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11장. ..비옥한 초승달 지역 ;;; 중도의 패권을 결정짓는다고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가나안을 아우르는 지역 ***4차에 걸친 타락과 아담족속의 반역..타락과 반역은 분명히 성질이 다른 문제임.. 하지만 주님은 여전히 유일무이한 전지전능 창조주 주권적 섭리자 초월적 지혜자이심.. 반역자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의 그 나름대로의 쓰임새를 아시며, 예정해 두신 심판의 날 그때까지는 참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마침내 <믿는이들의> 지고지선의 성장성숙 이루시기 위한 훈련관들로 삼고 계심을 잊지말라... 악을 간과하심이 결코 아님을 명심하라!! 오직 주바라고 앙망함으로 동행하라 [1차 타락]Q임재 안에 연합한 하나된 영(영혼몸의 질서, 조화 상태 = 완전한 기쁨의 순복, 그 자원함의 복됨..양심 가책 없음 : 오직 적극적 선함 안에서 열납하시는 분의 다함없는 사랑에 절대긍정 절대기쁨 절대신뢰로 반응함 통해 화평 충성 온유 절제로 동행함 통해 Q임재로 신성한 통제만 받게 하심....[[1.신성한 통치 그 지고지선의 진복 누림]])>--(하나님 섬김 위해 지음받은 피조함 받은 천사 사탄은 하늘 에덴에서 최초의 반역 통해 결국 자기와 그를 추종하는 악한 천사들과 함께 추방되었고 결국 원초적 창조함 받은 (사탄에 동조한 바)우주 안의 피조물까지 심판 받게 됨 인해 야기되었던 혼돈 공허 흑암...그 가운데에서 주님의 재창조의 손길 거쳐 마련한 바된 갱신된 우주 그것을 주안에서 다스리게 하시기 위해 지으신 아담.. 주님의 형상 모양따라 그분의 생기 입김으로 창조함 받은 사람 아담과 하와, 반역자요 미혹자 사탄의 미혹따라 그들의 자의적 판단으로 하나님 말씀 어기고 선악나무 열매 취함>-->Q임재로부터 분리됨( 양심의 가책 발동 시작....악행에 대해 부끄러움 느낌으로, 짐승 수준이하에로까지 타락을 미연에 방지...[[2.양심의 통치에로 하락]]) ---[2차 타락] (가인이 아벨을 살해)-->(무디어지고 딱딱해진, 완악한 마음으로 인해 양심의 가책 기능 사장되어버림(본래적 기능 상실한 화인 맞은 양심은 빛 비춤 반사 기능 상실,,그 결과 양심의 빛을 따르던 혼의 이성적 분별 기능 상실하고 육신 곧 마귀를 닮아감)... 거짓말/위장/가식-교만/강포가 땅에 충만케 되는 계기 제공..결국, 타락한 인간의 포악함 방치하에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멋대로...객관적 기준이나 공동규약 없이> 학대/통제하기 시작.. ....[[3.타락한, 강포를 추종하는 인간의 통치 만연...[3차 타락]]]...홍수 전 사회 전체에 걸쳐 극악한 생명경시, 제 소견에 옳은대로 자행자지함의 상황과 풍조 만연--주 보시기에 목불인견의 마귀세상 그자체였던듯(노아는 예외였음).,...인류 보전 위해 (그 자체로는 턱없이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대리권위(부모-교사-정부)에 의한 불완전 통치는 홍수 후에야 비로소 나타남..((홍수 심판))...홍수 후 바벨에서의 [[4차타락 =사탄 선동따른 반역]], 그것은 타락 이상인, 그 자체로서 <사탄적 선동/충동에 따른> 전 인류의 반역이었음.....영을 사용하기를 잊을 때, 혼에 의해 행동하게 되며, 이어서 온통 육을 따라 마귀적 사람, 마귀의 체현 그자체가 되어 행하게 되는 바(그만큼 혼은 약하기에 스스로 설 수 없음), 하나님은 더 이상 타락한 육을 용납하실 수 없어서 그분의 심판으로서 홍수 심판을 보내셨던 하나님은 이제, 사탄의 선동에 휘말려 반역 꾀한 인류에 대해, 창조함 받은 아담족속을 포기하시고, [예비해 두신 대안으로서] 아브라함을 통해 부르심 받은 족속을 일으키심...주 음성 듣는 이는 비추심따라 주 따름으로 떠남 실행 곧 나는 죽고 JC 께서 사시는 삶의 동행 경청 순복 자원항 안으로 나아오라
===바벨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주님의 존전을 떠남 + 유일신 여호와 신앙 보전 위해 떠나감>의 이중적 의미가 숨겨져 있음..*벨렉은 니므롯 통치 지경에 숨겨둔 구원주 하나님의 반전카드로서 에벨의 아들들은 동방으로 옮겨가던 도중에 벨렉 계열은 시날을 향하여 돌이켜 서진하는 반면에, 욕단 계열은 계속 동진하여 한반도에 다다르고 있다] 시날[뜻-두 강사이. 바벨론 평지.]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동방으로 더 진행...즉, Q 존전 떠나감 의미.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진흙으로 벽돌 만들어 굽는 다 함은 그 진흙 안의 모든 생물 멸절을 의미. 주님 주신 Q앎 추구함으로 이루는 참 인성 거절하고, <속임-가공됨의 가치따라>인위적 허장성세 추구 :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심판 피할 수 있는 견고한 탑 건설 통해 하늘 에덴까지 점령할 것 처럼, 교만과 도전 반역의 뜻 표현...더불어 생육-번성-충만의 복된 명령 전면 부정하는 것임>.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아카드어의 의미=하늘의 문 또는 신의 문..히브리어 의미=혼란/혼돈]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셈의 족보 ((홍수사건과 바벨탑 사건의 생생한 증인들인, 경건한 조상들이 아브람에게 영향 끼침)) ***아브람(에벨은 셈의 3대째 후손, 아브람은 에벨로부터 6대째 후손..곧 아브람은 셈으로부터 9대째 후손으로서 셈-에벨과 함께 <갈대아우르에서> 거주하였던 것으로 보임) 아브람 출생 당시 [[홍수 사건에 대한 생생한 증언자로서, 또한 바벨탑사건에 대한 생생한 증언자로서]] 셈은 519세(600세에 임종)/에벨은 254세.(433세에 임종)였고, 두 사람 모두 <하란에서 데라 임종 직후> 아브람이 하란에서 출발하여 가나안 향해 떠나는 시점까지에도 모두 생존한 상태로서 각각 594세, 329세였음....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5.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6.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데라의 족보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아브람은 막내였다!!...사라는 <모친이 다른> 이복누이였다..아마도 35세 경에 결혼한 듯 하고, 직후에 1차 부르심이 있었던 듯함..