 마지막으로 동물은 거의 기계적으로 제물이 되었으나 예수께서 제물이 되신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해 일어난 거룩한 자기 희생이었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제사는 '흠없는 자기 희생'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간성에 속하는 모든 것의 완전한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인간은 사악함 때문에 그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 희생 제사 속에서 예수는 자신의 인간적인 조건들에 순응하여 그 가운데서 완전한 순종을 실천하여 자기를 흠없는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드렸다. 인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온 인류에게서 기대하셨으나 받지 못했던 것, 즉 인간의 완전하고 흠없는 순종과 섬김을 받으셨다.

  넷째로, 그리스도의 제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흠없는 자기 희생'이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리자이다. 아담이 하나님께 대하여 인류의 첫번째 시험에 실패함으로써 인류에게 연약함과 도덕적 악을 유발시켰으나, 두번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을 통한 흠없는 순종에 의해 인류에게 구원과 용서와 생명과 소망을 가져다 주셨다. 이런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의 의를 내포하고 요구하며 보증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나름대로 드려야 하는 희생을 우리를 위해 완전히 드리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우리의 것으로 인정할 때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님을 선언할 수 있다.

    (다) 제사의 위대성. 본장은 첫 언약에 속한 예법들이 약한 것에 비해, 새 언약의 예법들은 너무나 위대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 제사의 위대성을 다음과 같이 보여 준다.

  첫째로, 새 언약에 의한 제사는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이루어진 제사이다(11절). 사람이 만든 성소보다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성소가 위대한 것은 당연하다.

  둘째로, 새 언약에 의한 제사는 죄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위대하다(12-15절). 일시적, 부분적으로 정결케 하던 제사보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깨끗게 하는 제사가 위대함은 당연하다.

  셋째로, 새 언약에 따른 대속의 희생은 짐승으로 치른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생명으로 치러졌으므로(16-23절) 위대하다.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는 모든 것을 완성시키셨으므로 위대하다(26절).

  (3) 새 언약을 위한 그리스도 죽음의 필연성.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갖게 된다. 그것은 "새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왜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요한 것일까 ? 왜 그리스도는 죽어야만 했는가 ?"이다. 저자는 15-22절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밝히고 있다.

    (까)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그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 16절에서 저자는 이제 까지 '언약'이라는 의미로 언급했던 '디아데케'( )의 또다른 의미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 단어는 '유언'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새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을 통해서 성취된다고 볼 때 15절까지 사용하지 않던 '유언'이란 의미를 갑자기 사용한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영원한 기업을 언급하면서 이제 은혜로우신 유언자와 그 유언으로 인해 유산을 상속받을 자, 그리고 유언자가 죽을 때  상속 될 유산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의 필연성을 법률적으로 예증하고 있는 셈이다. 

  이 논증 속에서 우리가 첫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은혜로우신  유언자'이다. 영원한 기업을 유산으로 우리에게 주실 분은 은혜에 굶주려 있는  비참한  사람들에게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시는 '중보자'(  , 메시테스)이시다(15절). 그리스도께서는 의로우신 하나님과 호전적이고 불순종하는 인간들을 화해시키기 위하여,  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거대한 장벽들을 제거하시기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는 길을 여시기 위해 자기 생명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기에 인색하지 않으셨다. 즉 은혜로우신 유언자 예수 그리스도는 상속자들에게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죽으셔야 했던 것이다(16,17절).

  두번째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감사가 넘치는 상속인'이다. 우리는 영원한  기업을 입을 자, 즉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15절).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부르시고 계시지만 단지 호의를 베푸시기 위해서 부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하여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을 자리로 초대받을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며 이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은 부유하게 된다.

  세번째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풍족한 유산'이다. 이 유산은  약속된  영원한 기업이다. 이때 '약속된'은 이 유산의 확실성을, '영원한'은 이 유산의  성질을,  '기업'은 이 유산의 내용을 각각 나타낸다.

