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1.2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130.통회-사유.인자-속량.구속주여호와경외.기대-기다림-앙망-주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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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pitiation, appeasement, placation = making favorable, 贖罪 속죄,속량 (<피로써> 대가 지불하여 죄를 덮음 -->..심판 보류<구>), 宥和 유화  = 화해 ==> 목표 :: atonement 보상(통한) 일치, 하나됨의 소통 관계 회복

@@@代贖 대속(대가 지불한 구속), 대가 지불 ransom payment + 구속 통한 구원 salvation thr' redemption * 거듭남(중생), born again(replace by Christ) + 자유 주심 giving freedom = JC의 (십자가 죽음의) 대가 지불 통한 유일무이한 구속<되 사옴 buying back + 자유 주심 giving freedom = 구원(사망에서 생명으로) eternal salvation>  redemption through ransom payment by Jesus Christ' blood  (예수(Jesus)가 십자가(十字架)의 보혈(寶血)흘림으로 만민(萬民)의 죄(罪)를 대신(代身) 씻어 구원(救援)한 일.)  ....대가 지불하고 구속함(ransom and Redeem) : 여기서 ransom<대가>란 노예나 죄인을 자유케 하기 위해서 대신 지불한 값을 말함(민 18:15).

@@@redemption, buying back 救贖 구속 [대속(代贖)하여 구원(救援)함. 죄악(罪惡)과 악마(惡魔)의 손에서 인류(人類)를 건져냄.]........하늘의 속죄소에서 JC는 그분의 피로 <단 일회적으로> 대가를 치루심으로써 전 인류의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 죄를 마귀-사탄에게되돌리셨음(아사셀 양).....이에 더하여, JC 믿는이마다 [구원 받은 후에도 일상 생활 중에 범하는 죄들마다 친히 주께 나아가 회개-아뢰고 고백함으로써 얻는 죄 사함의 속죄 위해] 언제든지 지성소 시은좌(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음  ::: (([속죄 개념이 달라졌음] 구약시대에서는 희생제물의 흘린 피로 속죄소를 덮어 죄인의 죄를 (일시적으로) 가림으로써 진노하심을 진정(심판 보류)/화해-은총 재개의 의미를 가졌지만<죄 흔적 남음>, 신약에서는 *1) 하늘 지성소의 속죄소에 뿌려진 구주 JC 보혈로 인한 완전한 대속을 통한 구원 이룸<모든 죄 하나하나마다 흔적조차 제거해 버리심> + *2) 믿는이는 <죄와 죄들을 자각할 때마다> 언제든지 시은좌에 나아가 구주 보혈을 의지함으로써(구주를 속죄제-속건제로 취함으로써 죄 사함 받을 수 있고, 또한 번제와 소제되신 구주를 그 자신의 번제와 소제로 취함으로써 ) 항상 하나님과 화목 + 연합한 한 영됨을 누리게 하셨음


개역개정]시130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주음성외에는446. 455주님의마음을본받는자.주님의뜻을이루소서425.나주를멀리떠났다273. 주없이살수없네292.구주를 생각만해도85.내가늘의지하는예수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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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구속자, 구속하시는 여호와====@구속[무름(속량)/자유]회복---속전(지속적으로 정결케 하는 보혈의 능력)--보수./보응/심판

la'G:(1350, 가알) 되 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행하다 [구속자 redeemer..근친/근족/혈연자 =고엘]

가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되사다, 도로 찾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redeem, 근친 역할(권리, 의무)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어근은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어근과 매우 유사한 어근 파다([d"P; , 6308): 구속하다 redeem) 사이의 한 가지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가알(la'G: , 1350)의 강조점이 구속자의 자격과 행함에 있는데, 반드시 근친이어야 하며, 근친의 특권이나 의무는 다름아닌 속량에 있다는 것이다.((JC가 바로 그러하시다..그는 태초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신 아들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이미 예고된 대로, 참사람으로서 성육신하셨고 인성을 가지셨기에 [죄로 인해 자기의 모든 것을 사탄에게 넘겨주고 파산한 자들인]우리의 피를 나눈 근친/근족으로서 모든 면에서  참된 자격과 능력을 갖추신 유일무이한 고엘이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가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자기의 친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함하는 4개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a)  첫째로, 가알은 오경의 법령에서 궁핍한 때에 판 밭을 되사는 것이나 가난할 때 자신을 판 이스라엘인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되사서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로 그대로 각 사람에게 배정/배분된 대로 모든 것을 돌려주고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지고지선의 진복 누림의 바탕을 제공하여 주는 구속의 일]로서 이런 매입과 무르는 일은 근친의 의무였다(레 25:25-54).

레 25:25에서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다. 

물론, 만약에 자신이 부유하게 되면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을 '무를' 것이다(레 25:26). 

한편, 가난한 자는 기업만이아니라 자기 자신을 동족 이스라엘인에게나(레 25:39)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타국인(레 25:47)에게 팔기도 하였다. 

그를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척 - 형제, 삼촌, 사촌들, 가족의 혈족 - 에게 있었다(레 25:25, 레 25:48, 레 25:49).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친척을 속량한 redeemed 자(혈연자)는 '근족 - 구속자'로 알려져 있었다. (참조: EDBW).

---가난한 자의 구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실례는 수혼법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가 가장 광범위하게 미치는 룻기에 있는 것 같다. 

신 25:5-10에 의하면, 남편의 형제는 후사 없는 과부를 취하여서 씨를 영속시키고, 남자 후손과 결부되어 있는 땅의 계승을 보증해야 했다. 

여기 [수혼법의 실행 의무]에서 그것을 실행하는 근친은 야밤이라고 불리어지며, 어근 가알은 사용되지 않는다.

....룻의 상황에서는 두 가지 것들, 즉 밭을 되사는 것과 수혼이 언급된다. 근친은 밭을 사는 것을 기꺼워했지만, 룻과 결혼하는 것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의 요지는 나오미가 가난하여 밭을 팔 수 밖에 없었을 때, 근친은 그녀를 위해 그 밭을 되사야 했다는 데 있다. 그는 후사 없는 형제의 과부를 위해서 이 일을 기꺼이 하려 했지만,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 근본을 모르는] 룻과 결혼하여 그들의 기업을 지속시킬 자손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거부하였으며 여기에 보아스가 개입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것, 즉 친족과 수혼은 구별되어야 한다. 고엘(구속자)이란 단어는 후자의 제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레게트(Leggett)는 룻기에 구속적이고 메시야적인 유형론의 주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고엘(goel)로서의 보아스의 행동들에서 우리는 보아스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예시되어 있음을 보았다. 보아스가 구속의 권리를 소유하였으면서도 분명히 룻을 위하여 개입할 의무(까지)는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보라...룻은 나오미의 견해를 따라서 겸손하게 자신을 신부로 취하여 후사를 낳도록 해 달라는 뜻으로 보아스의 이불을 들추고 눕는다!!...겸손과 순종의 극치이다!!))