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아마도 장남 하란은 아브람의 1차 부르심에 반응하는 것을 반대함 인해 죽었다고 여겨짐.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갈대아우르(현재 이라크에 속하는 텔 무가이어)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합류하여 페르시아만으로 유입되기 직전의 삼각주 지역에 위치함..정반면에 하란은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도중에 바벨론이 위치함) 지중해 방향으로 진행하여에 터키 하부의 알레포(시리아 영토)-갈그미스(터키와 시리아 경계지역..길가메쉬)를 향해 북서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됨, 즉 페르시아만 근처에서와는 정반대로 향해지역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야 함 .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하란에 도착하여서도 <머뭇거리며 가나안 입성 위해> 5년간 움직이려 하지 않았던 데라를 처리하셔야 했음..아브라함의 가나안을 향한 주도적 떠남은 75세에야 있게 됨(1차 부르심에서 40년 지난 시점) ....하란은 밧단아람이라고도 하며 아람-나하라임 지역에 속하며 메소보다미아에서 중하류 1/3부분 영역의 중심부 지역으로, 유브라데강의 두 지류(하볼과 발리크) 중에서 발리크 강변에 지역에 위치함..하란에서 가나안에로 향하는 길로 이동하는 도중에 다메섹을 경유함....이 경로는 바로느고의 갈그미스 원정로였고 이 때 요시아 왕은 느고의 북상 원정 행로를 막으려다가 므깃도에서 전사하게 됨 ------ Universal Language, Babel, Confusion.11. 1 Now the whole earth [a]spoke one language and used the same words (vocabulary). 2 And as people journeyed eastward, they found a plain in the land of Shinar and they settled there. 3 They said one to another, “Come, let us make bricks and fire them thoroughly [in a kiln, to harden and strengthen them].” So they used brick for stone [as building material], and they used tar (bitumen, asphalt) for mortar. 4 They said, “Come, let us build a city for ourselves, and a tower whose top will reach into the heavens, and let us make a [famous] name for ourselves, so that we will not be scattered [into separate groups] and be dispersed over the surface of the entire earth [as the Lord instructed].” 5 Now the Lord came down to see the city and the tower which the sons of men had built. 6 And the Lord said, “Behold, they are one [unified] people, and they all have the same language. This is only the beginning of what they will do [in rebellion against Me], and now no evil thing they imagine they can do will be impossible for them. 7 Come, let Us (Father, Son, Holy Spirit) go down and there confuse and mix up their language, so that they will not understand one another’s speech.” 8 So the Lord scattered them abroad from there over the surface of the entire earth; and they stopped building the city. 9 Therefore the name of the city was [b]Babel—because there the Lord confused the language of the entire earth; and from that place the Lord scattered and dispersed them over the surface of all the earth. ===Descendants of Shem 10 These are the records of the generations of Shem [from whom Abraham descended]. Shem was a hundred years old when he became the father of Arpachshad, two years after the flood. 11 And Shem lived five hundred years after Arpachshad was born, and he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12 When Arpachshad had lived thirty-five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Shelah. 13 Arpachshad lived four hundred and three years after Shelah was born, and he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14 When Shelah had lived thirty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Eber. 15 Shelah lived four hundred and three years after Eber was born, and he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16 When Eber had lived thirty-four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Peleg. 