      (a) 이 유산은 약속된 것이다. 본서 전체를 통해 강조되고 있는 바, 이  약속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결코 식언하는 일이 없으신 분인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풍족한 유산을 받게 될 것이라고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다(7:21). 그러므로 우리는  그 기업을 확실히 받을 것이다.

      (b) 이 풍족한 유산은 영원하다. 이 기업은 쇠하거나 제거될 수 없으며  황폐해지는 법도 없다. 왜냐하면 이 유산은 궁성이나 창고에 쌓인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가장 확실한 장소인 하늘 곳간에(마 6:19-21) 쌓여있기 때문이다.

      (c) 이 유산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위해 약속하시고 마련하신  기업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을 첫번째 언약 아래에서의 죄로부터 '구속'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우리는 죄의 노예였지만 그분의 사역을 통해 우리는  죄악의 포로 상태에서 풀려나 자유로와지며 하나님의 의로운 종으로서 그분을 자유로이  섬기게 된다(롬 6:16; 갈 3:13; 엡 1:7; 골 1:14). 이 축복은 이제 우리의 것이다. 유언자는 죽으셨고 그 죽음이 일어났던 순간에 그 유산의 헤아릴 수 없는 이익이 우리의  것이 된 것이다.

    (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필연성을 성경적 예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즉 18-22절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피흘림이  없이는 죄인된 인간이 정결해질 수 없다는 것을 납득시킨다.

  첫째로, 구약 시대의 언약은 피로써 확증되었다(18절). 모세를 통해 받은 옛 언약은 피흘림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때에 온 회중에게 피가 뿌려졌고 이로 인하여 그들은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출 24:6-8). 마찬가지로 새 언약의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사함을 얻게 하기 위하여' 피를 흘려야만 했다(마 26:28).

  둘째로, 성소는 피로써 거룩해졌다(21절). 처음 성소 곧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여행 기간 동안 사용했던 장막은 피뿌림에 의해 정결해져야 했고, 이에 의해서만  그  모든 기구들이 깨끗해졌다(출 24:6; 레 8:15,19; 16:14-16). 본서의 저자는 이것을 또한 영적 생명의 유형(비유)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희생 제물로서의 죽음 즉 그리스도의 피흘림이 없다면 죄사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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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의 '피' 개념에 대하여.  '피'(  , 담,  ,하이마)는 그 단어  속에 포함된 '죽음'과 '생명'이라는 이중 개념으로 인해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는 속죄의 상징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이러한 최고의 종교적 성물(聖物)인 피의 식용(食用)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이것을 어기는 자는  극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창 9:4,5; 레 7:27; 17:10). 신약 시대에도 이러한 입장은 견지되어 예루살렘 총회에서 동일한 원칙이 가결되었다(행 15:20).

  피의 식용을 이처럼 철저히 금지시킨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피는 육체의 생명과 동일시되었으므로 피를 마시는 행위는 사실상 생명을  삼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2) 피로서 상징된 생명은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 영역에 속하였으므로 피를  마시는 행위는 하나님의 주권을 모독하는 신성 모독죄와 같았기 때문이다.

  (3) 피를 마시는 행위는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이 즐겨 행한 극악한 제사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4) 무엇보다도 피는 속죄의 유일한 수단으로서(22절) 장차 인류의 죄를 대속할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모든 언약의 완성(9:23-28)

  예수의 사역을 통하여 첫 언약에 관한 모든 것과 새 언약에 따르는 모든 것이  완성 되었다.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이를 가리켜 '완전한 정결'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예수께서 모든 언약을 완성하신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예수께서는 더 좋은 제물이 되심으로(23절) 모든 언약을 완성하셨다. 구약 시대의 제물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으로 쓰였지만 신약 시대의 제물은 하늘의 실체로 쓰였다. 예수께서 더 좋은 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인해서 첫 언약 때의 미약했던 모든 제도와 새 언약 때의 완전을 요구하시는 모든 제도에 대하여 완성을 이루셨다.