....보아스가 이 가난한 과부들의 곤경을 보았을 때 그의 생애가 여호와와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러 왔던 것과 같이 메시야의 경우도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법에 의해 지배되고 또한 그가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었다(시 72:2, 시 72:4, 시 72:12, 시 72:13, 사 11:4).

(b)  둘째로, 가알은 재산이나 여호와께 바쳐진 희생제물 아닌 짐승들을 무르는 것, 혹은 부정한 짐승들의 첫 소산을 무르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레 27:11-33). 

이 [속전!!]사상은 인간이 교환물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전은 부정직한 교환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추가 몫이 제공되었다. 이런 경우에 무르는 자는 친족이 아니라 재산의 주인이었다.

(c)  셋째로, 가알은 살해당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의 보수자"(RSV '보복자' revenger)가 되는 가장 가까운 친족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며, 칼 분사 고엘로 나타난다. 

고엘은 구속자이며, 이 구속자는 '피의 보수자'로 불리우는데, 그의 임무는 자신의 친척을 살해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다(신 19:6). 

이 사상은 가까운 친족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돈을 지불함으로서 집을 재매입하거나 노예를 속량할 수 있는 것처럼, 친족의 잃어버린 생명은 마땅히 살인자의 그에 상응하는 생명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친족은 피의 보수자이다. 이런 사형 제도는 피비린내 나는 숙원과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엘은 죄없는 사형 집행인이었으며 따라서 살해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보수자'라는 의미로 12회 나온다(민 35:12, 민 35:19, 민 35:21, 민 35:24, 민 35:25, 민 35:27, 신 19:6, 신 19:12, 수 20:3, 수 20:5, 수 20:9).(참조: R. L. Harris).

(d)  넷째로, 가알은 하나님께서 '구속자'로서 '구속하시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출 6:6에서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라고 약속하신다(출 6:6, 참조: 시 77:15).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출 15:13).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시 78:35).

....이사야서에는 '구속자'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지칭하여 13회 나오는데 모두 사 41- 63장에서 사용되었다. 가알은 하나님에 대해 9회 사용되었으며, 사 43:1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가알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사 51:10, 사 63:9)과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의 구원(사 48:20, 사 52:3, 사 52:9, 사 62:12)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41:14)이며 '너희의 왕 이스라엘의 창조주'(사 43:14, 사 43:15)이며 '만군의 여호와'(사 44:6)이며 '야곱의 전능자'(사 49:26)이다. 그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는 '구속 받은 자'이다(사 35:9).

....시편에는 종종 영적인 구원이 육적인 구원과 병행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시 69:18.,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시 103:2, 시 1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윤택을 잊지 말찌어다...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이 그러하다(참조: EDBW).

[욥19:25,26,27]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25. "And as for me,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And at the last He will take His stand on the earth.   *26. "Even after my skin is destroyed, Yet from my flesh I shall see God;   *27.Whom I myself shall behold, And whom my eyes shall see and not another.  

....유명한 구절, 욥 19:25에서 고엘이란 단어는 흠정역성경에서 '구속자' redeemer로 번역되며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속죄의 사역을 하러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히브리어 "파다"에 의해 더욱 특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제 욥 19:25에 나오는 이 단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욥을 죽음의 먼지에서 구속할 친구이자 친족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더욱 정확하게 관련된다. 욥 19:26의 난해한 어구, "이 가죽을 벗은 후에"는 다른 모음들과 함께 "내가 깨어난 후에"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NIV 각주와 욥 14:12-14을 참조하라. 욥 14:12-14에서 부활에 관한 욥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를 돌아보시며 욥은 나무처럼 제 2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그의 소망에 의해 절정에 달하게 된다 - 욥 14:14의 할리파는 욥 14:7의 할랍에 대한 응답이다). 어쨌든 욥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기의 고엘이신 하나님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참조: R. L. Harris). 


..[[사59:20,21]]..*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9:24]] *2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샤칼..알아들음) 나를 아는 것(야다)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빈 : 식별/분별/지각/이해) 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합당한 사랑/경외함/존귀히여김/친밀한 섬김동행-경험 체득한 바 참지식-심사숙고/주의집중-이해/총명/명철(샤칼)/통찰-배운바를 깨달아앎(=야다)/분별/지혜 [[성품/뜻과 길-기념이름-능력과 힘]]...추구할 바

..[[미가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의-인-신따라]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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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괴수 죄성 지닌 자, 세상살이는 메섹과 게달의 장막에 사는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 탈취와 노략의 쟁투, 곧 환난의 날이라, 오직 구주JC께 부르짖어 그분안에 충만히 거하라.

[시120]   *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3.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4.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5.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이제, 마음 열어, 중심으로 동행하시는 영원반석/성채/산성-보혜사-인도하시며 지키시는 목자, 엘에제르 HS와 동행하라

[시121]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보라, 그리스도를 살라, 사람들로 하여금 평강과 형통 허락하시는 네안의 여호와를 감사하며 흠모하고 기리게 하라, 자원하여 나아와 공예배에 함께 참석하기를 원하도록 만들라.

[시122편]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네눈을 [세인의 조소와 멸시로부터]구주 JC께 돌려 중심으로 산 믿음 발휘함으로 앙망하라, 긍휼 구하라, 정복자 그 이상의 존재, , 허락하신 영생안에서 모든 이김을 감사하라

[시123편]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엘에제르, 임마누엘 여호와께 감사하라...[세인의 약탈-침노와 멸절로부터] 말씀의 뜻대로 행하시도다.

[시124]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지고지선의 진복은 오직 구주로 사는 (선을 행하며 정직하게 동행하는) 기독자들은 여호와의 선대하심/평강형통 깨닫고 감사하라..