17 And Eber lived four hundred and thirty years after Peleg was born, and he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18 When Peleg had lived thirty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Reu. 19 And Peleg lived two hundred and nine years after Reu was born, and he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20 When Reu had lived thirty-two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Serug. 21 And Reu lived two hundred and seven years after Serug was born, and he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22 When Serug had lived thirty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Nahor. 23 And Serug lived two hundred years after Nahor was born, and he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24 When Nahor had lived twenty-nine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Terah. 25 And Nahor lived a hundred and nineteen years after Terah was born, and he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26 After Terah had lived seventy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c]Abram and Nahor and Haran [his firstborn]. 27 Now these are the records of the descendants of Terah. Terah was the father of Abram (Abraham), Nahor, and Haran; and Haran was the father of Lot. 28 Haran died before his father Terah in the land of his birth, in [d]Ur of the Chaldeans. 29 Abram and Nahor took wives for themselves. The name of Abram’s wife was Sarai (later called Sarah), and the name of Nahor’s wife was Milcah, the daughter of Haran, the father of Milcah and Iscah. 30 But Sarai was barren; she did not have a child. 31 Terah took Abram his son, and Lot the son of Haran, his grandson, and Sarai his daughter-in-law, his son Abram’s wife; and they went out together to go from Ur of the Chaldeans into the land of Canaan; but when they came to Haran [about five hundred and fifty miles northwest of Ur], they settled there. 32 Terah lived two hundred and five years; and Terah died in Haran. ===Footnotes Genesis 11:1 Lit was one lip. Genesis 11:9 The word “Babel” is similar to the word “confuse” (Heb balal), but not identical. Genesis 11:26 Abram (Abraham) is mentioned first because of his importance, not his birth order. Genesis 11:28 Abram’s home town was Ur of the Chaldeans. As the result of extensive archeological excavations there in 1922-34, a great deal is known about Abram’s background. The house of the average middle-class person had from ten to twenty rooms and measured forty to fifty-two feet; the lower floor was for servants, the upper floor for the family, with five rooms for their use; additionally, there was a guest chamber and a lavatory reserved for visitors, and a private chapel. A school was found and what the students studied was shown by the clay tablets discovered there. In the days of Abram the pupils had reading, writing, and arithmetic as today. They learned the multiplication and division tables and even worked at square and cube roots. A bill of lading of about 2040 b.c. (about the era in which Abram is believed to have lived) showed that the commerce of that time was far-reaching. Even the name “Abraham” has been found on the excavated clay tablets. ===== 창세기 11장 (개요) 하나님의 자녀와 인간의 자녀들(신앙을 고백한 자와 세속적인 자) 간의 예부터 있어 온 구별은 홍수 후에도 있었으며, 이제 다시 나타난다. 즉 인간이 번성해 가기 시작할 때다. 본 장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구별은 다음과 같다. 1. 바벨에서 인간의 자녀들의 분산(1-9). (1) 도성과 대를 건축하겠다는 그들의 오만불손한 계획(1-4). (2) 그들의 언어를 혼란케 하심으로써 그 계획을 좌절케 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과 그로 인하여 흩어지게 됨(5-9). 2. 