  (2) 예수께서는 참 하늘 성소에 들어가심으로(24절) 모든 언약을 완성하셨다.  예수는 모든 언약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그림자인 땅의 성소에 들어가시지 아니하고 실체요 본체인 하늘의 성소,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성소에 들어가셨고 우리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

  (3) 예수께서는 단번에 제사를 드림으로써(25-28절) 모든 언약을 완성하셨다.  예수께서 구약 시대의 제도를 따르셨다면 매년마다 수차례 죽으셔야만 했다. 그러나  예수는 구약 시대처럼 자주 드리기를 원치 아니하셨기에(25절)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리에 따라(27절) 단 한번 제사를 드림으로 모든 언약을 완성하셨다. 그분은 단번에  제사를 드림으로써 죄를 없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26절) 단번에 제사를 드려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분이셨다(28절).

  (4)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은 모든 언약의 완성이다(28절). 새 언약은 이제  예수께서 온 세상 인류 중에서 믿음을 가지고 주 안에서 죄없이 살았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심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모든 언약의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계약을 파기한 죄인들이다. 우리는 약속을  저버렸으며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이것을 제대로 깨닫는 자만이 새로운  계약을 갈구하고 소망할 수 있다.

  둘째로, 자비로우신 하나님 스스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은혜로  계약을  갱신하신다. 새로운 계약은 보다 나은 계약으로서 형식적 조항들의 계약이 아닌 자비로운 약속의 계약이며, 특별한 행위의 계약이 아닌 내적 마음과 삶 전체의 계약이다. 이 계약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생명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셋째로, 이 새로운 계약은 각 개인에 의해 분명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이 계약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맺어졌고 우리를 위해 보증된 그 계약을 자발적으로 감사하며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이 계약의 화해와 특권과 지위는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속죄 사역을 완성하셨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요 3:16; 롬 5:8; 8:32; 요일 4:9,10)과 더불어 기쁘신 뜻(롬 8:29; 엡 1:4,5)이 잘 드러나 있다. 본장 전체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다루고 있으므로 본 주제 강해에서는 특별히 속죄의 성질, 속죄의 완전성과 범위 그리고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의 특별한 가치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1) 속죄의 성질. 

속죄는 제물되신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 포함된 '제사'를 의미한다(11,12절). 또한 속죄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유화'(宥和)의  의미를 포함한다(롬 3:25; 요일 4:10). 더 나아가 속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을 허무는 화목을 의미하며(롬 5:10; 고후 5:20), 궁극적으로는 택한 자를 죄 가운데서  건지시는 구속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엡 1:7; 골 1:14).

  (2) 속죄의 완전성과 범위. 

속죄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생겨난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단 한번으로 종결되었으며(28절) 그 자체 안에 사죄의  능력을 갖는 내재적 효능을 지녔다(10:14; 롬 5:19,21). 그러므로 속죄는  완전하다.  그러나 이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선택하신  자에게만 해당된다(마 1:21; 눅 19:10; 요 6:37).

  (3) 속죄의 특별한 가치.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몸소 형벌을 당하심으로 우리를 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다고는 결코 주장하지 않는다.  또한 성경은 속죄의 가치가 우리 주님께서 받으신 고통에서 기인된다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속죄의 특별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 본서의 저자는  특별히 장막에서의 제사와 우리 주님의 속죄 제사를 대조하여 장막에서의 제사는 제사를 드리는 자들에게 죄를 상기시켜 주는 주관적 영향력을 가질 뿐이지만 그 죄를 사하는  객관적 효력은 가지지 않는다고 확증했다(10:4). 반면에 우리 주님의 속죄 제사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10:10). 단순한 죽음은 하나님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만한 하나의 실제적인 제사,  성육신과 죽기까지의 순종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함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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