[시125편]   *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4.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오순절-해방/회복]구속 은혜 기쁨안에서: 섭리의 때, 해방 감격 = 전존재로 누리는 영적 기쁨과 감사, 실제적 형통 [모든 이들이 주께 돌이킴] 회복/부흥 추구 실행의 긍휼 간구

[시126편]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솔로몬에게 깨닫게 하신 말씀--친히 집과 가정을 세우며 지키시는 전능-은혜 구주를 높이며 친밀한 하나됨 이루어 따르라, 자랑-기쁨의 가정과 기업된 자녀들이여

[시127편]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 경외함 : 야다-에셰르-바라크, 구주영접/영생부활생명의 은혜, 믿음소망사랑오래참음기쁨평강-감사/형통/번성/번영/창대함--

[시128편]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세상 악인들이 주님의 기독자, 영적이스라엘을 미워하며 괴롭히나 결코 이기지 못하리라..JC안에서 소명과 사명 이루라---

[시129편]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2.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3.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4.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5.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6.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7.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   *8.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부르짖음과 간구로 기도하며 주님을 앙망하노라---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마아마크) 주께 부르짖었나이다(카라)

2.  주여 내 소리를(콜) 들으시며(샤마) 나의 부르짖는(타하눈..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캇사브..경청하다)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아온) 지켜보실진대(샤마르...주의하여 지켜보다.감찰하다) 주여 누가 서리이까(아마드)
4.  그러나 사유하심이(살라흐)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야레)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카와) 나는 주의 말씀을(다바르) 바라는도다(야할)
6.  파수꾼이(샤마르) 아침을(보케르)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아도나이)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헤세드) 풍성한(라바) 속량이(페두트,,구속, 대가를 치르고 되사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파다,,구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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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시130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1.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주님, 내가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을 불렀습니다.
2.  주님, 내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나의 애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3.  주님, 주께서 죄를 지켜 보고 계시면, 주님 앞에 누가 감히 버티어 설 수 있겠습니까?
4.  용서는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가 주님만을 경외합니다.
5.  내가 주님을 기다린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며 내가 주의 말씀만을 바란다.
6.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림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하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하다.
7.  이스라엘아,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주님께만 인자하심이 있고, 속량하시는 큰 능력은 그에게만 있다.
8.  오직, 주님만이 이스라엘을 모든 죄에서 속량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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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시130
1.  Out of the depths have I cried unto thee, O LORD.
2.  Lord, hear my voice: let thine ears be attentive to the voice of my supplications.
3.  If thou, LORD, shouldest mark iniquities, O Lord, who shall stand?
4.  But there is forgiveness with thee, that thou mayest be feared.
5.  I wait for the LORD, my soul doth wait, and in his word do I hope.
6.  My soul waiteth for the Lord more than they that watch for the morning: I say, more than they that watch for the morning.
7.  Let Israel hope in the LORD: for with the LORD there is mercy, and with him is plenteous redemption.
8.  And he shall redeem Israel from all his iniquities.
==시130개요====
이 시편은 개인적이거나 대중적인 어떤 일상적인 관심에 관련되어 있지 않고, 전적으로 영혼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시편은 일곱 개의 참회시 중의 하나다. 또한 이 시편은 교회에 들어가는 참회자들에 의해 사용되어 왔다.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우리 자신들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편 저자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표현하고 있다.
1. 하나님을 향한 그의 간구(1-2).
2. 하나님 앞에서의 그의 참회(3-4).
3. 하나님을 기다림(5-6).
4. 하나님께 대한 그의 기대(7-8).
바다에서 표면이 표면에 응하듯이, 겸손한 참회자의 마음이 또 다른 자의 마음에 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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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시 130:1-4)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배운다.
Ⅰ.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비록 매우 비참한 경우일지라도, 끊임없이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1절). 

가장 훌륭한 인간이라도 때로는 큰 고통과 고난에 빠진다. 또한 때로는 어쩔 줄 몰라서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 비탄과 절망의 심연 속에서 어둡고 낮은 정신으로 사는 불안하고 절망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엄청난 절망 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매달리며 울부짖을 수 있고, 그로부터 응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부여된 특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도하는 자는, 비록 같은 지옥에서일지라도, 예레미야의 감옥이나 다니엘의 야수의 굴, 요나의 고기 뱃속에서와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의 한복판에서라도, 하늘의 높이에 이를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것은 우리의 의무며, 권리다. 그것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40:1-2)에서 우리가 더 깊이 빠지는 것을 막아주며, 구원하는 가장 훌륭한 길이기 때문이다.
Ⅱ. 한편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평안의 응답이 올 것을 확신하면서 하나님께 간구를 계속한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이다(2절). 

“여호와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탄식과 기도를 들으소서. 그리고 나의 고통과 소망 속에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Ⅲ. 우리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죄책감으로 인해 하나님의 정의 앞에 우리 자신을 겸손히 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수많은 죄를 인해 그에게 응답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3절).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누가 그 앞에 서리이까?” 

그가 하나님을 부르는 아주 짧은 단어들인 야(Jah, 여호와)와 아도나이(Adonai, 주님)는 어세가 매우 강하다. 

그 단어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의 두려운 느낌과 여호와의 징벌의 두려움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우고 있다.
1. 우리들의 죄악이 용납되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정당화하거나 죄가 없음을 주장할 수 없다. 

우리들의 죄악은 명백하고, 그 책임을 면하기란 어렵다.
2. 그러한 하나님의 권능과 정의를 고백하도록 가르침 받고 있다. 

만일 그가 우리의 빗나감을 극단적으로 드러내신다면 우리가 거기에 도달할 소망은 없게 된다. 

그의 눈은 가장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책망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발견하실 수 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우리에게 계속 이같이 대하신다면 우리는 자신을 도울 어떤 길도 가질 수 없고, 설 수도 없으며, 틀림없이 던짐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엄격한 정의로 우리를 대하신다면 우리는 파멸에 이를 것이다. 

만일 그가 우리의 부정에 대해서 주목하신다면 크고 많은 부정을 발견하실 것이며, 크게 나쁘고 매우 거역된 죄들을 발견하실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그것에 따라 계속 추궁하신다면 그는 우리에게서 그의 은총의 모든 소망을 닫으시고 우리를 그의 진노 아래 감금시키실 것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우리 자신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은 탈출을 도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징벌의 손에 저항하거나 견딜 수도 없게 된다.
3. 하나님의 [일절 오래참으심] 인내와 용서를 찬양해야 한다. 

그가 우리의 죄악을 드러내신다면 우리는 파멸할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우리가 소멸되지 않음은 그의 자비로 말미암은 것이다.”...애3:19-33(22,23).
Ⅳ.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자비에 우리를 맡겨야 하며, 우리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정의에 비추어볼 때 심판 받을 만함을 이해하고, 우리를 위로해야 함을 배우고 있다(4절). 

여기에서 다음 두 가지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참회하는 죄인에 의해 발견되고 간구되는 하나님의 은총.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나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가까이 할 때 그에게 죄사함이 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능력을 자신에게 두신다. 