아브라함까지의 하나님의 자녀들의 계보(10-26)와 그 가족의 총괄적인 기사, 그리고 그의 고향으로부터의 이동(27 이하). ======= 언어의 혼란(창 11:1-4) 앞 장의 결말에는, 노아의 자손들로 말미암아 또는 노아의 자손들 사이에서, “홍수 후에 열국 백성이 땅에서 나뉘었다”는 것이 나타나 있다. 이는 곧 여러 부족이나 무리로 분리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거주해 왔던 곳이 그들에게는 이제 너무도 협소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각 부족이나 무리들은 자기들의 진로를 찾아야 했고, 바로 인접한 땅으로부터 시작해 보다 멀리까지 나아갈 계획을 세우고, 그들의 수효 증가로 인하여 거기에 필요한 만큼 서로 멀리 분산되어 이동하기에 이르렀다. 이 분산은 노아가 지시했거나 자기들끼리 합의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같이 하여 홍수 후 백 년에, 즉 벨렉이 출생할 무렵에 그 문제는 원만히 해결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자손들은 먼 곳으로 분산하는 것이 싫은 듯했다. 보다 더 즐겁고 안전한 것만을 생각했다. 결국 서로간에 어울려 살기를 궁리해 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이나 노아보다도 훨씬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저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지체하게” 되었다(수 18:3). 다음을 살펴보자. Ⅰ. 서로 어울려 살려는 저들이 계획을 유리하게 했던 이점들. 1. 그들 모두가 “구음이 하나였다”(1절)는 것이다. 홍수 이전에 어떤 다른 언어가 있었을지라도 이제는 아담의 언어와 똑같은 노아의 언어만이 홍수 중, 그리고 홍수 후에 계속 보존되었던 것이다. 그들 모두가 서로간에 알아들을 수 있는 동안에는, 서로 사랑하고 도와줄 수도 있었고 서로 헤어지기 싫어했을 것이다. 2. 그들이 정착하기에 편리하고 널찍한 곳을 발견했다(2절). 즉 “시날 평지”를 만났다. 그들의 수효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그들은 자기들이 능히 풍족하게 거할 만한 곳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나, 이제 그들 모두를 수용할 만큼 광대한 평지, 그들 모두가 부지할 만큼 충분히 비옥한 평지를 발견한 것이다. 미래를 소중히 여겨야 할 시기에 현실 때문에 오는 유혹이 때로는 너무 강해 미래에 대한 의무와 관심을 무시하게 되는 수가 있음을 명심하자. Ⅱ. 그들이 서로를 결속시키고 한 집단을 이루기 위해 취한 방법. 하나님의 보호 아래 평화로운 출발을 하여 저들의 경계선을 확장해 나가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요새화하려고 궁리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하늘과 싸울 결심을 한 자처럼 저들은 스스로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결정한 바는 “도성과 대를 쌓자”는 것이었다. 옛 세상(4:17)과 이제 여기 새 세상에서 최초로 도성을 세운 자는 가장 훌륭한 인격과 평판을 소유한 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살필 수 있다. 장막이면 족한 <이땅의 나그네됨의 참 인식을 가진>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살기 족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를 반역한 자들이 최초로 도성을 세웠다. 1. 그들은 이 일을 행함에 있어서 어떻게 서로를 조장하고 격려했는가? 그들이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자”(3절)라고 했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자”(4절)라고 했다. 그들은 서로 열을 내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대담해졌다. 큰 일이란 그것을 맡은 자의 수효가 많고, 의견이 서로 일치하고, 서로를 격려할 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죄인들이 악한 일에 서로 조장하며 격려하듯이,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선한 일을 하도록 자극하는 일을 배워야겠다(시 22:1; 사 2:3, 5; 렘 50:5 참조). 2. 그들은 어떤 재료로 건축했는가? 그 지방은 평지였기 때문에 돌이나 진흙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 같은 사실로 인해 실망하지 않고, 벽돌을 만들어 돌을 대신하고, 역청을 구하여 진흙을 대신했다. 이에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자기의 목적에 단호한 자들은 어떤 방편을 쓰는가? 만일 우리도 이같이 감동을 받아 선한 일에 열중한다면, 일의 편리를 도모한다는 구실 아래 흔히 그렇듯이, 자기의 할 일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2) 인간의 건축과 하나님의 건축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를 볼 수 있다. 인간이 바벨탑을 세울 때는 벽돌과 역청이 최선의 재료지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실 때에는 “청옥으로 그 기초까지도 쌓으시며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미셨다(사 54:11, 12; 계 21:19). 3. 그들의 건축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어떤 이는 생각하기를, 또 다른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실로 이르시기를, 다시는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나 그가 지시하시는 방주를 믿기보다는 자신들이 세운 탑을 믿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일을 안중에 두었다면, 그들은 평지보다는 산 위에 탑을 세우기로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탑의 건축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1) 하나님을 모독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탑을 세우려 했으니, 이는 하나님께 대한 도전을 나타내는 것이며, 적어도 그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고 했든가(사 14:14), 그 신성함의 정도에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 높이에 있어서라도 가능하면 그에게 가깝게 되고자 해서였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했고, 땅 위에서 기는 것을 경멸했고, 문이나 사다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하늘에 기어 올라가려고 결심한 것이다. (2) 이로써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자 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입에 오르내리거니와, 그 후손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 자기들과 같은 인물들이 있었음을 알리려고 이 일을 꾸몄을 것이다. 후대에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한 채 죽기보다는 오히려 이 같은 교만과 야심과 우둔의 유적이라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다음을 명심하자. ① 명예와 명성에 대한 인간의 애착은 일반적으로 위대하고 이루기 어려운 일에 대한 이상한 열정을 불어넣으나, 때로는 하나님께 대해 사악하고 반역적인 일을 경주하는 수도 있다. ②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이루어진 명성을 흙속에 파묻어 버린 것은 공의로우신 행위다. 바벨탑을 세운 자들은 자기의 이름을 떨치기 위해 너무 엄청나고 어리석은 희생을 치렀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이루어 놓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역사 속에서도 바벨탑 건축자들의 이름 하나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필로 주데우스(Philo Judaeus)는 말하기를, “그들은 각각 자기들의 이름을 영원한 기념으로 벽돌 위에 새겼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뜻에 조금도 도움이 못 되었다. (3) 그들의 분산을 막기 위함이었다. “온 지면에 흩어짐을 막자”(4절). 요세푸스의 말과 같이, “그것은 ‘땅에 충만하라’(9:1)는 명령을 거역하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흩어지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아니오,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 살고 함께 죽으리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기 위해 그들이 상호간에 이 거대한 일을 시작했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단일제국으로 뭉치기 위해 이 같은 도성과 탑을 쌓고 그것으로써 그들 왕국의 수도와 자기들의 통일성의 중심이 되게 하려 했다. 야심에 가득 찬 니므롯의 무리들이 이 가운데 함께했다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다. 그는 어느 특정 부락을 지배하는 데 만족할 수가 없어서, 세계적인 군주국을 목표로 삼고 이 일을 위해 그들의 공동 안전을 추구하여 뭉친다는 미명 아래 그들을 한 집단으로 결속할 것을 책략하고, 그 모든 자들을 자기의 감시 아래 두고자 했을 것이다. 그는 틀림없이 그들을 자신의 휘하에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죄인들의 이와 같은 뻔뻔함과 오만불손을 보라. ① 하나님께 대한 대담한 거역이다.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너희를 흩으리로다”고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흩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대답한다. 이같이 창조주께 대항하는 자는 화 있으리라! ② 하나님과의 거만한 경쟁이다. 세계적 군주국이 되게 하시는 일은 만유의 주님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특권이다. 이것을 목표로 의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를 침범하는 자다. 하나님은 그 영광을 다른 자에게 양도하지 않으실 것이다. ----------- 여호와의 강림(창 11:5-9) 여기서는 바벨탑 건립자들의 계획을 취소케 만든 일과, 고집 센 인간들의 의지가 역전되고 하나님의 뜻이 세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Ⅰ. 인간 세계의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인식. 진행 중에 있는 그 계획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셨다. 즉 하나님은 인간들이 어떤 장소에 가보고 나서 아는 것만큼 그것을 이미 분명하고 완전히 알고 계셨던 것이다. 다음을 살펴보자. 1.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소송 사건에 대해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그 사건을 조사해 보신다. 하나님께서 죄와 죄인들에 대해 취하시는 온갖 절차는 두말할 나위 없이 정당하고 공평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실히 듣지 않은 것은 벌하지 않으신다. 2. 이 건축을 맡고 있는 자들이 그처럼 자랑하고 있던 그 건축사업까지도 감안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신을 낮추는 행위라고 일컬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이 낮고 천한 세상의 일들을 지극히 중요한 일로 보시리만큼 스스로를 낮추시기 때문이다(시 113:6). 3. 이는 “인생들의 쌓는 대”라 했으니, 다음 사실을 암시한다. (1) 인간으로서의 유약함. 