그가 스스로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고,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포하셨다(출 34:6-7). 

그는 회개하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를 대하는 어떤 자라도 그가 무자비하다고 생각지 않으며, 오히려 간구하기 쉽고, 자비를 쉽게 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죄악이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사유하심이 있음은 우리에게 복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주께는 화해가 있나이다”라고 해석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화해자며, 하나님께서 주신 속량이다.
그는 항상 하나님과 함께 계셔서 우리를 옹호해 주신다. 우리는 그를 통해서 용서를 얻을 수 있는 소망을 갖는다.
2. 그러한 발견에서 설정하고, 거기서 추론해 낸 우리의 의무.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께서 인간을 대담하게 하거나 주제넘게 방치해 두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주께서는, 죄인이며 하나님을 대할 수 없는 인간의 자녀들에 의해 예배를 받으며, 섬김을 받으시려는 것이다. 

만일 그가 주가 아니라면, 많은 죄악을 사죄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비행으로 빗나가게 되지 않는 그의 예배에로 인도되도록 용기를 북돋아준다. 

아니, 우리가 진실로 회개한다면 그는 어떤 것이라도 사해 주신다. 

그는 특별한 방법으로 회개하는 죄인들을 초청하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로 돌아가게 하신다. 

그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셔서 저희의 회개를 받아주신다(욜 2:13; 마 3:2). 

특별히 우리는 경외의 하나님이 사유하시는 자비에 존경을 가져야 한다(호 3:5. “저희가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그리고 우리는 사유하심의 은혜를 기대해야 하며, 우리가 경외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정할 때 죄사함의 은혜를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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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림(시 130:5-8)
Ⅰ.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를 기다릴 것을 약속하고 있다 (5-6절).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고찰해 보자.
1. 그의 하나님께 대한 의지. 

이것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서 절정적으로 표현되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나이다. 나는 그로부터 구원과 위로를 기다리며, 그때가 올 것을 믿고, 그때가 올 때까지 갈망하나이다. 그러나 지연되어도 인내로 참고 견디며, 다른 손으로부터 그것을 찾지 않기로 결심하나이다. 내 영혼이 기다리나이다. 내가 그를 가식으로 기다리지 않고, 오직 성실하게 진심으로 기다리나이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며, 내 영혼이 기다리는 것은 여호와를 향한 것이고, 그의 은총의 선물과 그의 권능의 활동을 기다리는 것이니이다."
2. 신뢰의 기반.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우리는 그의 말씀 속에서 약속하신 것만을 소망해야 하며, 결코 우리 자신의 환상이나 공상의 피조물을 소망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소망할 수 있을 뿐, 결코 우리 자신의 공로에 대한 생각으로 소망해서는 안 된다.
3. 신뢰의 정도.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1) 아침이 올 것을 확신한 사람보다 더하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에 따라 내게 자비로 돌리실 것을 확신한다. 

하나님의 언약은 낮과 밤의 법칙보다 정확하기 때문이다. 낮과 밤은 사라질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다.
(2) 아침이 오기를 대단히 갈망하는 사람보다 더하다.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자들, 해외로 여행하는 자들은 하루 전에 새 날의 동트는 여명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선한 사람은 진지하게 하나님 은총의 표징과 그의 은혜의 초대를 위해 더욱 갈망하며, 낮에 행하는 사람들보다 더욱 부지런하게 그의 첫 출현을 알고자 한다. 

하몬드 박사는 그것을 이와 같이 읽는다. “내 영혼이 아침의 수비대로부터 여호와를 재촉하나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러한 의미를 붙인다. “내가 매일 아침에 일찍 주께로 나아갑니다. 나의 깊은 영혼이 제사장들이 아침 예배를 드릴 때에 기도를 드리고자 주 앞에 나아갑니다.”
Ⅱ. 그는 하나님을 같은 방법으로 의지하며, 신뢰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라고 그를 기다릴지어다.” 

백성의 일부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칭호하는”(사 44:5) 모든 선한 사람들을 격려한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모든 자들은 즐겁게 자신들을 그에게 두어야 한다(7-8절).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자연의 빛이 “그에게 인자하심이 있으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비로운 하나님이시며, “모든 자비의 아버지”가 되심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자비는 그에게 있다.” 

그 자비는 그의 본성에 기인하는 고유한 것일 뿐 아니라, 그것이 바로 그의 기쁨이다. 그것은 그의 모든 활동과 그의 모든 뜻에서 그와 함께 있다.
2. 복음의 빛이 “그에게 구속이 있으며”, 그에 의해 설계되고, 그것이 “때가 찼을 때” 이루어짐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 구속은 태초로부터 하나님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이었다.
(1) 이러한 구속의 성격. 

그것은 죄로부터의 구속, 모든 죄로부터의 구속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는 영원한 구속 이외에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이시며,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딛 2:14),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는”(롬 11:26)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죄의 저주와 죄의 지배적인 권세로부터 구속하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 이러한 구속의 풍성함. 

그것은 “풍성한 구속이다.” 

구속자에게는 공로와 은혜의 충만함이 있으며, 모두에게 풍성하고, 각자에게 충만함이 있다. 신앙인은 각자마다 "내게 풍성하다"고 말한다. 

죄로부터의 구속은 모든 다른 악으로부터의 구속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풍성한 구속이다.
(3) 이러한 구속의 은총을 받는 사람들. 

“저가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것이며”, 그의 성령에 따라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모든 사람들을 구속하실 것이다. 

“진실로 흠이 없는 이스라엘과 같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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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m;[}m'(4615, 마아마크) 깊은, 깊은 곳 depth

마아마크(명남)는 아마크(qmo[; , 6009: 깊다)에서 유래했으며, '깊음, 깊은 곳 depth'을 의미한다.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회 나온다.

마아마크는 사 51:10에서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신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마아마크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겔 27:34에서 바다 "깊은 데서 파선한" 것은 두로의 멸망을 가리킨다. 

시 69:2의 "깊은 수렁"과 시 69:14의 "깊은 물"은 고통이나 고난을 가리킨다.(참조: BDB; HE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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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q;(7121, 카라) 부르다, 선포하다, 소환하다, 읽다

카라(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부르다, 선포하다, 소환하다, 읽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740회 나오며, 칼, 니팔, 푸알형으로 사용되었다.

(a)  카라는 일차적으로 특별한 말 또는 메시지의 발설을 의미한다. 

후자의 용법에 있어서는 이것이 보통 특정한 수령인에게 주어지며 특별한 응답을 유도해 내기 위한 의도가 담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 어근은 '선포하다, 초대하다'로 번역되는 수가 있다. 