세상의 벌레와도 같은 인생들이 하나님을 무시하여 여호와의 질투를 사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었다. 인생들이 하나님보다 더 강하단 말인가? (2) 죄 많음과 위해받기 쉬움. 그들은 “아담”의 자손들이었다(히브리어로는 그렇게 되어 있다). 아니, 오히려 저 아담 곧 죄 많고 불순종한 아담의 자손이었으니, 그들은 본질적으로 불순종의 자녀요 타락자의 자녀들인 것이다. (3) 신앙 고백자들, 곧 하나님의 자녀들과 그들에게서 스스로 분리되어 나온 저 뻔뻔스러운 건축자들의 차이점을 말해 준다. 바벨 건축자들, 그들은 분열을 지속시키고 영속화하기 위해 이 탑을 세웠던 것이다. 경건한 에벨은 이들 불경스러운 무리들 가운데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와 그 자녀들은 Q의 자녀들이라 불리고, 따라서 이들의 영혼은 인간의 자녀들의 은밀한 곳에 빠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모임에도 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Ⅱ. 이 문제와 관련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의지와 결의. 그는 단순한 구경꾼으로서 강림하신 것이 아니라 “교만한 자를 낮추시기 위하여”(욥 40:11-14), 심판관으로서, 왕으로서 강림하시는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중단시키시기 전에, 그들의 하는 일이 선한 길을 걷도록 기다리신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회개할 여지를 얻게 하려 하심이다. 그들이 만일 깊이 생각해 보았다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고 혐오했을 것이다. 그리했다면 그들의 좌절이 보다 큰 수치거리가 되어, 지나가는 자마다 저들을 보고 “세우기는 시작했으나 끝맺지 못했도다”라고 하는 조소는 듣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불후의 영예라고 스스로 약속하며 자기들의 손으로 이루려 했던 그 영광이 이제 영원한 치욕으로 변화되고 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 영광의 대적자들이 저들의 불경한 계획을 대규모로 경영하고 저들의 기업이 오래도록 번창하게 되는 것을 묵인하시는 중에도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을 두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2. 그들이 많은 염려와 수고로 건축을 어느 정도 진척시켰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방법을 꺾고 그들을 분산시키기로 작정하셨다. (1) 그런 하나님의 생각 속에는 하나님의 의가 깃들여 있다(6절). 하나님은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하셨다. ① 저들은 하나이나 흩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나, 저들이 만일 하나로 계속된다면, 많은 땅이 사람이 살지 않은 채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저들의 왕의 권력은 즉시 과대해지고, 사악하고 불경한 자들은 엄청나게 만연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저들이 세상에서 서로의 세력을 강하게 할 것이며, 또한 교회의 세력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자손들이 합동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소수의 남은 자들을 삼켜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포된다. 통일성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정책일 수는 있으나, 참된 교회의 절대무오한 징표는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그러나 바벨탑 건축자들은 그 가정, 성품, 의견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반대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처럼 이의 없이 단합했지만, 오히려 시온을 세우는 자들은 공통적인 하나의 머리와 성령 가운데 뭉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오늘날과 같이 나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조금도 이 일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평화를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었다. ② 그들의 완고함을 생각하셨다.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6절). 이것이 그들의 계획이 방해와 좌절에 부딪혀야 할 이유다. 하나님께서 명령과 훈계로 이들의 계획을 중단시키려 했으나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하여 다른 방도를 취하신 것이다. 첫째로, 유의할 것은 죄악의 깊음과 죄인들의 고집이다.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삼가지 아니한 이래로 성별되지 못한 그의 후손들은 역시 삼가지 못하고 반항해 왔다. 둘째로,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필요성은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율법으로 막을 수 없는 자들의 손을 묶는 데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2)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자”(7절). 이런 기업을 좌절시키기 위해 취하신 하나님의 방식에는 지혜와 긍휼이 깃들여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의 조언이나 도움이 필요하여 그들에게 이르신 말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하신 말씀이거나 성부께서 성자와 성령에게 이른 말씀이다. 사람들이 그들의 계획에 대해서 서로 격려하며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자. ……자, 도성과 탑을 쌓자” 했으며, 이제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자”고 하신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스스로 죄악을 선동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친히 활동하셔서 보수(報讐)하실 것이다(사 59:17, 18). ① 인간의 범죄에 비례해서 벌하지 않고 그 형벌을 조절하심은 하나님께 긍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신다”(시 103:10). 하나님께서 “자, 우리가 천둥과 번개로 내려가서 순식간에 저들의 반역을 소멸하자”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며, “땅이 열리게 하여 그 건축물을 삼켜 버리게 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하늘에 올라오려는 자들을 속히 지옥으로 내려보내자”고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직 그저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을 흩어버리자”고만 하신다. 그들은 죽어 마땅했다. 그러나 단지 멀리 추방될 뿐이었다. 하나님의 진노를 자극하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인내가 지극히 크시기 때문이다. 형벌은 주로 장래의 상태를 위해 보류해 두고 계신다. 이생에서 당하는 심판과 죄인에 대한 심판은 보류해 두고 있는 그 심판과 비교해 본다면 그들의 현재 일을 삼가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② 하나님의 지혜는 그들의 진행을 방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편을 선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함으로써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고, 말이 달라짐으로써 서로 협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것은 그 건축을 단념케 하는 일과(상호간에 이해가 없으면 서로 도울 수도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을 흩어지게 하는 두 가지 일에 지극히 합당한 방도가 되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게 될 때는 상호간에 만족을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것은 지극히 효과적인 것이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신을 내세우는 교만한 자들의 계획을 깨뜨리고 좌절시키는 데 효과적이며, 특히 저들의 정신을 나누거나(사 9:32) 또는 다윗이 기도하듯이 저들의 말을 나뉘게 함으로써(시 55:9) 저들을 분열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Ⅲ. 인간의 뜻을 허사로 돌리고 좌절시키려는 하나님의 뜻 성취(8, 9절).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하나님의 말이 성립되었는지 자기들의 말이 성립되었는지” 알게 하셨다(렘 44:9). 그들의 단일성과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보다 더 견고하셨다. 그 점에서 저들은 자기들 위에 계신 이에게 교만하게 행동했으니, “스스로 강퍅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욥 9:4). 세 가지 일이 성취되었다. 1. 그들의 언어가 혼잡케 되었다. 인간을 지으시고 말을 가르쳐 주시고 또한 그것으로써 그 마음의 생각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말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들 건축자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지금껏 쓰던 언어를 잊게 하시고 새로운 언어를 말하고 이해하게 하셨으니, 그 언어는 저들 동일한 부족이나 가족들에게는 공통적인 것이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과는 서로 통할 수 없었다. (1) 그것은 위대한 기적이었고,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과 혀에 행하신 능력에 대한 놀라운 증거요, 그가 강물처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의 증거다. (2) 그것은 그들 건축자들에게 내리신 놀라운 심판이었다. 참교회에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던 바 그 거룩하고 오랜 언어의 지식을 이처럼 빼앗김으로써 그들은 참된 교회와 서로 교통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 때문에 그들이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대부분 상실하게 되었을 것이다. (3) 우리 모두가 오늘날까지도 그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언어의 다양성으로 인해서 우리가 당하고 있는 그 모든 불편과, 필요상 언어를 배워야 할 때 겪는 그 모든 수고와 괴로움은 바벨에서 우리 조상들이 반역함으로써 받은 벌이다. 아니, 오히려 말싸움과 상호간의 몰이해로 인한 저 불행한 논쟁은 아마 이런 언어의 혼란으로 인한 것이리라. (4) 세계 통용어를 위해서 문자를 고안하고자 하는 모든 계획은 매우 바람직한 일처럼 생각되겠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런 시도는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시도는 하나님의 의도에 항거하여 싸우는 일이며, 그 같은 의도로 인해서 오히려 이 세상이 존속하는 한 모든 나라의 언어는 나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5) 우리는 처음에 만국 공용어였던 히브리어를 상실한 것을 한탄할지도 모른다. 