드물지만 카라가 단순한 부르짖음을 의미할 때도 있다(예: 시 147:9, 사 34:14).

(b)  카라는 '부르다'는 의미에서 '소환하다'를 나타낸다(창 12:18, 창 20:8-9, 민 22:5, 민 22:20, 민 22:37, 삿 8:1, 삼상 3:5-6, 삼상 3:8 등).

(c)  카라는 '초대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출 34:15, 삿 14:15, 삼상 16:3, 삼상 16:5 등).

(d)  카라는 '이름의 명명'에 대해 사용되었다.

작명은 때로 이름 지어진 사물에 대한 주권의 주장이 된다. 

하나님의 창조는 별들의 작명과 계수를 수반하였다(시 147:4). 그리고 어둠에 관한 작명(창 1:5), 참으로 모든 것에 대한 명명과 계수가 수반되었다(사 40:26). 

하나님은 동물들을 아담에게 주어 그것들에 대한 그의 상대적 주권을 주장하게 하였다(창 2:19).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고레스의 이름을 불렀다(여기에 임무를 위한 선택의 뜻이 내포되어 있음에 유의하라, 사 45:4). 

때로는 "명명"의 개념이 없을 경우라도 이 주권의 관념이 내포된다. 

예컨대 하나님이 태초부터 만대를 불렀다는 표현 등이 그것이다(사 41:4, 한글개역: "명정[命定]하였다"; 참조: 암 5:8). 상기의 용례들에서 그 대상은 응답해야 한다.

(e)  카라는 많은 경우에, 주어진 이름이 명명된 그 사물의 주요 특성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때로 여기에는 언어 유희가 포함된다(창 27:36). 그밖에 이러한 명명은 대상에 대한 고백 또는 개인적 가치 평가를 형성하고 있다(사 5:13, 사 60:14). 

혹은 영원한 진리에 대한 인지를 함유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예언에 의해 약속되는 아이가 "하나님에 의해", "임마누엘"이라 명명되는 경우이다(사 7:14).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자기의 주권을 확언하였다(사 41:2). 그러나 그들을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사 65:15, "은 찌꺼기", 렘 6:30, 한글개역: "내어버린 은"). 출 33:19, 출 34:6과 신 33:3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반포한다는 것은 그의 속성에 대한 묘사와 주권적 행위에 대한 묘사를 내포한다.

(f)  카라는 '선포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렘 34:5, 욘 3:5, 욜 3:9, 렘 7:2, 왕상 21:9, 왕상 21:12, 렘 36:9 등).

(g)  카라는 '읽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사 29:11, 사 34:16, 렘 36:6, 렘 36:8, 렘 36:10, 렘 36:13, 렘 36:14, 렘 36:15, 렘 36:21, 렘 36:23 등).

(h)  카라는 또한 특정한 직무에로 누군가를 부른다는 뜻을 내포하기도 한다. 

바로의 딸의 시녀는 자기가 가서 유모를 "불러" 올 것인지 물었다(출 2:7). 

가나안의 모든 주민들을 멸망시킨 것은, 우상숭배에로의 개인적 초대를 수락함으로써 거기에 말려들 수 있는 우호 관계의 온갖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출 34:15).

(i)  카라의 가장 두드러진 용법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관계가 있다. 

보통 그러한 문맥은 위급한 요구(시 34:6, 시 81:7)나 오랜 필요와 관련된다(예: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인간은 저주의 충분한 효과를 깨달았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창 4:26).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을 계속 부름으로써 원죄의 존재를 인지하였다(창 12:8, 창 13:4, 시 116:2).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응답하신다(시 145:8). 

참으로 언약의 백성(이방인을 포함하여, 왕상 8:43)에게는 그와 같이 기도하라는 가르침이 주어지며,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저주를 역전시킬 것을 확신한다(사 55:6, 사 55:13). 

그와 같이 하나님을 부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에 합당하며(시 79:6) 그것이 정당하다(사 65:12). 말세에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부르는 자들은 저주 받은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며(사 55:5), 그들은 그에게로 달려갈 것이다. 

그는 바벨을 역전시킬 것이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은 모두 하나의 순수한 언어로 그를 섬길 것이다(습 3:9). 

그들이 부르기 전에도 그는 응답할 것이다(사 65:24). 따라서 에덴이 복원되며 저주는 완전히 폐기된다. 

그러한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부름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사 65:12). 구원은 진정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참조: L. J. COPPES;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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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q(6963, 콜) 소리, 목소리, 음성

콜(명남)은 '소리, 음성, 목소리 sound, voice, nois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0회 이상 나온다.

콜은 주로 성대에서 말하는 소리를 의미한다(실제적으로나 비유적으로).

시적인 구절들(대부분)에서 그 의미는 다양한 여러 소리까지 포용한다. 

빈도가 높지는 않지만 콜이 육성이나(창 3:17) 기록에 의해(왕하 10:6) 발성된 것을 뜻할 경우도 있다. 

이 단어가 또한 감탄조의 "들으라"라는 뜻으로 작용하기도 한다(참조: GKC, 146b, 사 13:4, 사 66:6 등등).

'소리를 높여 울다'라는 문구는 광범하고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도와 달라는 울부짖음(창 39:14), 현실적 또는 예상되는 비극에 대한 슬픔(창 21:6), 재난이나(출 16:34) 기쁨(창 29:11)의 소리 등이다. 

하나님께서는 산 위에서 그리고 후에는 속죄소 위에서 모세와 말씀하심으로써(출 25:22, 민 7:89, 참조: 출 20:22), 법궤를 어떤 수호신으로 여기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보이시고 확증하셨다(삼상 4:6, 삼상 4:14). 후에 하나님의 목소리가 블레셋인들을 뿔뿔이 흩어버렸다(삼상 7:10).

'아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라는 표현은 다음의 뜻을 함축한다. 

주의하여 믿다(창 4:23), 아무의 제의에 따르다(창 3:17), 요청을 들어주다(창 21:12), 명령에 순종하다(창 21:18),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다(삼하 22:7).

본 단어가 다음과 같은 신학적 문제들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한다(더 좋은 이름들이 없으므로). 

예언, 천둥, 언약, 나팔, 이 주제들은 종종 서로 뒤얽힌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모세의 음성(후에는 선지자들의 음성)은 상호 교환될 수 있다(참조: 출 3:18, 출 4:1, 출 7:1). 

하나님은 그에게 특정한 표적들을 주시는데 사실상 이 표적들 자체가 말하는 역할을 한다(출 4:8, 한글개역: 난외주를 보라). 

그리하여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셨음을 확증한다(그러나, 출 5:2). 천둥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상징한다. 즉 천둥이 심판을 초래하며 두려움과 복종심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출 9:23, 출 9:29, 참조: 시 29장). 

하나님의 '콜'은 우르렁거리는 천둥소리이다. 반면 하나님께 나아갈 때의 인간의 '콜'은 딸랑 거리는 방울 소리이다(출 28:35). 

언약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간명하게 선언하신 다음과 같은 원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종 모세의 명령(음성)은 하나님의 명령(음성)이며, 만일 백성이 그의 언약에 복종하고(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지키면 복을 받을 것이다(출 19:5). 

그들이 불순종하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시내산에서 충분히 설명된 바 있다(특히 신명기에서, 삼상 12:14-18, 예레미야의 용례들). 

천둥 치듯 바로에게 심판을 내렸던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이 이제는 축복의 표적으로 등장한다(출 19:16, 참조: 삼하 22:7-14, 삼하 3:16, H4:16, 등등). 

마지막으로 '콜'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들은 나팔소리이다. 그 나팔소리는 하나님의 능력(수 6:5)과 임재의 신호이다(삼하 6:15, 왕상 1:40-45, 고전 15:52).

바알(가나안의 천둥 신)의 거짓 선지자들과 엘리야의 싸움에서, 번개와 천둥을 일으키고(왕상 18:41) 비를 내림으로써(왕상 18장, 참조: 시 29편) 그 상황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실현시킨 이는 바로 하나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 하심으로써(왕상 19:12), (바알이 그러하듯) 자신이 자연의 힘에 불과한 어떤 존재 이상임을 보여 주신다. 

바알과의 이 싸움은 두 종교 사이에 있는 오랜 복합적 갈등의 일부이다(참조: W. F. Albrigth).

이러한 갈등은 구약성경의 선지서들과 시가에서 줄곧 입증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콜이 아담이 동산에서 들었던, 바람을 타고 실려온 하나님의 음성이었음을 당연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창 3:8, 왕상 14:6).(참조: L. J. COPPES;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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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8085, 샤마) 듣다 hear

샤마(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듣다 hear'를 의미하며, '경청하다 listen to, 순종하다 obey'라는 의미도 지닌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15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형으로 사용되었다.

샤마는 '듣다'라는 기본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기본적인 의미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확대되는데, 대개 효과적인 들음이나 경청을 포함한다.

① '경청하다' listen to, '주의를 기울이다' pay attention,

② '순종하다' obey('명령'고 같은 단어들과 함께 쓰일 경우),

③ '기도에 응답하다' answer prayer, '듣다' hear,

④ '이해하다' understand,

⑤ '비판적으로 듣다' hear critically, '(법정에서) 조사하다, 심문하다' examine(in court).

파생 어간들은 이런 의미들에서 적합하게 수정된 의미를 지닌다.

샤마의 기본적인 용례는 무수하다(예를 들면 민 12:2에서 여호와께서 미리암과 아론의 불평을 들으셨다). 

신 4:12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음성은 들었지만 형체는 보지 못했다. 

창 3:8에서 아담과 하와는 동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무엇을 듣는지 하는 것은 종속절에서 표현된다. 

창 37:17에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창 14:14에서 "그의 형제가 사로잡혔다는 것을 들었다", 삿 7:11에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샤마는 '귀를 기울이다', '따르다' listen to라는 의미를 지닌다. 

창 3:17에서 아담이 아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즉 그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왕상 22:19에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라고 한다. 시 81:11, 잠 12:15에서도 예증된다.

샤마는 이러한 의미에서 점차 변하여 '순종하다' to obey라는 의미를 나타내게 되었다. 그 실례는 출 24:7, 사 42:24, 느 9:16, 렘 35:18에서 볼 수 있다.

삿 13:9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반응한다. 

즉 응답한다는 의미에서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신다". 비슷한 용법이 겔 8:18, 시 4:1에서 발견되는데,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라는 표현은 "내가 부를 때에(내게) 응답하소서"라는 말과 병행된다. 또한 시 34:17에서도 발견된다.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기도의 응답과 관련하여 하나님은 렘 11:10-11에서 매우 중요하고 진지한 원리를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환난 날에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찌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신다(응답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그들은 알게될 것이다. 

미 7:7은 의인의 확신을 표현한다. 즉 하나님의 음성에 스스로 귀기울이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그의 기도를 진실로 들으시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보다 더 고무적인 강한 말씀이 시 94:9에 나온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않으시겠느냐?". 

효과적으로 듣는다는 말은 '이해한다'는 개념도 역시 포함한다. 

예컨대 창 11:7에 의하면 바벨탑 사건에서 언어가 혼란된 이후에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 "들을"(즉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J. E. Hartley)(참조: BDB; Gesenius; T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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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nj}T'(8469, 타하눈) (은혜를 위한) 탄원(간청)이나 기도

타하눈(명남)은 하난(@n"j; , 2603: 호의, 은혜를 베풀다)에서 유래했으며, (은혜를 위한) 탄원이나 기도 supplication(for favour)'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사람에게 간청,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간청하는 것(잠 18:23), 악어가 사람에게 간청하는 것(욥 41:3)을 묘사한다.

(b)  하나님께 기도(시 143:1, 단 9:3, 단 9:17, 대하 6:21), 탄원의 소리(시 28:2, 시 28:6, 시 31:23, 시 86:6, 시 130:2, 시 140:6, 시 116:2), 그리고 렘 31:9, 렘 3:22, 슥 12:10, 단 9:18, 단 9:23.(참조: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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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 오젠(명여)은 아잔(@z"a; , 238)에서 유래했으며, '귀' ear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87회 나온다. 

오젠은 대부분 사람의 귀에 대해 사용하지만 짐승의 '귀'(잠 26:17, 암 3:12), 그리고 신인동형론적으로 하나님의 '귀'나 '청력'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귀는 몇가지 동사와 함께 사용되었다. 귀에 들리다(겔 24:6), 귀를 귀울이다(시 10:17, 시 78:1), 귀를 막아 듣지 않다(사 33:15), 귀가 막히게 하다(사 6:10), 귀가 울리다(삼상 3:11).

귀에 대하여 청각 기관으로서의 귀, 상징적 행위에 속하는 신체의 일부로서의 귀, 그리고 반응과 이해의 표시로서의 귀, 하나님의 귀라는 네가지 주제로 적절하게 연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a)  듣는 신체 기관으로서의 귀는 스스로 들을 수 있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다(시 94:9). 

하나님은 듣는 귀를 지으셨다(잠 20:12). 하나님께서는 귀를 열어 교훈하시고(욥 33:16), 그 교훈을 듣게 하시며(욥 36:10), 귀를 깨우치사 알아듣게 하신다(사 50:4).

귀는 말을 듣고(민 14:28, 욥 13:1) 깨달으며(사 64:4), 담아두며(욥 13:17), 분별한다(욥 12:11, 욥 34:3). 귀는 말을 전달 받는다(창 44:18, 창 50:4, 출 10:2, 신 31:28, 수 20:4, 삿 7:3, 삿 9:2, 삿 9:3 등). "어떤 사람의 귀에 말하다"는 "그가 들을 수 있게 말하다"라는 뜻이다(창 44:18).

그러나 인간이 만든 우상의 귀는 전혀 아무 것도 듣지 못한다(시 115:6, 시 135:17).

귀가 듣기 위해 기울여야 할 것은 계명(출 15:26), 법도와 규례(신 5:11), 지식의 말씀(잠 23:12, 잠 18:15), 지혜(잠 2:2, 잠 22:17), 생명의 경계(잠 15:31), 하나님의 법과 말씀(사 1:10, 사 1:2, 렘 13:15), 선지자의 말(사 32:9)이다.

(b)  귀는 들음과 순종을 나타내므로, 중요한 상징적 행동과 함께 귀에 대한 의식이 있다. 

만약 어떤 노예가 영원히 자기 주인을 섬기기로 결정하고 나면, 그의 귀를 송곳으로 뚫었다(출 21:6, 신 15:17, 참조: 시 40:6). 

이런 법적인 행위에 의하여, 그 노예는 전 생애동안 순종해야 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에 위임될 때, 희생된 수양에서 흘러나온 피를 그들의 오른쪽 귓볼과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 위에 발랐다(레 8:23-24, 출 29:20). 

문둥병으로부터 깨끗함을 받은 사람의 경우도 이와 비슷했다. 

그의 정결 의식 제 8일째에는 올리브 기름뿐만 아니라 피도 그의 오른쪽 귀, 엄지손가락, 그리고 엄지발가락에 발랐다(레 14:14, 레 14:17).

귀걸이는 결혼식 때 신랑이 신부에게 주었던 것 같다(겔 16:12)(리브가에게 준 "귀고리"[창 24:22 KJV]는 코고리였다). 그러나 이 귀걸이가 창 35:4에서는 우상숭배와 관련되어 나온다. 이스라엘인들은 아론이 금 송아지를 만들 수 있도록 자기네의 금 귀걸이를 빼내었다(출 32:2-3). 완전한 거부의 징표로서, 성난 적은 귀와 코를 베었다(겔 23:25).

(c)  귀나 들음에 관한 대부분의 언급들은 듣는 자의 반응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듣는 것 혹은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예를들면 현자의 말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잠 22:17). 

얼마나 자주 하나님은 고집 센 이스라엘에게 임박한 심판을 염두에 두고 행한 그의 경고에 귀 기울여 주목하라고 간청했던가(호 5:1, 렘 13:15). 

심지어 하늘과 땅 조차도 이스라엘의 언약 약속의 증인들로서 경청하라는 요청을 받았다(신 32:1, 사 1:2). 

국가적인 재앙에 대한 예고는 귀를 울리게 하거나 아프게 한다고 언급된다. 이 메시지는 이처럼 충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삼상 3:11, 왕하 21:12, 렘 19:3).

"완악함" hardness, 혹은 "무거움" heaviness이라는 말이 이스라엘의 귀에 두 번 사용되었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에서부터 귀를 닫아버렸다(슥 7:11-12).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어 귀가 막히게 하셨기 때문이다(사 6:10, 참조: 대하 24:19, 느 9:30). 우상들과 마찬가지로, 이 민족은 귀를 가졌으되 들을 수가 없었다(렘 5:21). 한때 백성들의 귀는 "할례 받지 못했다"고, 즉 언약의 하나님의 말씀에 닫혀 있다고 일컬어졌다(렘 6:10). 열방도 귀가 막힐 것이라 한다(미 7:16).

듣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밀접하게 결부되었으며(욥 13:1), "귀"는 거의 "마음"을 의미할 수 있다(욥 33:15). 

호스트(Horst)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즉 "우리의 두뇌가 아니라, 귀가 말과 명령을 기록하는 도구로 간주된다. 그래서 귀는 '통찰'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TDNT, V, 546). 잠 21:13은 가난한 자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기를 거부하여 그들의 곤경에 대해 모르는 것을 정죄하였다. 그러나 살인의 꾀에 귀를 막아버리는 자는 칭찬을 받았다(사 33:15). 

인간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이 기관이 중요하다는 것은 욥이 언명하였다. 즉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변하지 아니하느냐"(욥 12:11).

(참조: H. Wolf).

(d)  하나님께서도 관용적으로 귀를 갖고 계신다. 

듣고 행동을 취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언급들이 많이 있다. 시편기자는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 하시랴"고 논증했다(시 94:9). 

다윗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귀에 들렸고 그의 응답을 받았다(삼하 22:7, 시 18:6). 그러나 산헤립의 오만한 말은 그의 귀에까지 와서 파멸로 끝나고 말았다(왕하 19:28, 사 37:29).

대부분의 구절들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다루고 있다. 

시편기자는 자주 도와달라는 자기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시고(시 80:1[2], 시 54:2[4]), 적으로부터 자기를 구원해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청하곤 하였다. 

성전 봉헌시에, 솔로몬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여 백성의 기도를 경청해 주실 것을 요구하였다(대하 6:40). 

다니엘은 그 성전쪽으로 돌아서서,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어 예루살렘의 파멸에 대해 무엇인가를 해주실 것을 간구 하였다(단 9:18).

성도는 하나님께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실 것을 확신한다(시 77:1). 

하나님은 의인과(사 34:15), 성도의 기도(시 40:1, 시 116:2)에 귀를 기울이신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듣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사 59:1). 이스라엘의 죄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응답에서 그들을 끊쳐내였기 때문이다(신 1:45).

"귀를 폭로한다"(갈라 오젠[gala ozen])는 것은 왕에 대한 음모와 같은 "중요한 정보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삼상 22:8, 삼상 22:17). 

법률적인 문맥에서 이 말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문제에 주목시키다"를 의미한다(룻 4:4). 

하나님이 주어로 나올 때, "귀를 열다"는 자기 종들에게 진리를 "드러내다" reveal를 의미한다(삼상 9:15, 삼하 7:27). (참조: H. Wolf).

(e)  귀에 관한 잠언(잠 2:2, 잠 15:31, 잠 17:4, 잠 18:15, 잠 20:12, 잠 21:13, 잠 22:17, 잠 23:9, 잠 23:12, 잠 25:12, 잠 26:17, 잠 28:9).(참조: BDB; 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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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V;q'(7183, 캇샤브) 주의 깊은, 경청하는

캇샤브(형용사)는 카샤브(bv'q; , 7181)에서 유래했으며, '주의 깊은, 경청하는, 친절한'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회 나오며,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귀가 주의를 기울인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들려오는 간구에 유의하신다(대하 6:40, 대하 7:15, 느 1:6, 느 1:11, 시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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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1, 아온) 불법, 부정, 죄악, 죄의 벌

아온(명남)은 아와(hw:[; , 5753)에서 유래했으며, '불법, 부정, 죄악, 사악, 유죄, 죄의 벌(징계)'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30회 나온다.

명사 아온은 집합명사이다. 예컨대 하나님은 아모리인의 범죄, 타락에 대해 말씀하신다: "아모리 족속의 죄악(단수)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창 15:16).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에게 당신은 "내 죄(단수)를 생각나게"하려고 왔다고 불평한다(왕상 17:18). 따라서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은 관용구에서 나타난다. '아온을 지다'(창 4:13, 출 34:7, 호 14:3, 시 85:3), '아온을 제거하다(히필형)'(슥 3:4), '아온을 갚다'(출 20:5) 등. 이러한 '전체'라는 개념은 집단의 죄뿐만 아니라 개인의 죄와 연관하여서도 나타난다.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복수)를 지고"(레 16:22);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단수)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더욱이 위의 언급들이 가리켜주는 바와 같이 이 단어는 행위 및 행위의 결과, 범죄 및 범죄의 형벌 모두를 나타낸다. 양 개념이 모두 나타나지만 때로는 행위('죄')에 초점이 주어지고, 또 때로는 범죄의 결과('형벌')에, 때로는 행위와 그 결과 사이의 상황('죄의식' guilt)에 초점이 주어진다. 형벌을 요하는 범죄에 초점이 주어지는 실례: "이 '죄악' sin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 같게 하리라"(사 30:13, 참조: 겔 18:30, 겔 44:12, 호 5:5, 욥 31:11, 욥 31:28). 형벌에 강조점이 주어지는 예: "일어나라...그렇지 않으면 네가 성읍의 '형벌' 가운데서 소멸되리라"(참조: 렘 51:7, 시 39:12, 시 106:43, 욥 13:26, 욥 19:29, 스 9:7). '죄의식'(guilt)에 강조점이 주어지는 예: "이 '죄악'을 내게로 돌리시고"(삼상 25:24). 다른 많은 실례들에 대해서는 아래를 보라.

'행위로서의 죄'라는 의미와 '형벌'이라는 의미 사이의 현저한 양면적 의미는 구약성경의 사상에서 죄와 그 형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경향과 같이 근본적으로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구약성경에서 인간의 행동과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은 기본적인 하나님의 질서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전제된다. 이러한 연관성은 "삶에 대한 종합적인 견해"라고 불리워졌다(Von Rad, G).

어근 하타(죄)도 마찬가지의 기본적인 '종합적' 개념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민 32:23을 보라: "너희가 만일 그 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나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두 번째 나타나는 이 어근의 명사형은 행위에 대한 '형벌'을 나타낸다(참조: 민 12:11). 따라서 죄는 개인과 혹은 공동체를 멸망시키는 피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며 근절되어야만 한다(B. K. W.).

아온은 분명히 하나님의 성품의 특성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행동의 특성도 아니고(출 20:5, 출 20:6, 출 34:7), 인간의 속성과 행동(그러한 행동에 수반하는 결과를 포함하여)의 저항할 수 없는 특성이다.

아온은 삼상 20:1, 삼상 20:8, 삼하 3:8, 느 4:5, 시 51:2에서 여러 종류의 시민 생활 혹은 사회적(규칙) 위반을 지칭하고, 수 22:17, 삼상 3:13-14에서는 제의적인 (규율) 위반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집합 명사 혹은 유사 추상명사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과거의 범죄의 총합을 나타내는데, 이에 대한 실례는 너무 많아서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민 14:34, 삼상 25:24, 삼하 22:24, 왕상 17:18, 스 9:6, 욥 13-26장, 사 1:4, 렘 11:10가 그 예이다.

어떤 구절에서는 아온의 성질과 내적 근원에 강조점이 주어진다.

욥 15:4-5에서 아온은 하나님 경외하기를 폐하는 것 등과 관련되어 있다.

반면에 시 78:37-38에서 아온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확고 부동하지 않음과 결합되어 있으며 렘 14:10에서는 그들이 이렇게 방황하기를 좋아하였다 라는 진술과 관련되어 있다.

아온은 간음(민 5:31) 및 우상 숭배(호 5:5, 렘 16:10-11)와 관련된다. 이러한 은유에서는 위반하는 행동과 그 결과인 더럽힘 모두가 묘사된다.

아온의 다른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소외(alienation, 레 26:40, 사 59:2, 사 1:4), 그리고 부정(시 51:2, H4)으로 나타난다.

죄책감(guilt)은 내적 인간에 대한 아온의 주요한 결과다. 이 요소는 과거 범죄에 대한 총합을 나타내는 아온의 기능과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BDB는 죄책감의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실례를 30여회 이상 열거한다(p. 731).

아온은 그 결과가 내적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외에도 가문, 지파, 이스라엘 민족, 열방 및 자연에도 영향을 끼친다. 가문에 대하여, 친숙한 진술은 출 20:5, 신 5:9에서 발견된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은 가문이나 지파의 개개인들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내리는 벌로 집중할 수 있다(레 5:17, 레 18:25, 민 5:31, 삼상 25:24, 삼하 14:9, 시 106:43, 렘 36:31). 아온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형벌을 면할 수 없게 한다(레 26:39, 스 9:7, 스 9:13, 시 107:17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에 있는 많은 실례). 어떤 의미에서,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그들 임무의 거룩과 성소의 거룩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형벌의 위험을 떠 맡았다(출 28:38, 출 28:43, 레 22:16, 민 18;1, 민 18:23).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 그 재난은 이스라엘 민족의 아온의 결과로 인식되었다(애 4:6, 애 4:13, 애 4:22, 겔 39:23, 단 9:13, 단 9:16).

아온에 반드시 형벌이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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