이 언어는 이 때로부터 히브리인들만의 범속한 언어가 되어 바벨론 포로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며, 그 곳에서는 수리아 말을 대신 사용하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6) 언어의 혼잡이 인간의 자손들을 나뉘게 하고 멀리 흩어 버린 반면, 사도들에게 주신 언어(방언)의 은사는(행 2장) 널리 흩어져 있던 하나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고,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하게 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었고,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했다(롬 15:6). 2. 그들의 건축사업은 중지되었다. “그들은 성 쌓기를 그쳤다”(8절). 언어의 혼잡으로 인한 결과였다. 언어의 혼란은 서로 협력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손길이 자기들로부터 떠난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아마 저들이 사기가 떨어져 더 이상 그 일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명심해 둘 것이 있다. (1) 하나님과 대적해 싸우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은 그만두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2) 하나님은 모든 바벨 건축자들의 방안과 계획을 헛되게 하고 실패로 돌아가게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하늘 위에 앉아 계시사, 그와 그의 기름 부은 자를 대적하는 이 땅의 왕들의 계획을 조정하시며, 여호와를 대적할 지혜나 계획은 존재하지 않음을 저들이 고백하도록 만드신다(잠 21:30; 사 8:9, 10). 3. 건축자들은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되었다(8, 9절). 그들은 자기들의 종족과 방언을 따라(10:5, 20, 31) 그들에게 배당된 여러 지방과 장소로 떼를 지어 떠났던 것이다. 이전에도 저들은 이 땅을 알고 있었으나, 이제 강권되기까지는 이 땅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던 바로 그 일이 그들에게 닥쳤다. 즉 반항적인 행동을 통해 애써 피하고자 했던 그 분열이다. 이로써 결국 그들은 분열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는 우리가 간접적이면서도 죄악적인 방법을 써서 피하려고 애쓰는 바로 그 고난에 흔히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2) 여호와께서 “그들을 흩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였다. 모든 흩으시는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인식해야 한다. 만일 가정이나 친지들이나 교회가 흩어진다면, 그것은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3) 그들은 가능한 한 서로의 유대를 공고히 하려 했지만, 여호와께서 그들을 흩어지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분산시키고자 하시는 바를 인간이 한데 모을 수는 없는 법이다. (4)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탑을 세우고자 하는 자들이 외람된 기획에 합작한 사건에 대해 의롭게 보수하셨다. 치욕적인 분산은 죄악적인 단합에 대한 형벌에 불과한 것이다. 부정한 가운데서 한 형제였던 시므온과 레위는 야곱에게서 나뉘게 되었다(49:5, 9; 시 133:3-13). (5) 그 곳에 주어진 이름으로 인해 그들은 자기들의 치욕에 관한 영원한 비망록을 후세에 남겨 놓았다. 그 곳은 “바벨 곧 혼잡”이라고 불렸다. 위대한 이름을 목표로 삼는 자들이 흔히 “악명”으로 끝나는 수가 있다. (6) 이제 결국은 인간의 자녀들이 흩어지게 되었으니, 그 이후는 결코 두 번 다시 그들이 모두 한데 모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자(人子)가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고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이게 하는 바로 그 최후의 날까지는 결코 한데 모이지 않을 것이다(마 25:31, 32). -------- 데라의 자손들 (1)(창 11:10-26) 우리는 여기서 한 족보를 보게 된다. 그것은 끝이 없는 족보가 아니고 아브람에서 끝나는 족보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친구요, 더 내려가면 약속의 씨인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게 되며, 그리스도의 계보는 아브람으로부터 헤아리게 된다(마 1:1 이하). 따라서 창세기 5장과 11장, 그리고 마태복음 1장을 한데 묶어 놓으면, 확실히는 모르지만 이 세상 누구의 족보에서도 불가능한,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얻게 된다. 이 족보는 아브람에게서 시작되어 12근원에서부터 매우 멀리까지 이어지는 족보다. 또 이 세 족보를 한데 묶으면, 첫 아담과 제2아담 사이를 지나는 10을 두 곱, 14를 세 곱한 가계와 자손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와의 관련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그리스도는 아브람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인자(人子)이며, 여인의 씨라는 사실이다. 다음을 살펴보자. Ⅰ. 본문의 계보에 들어 있는 자들은 그 이름과 나이 외에는 아무것도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아마도 성령께서는 아브람의 이야기에 이를 때까지는 그들을 간략히 언급케 하신 것 같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현대에 살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처럼, 우리보다 앞서 이 세상을 간 자들에 대해서는 그 아는 바가 얼마나 적으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동일한 장소에서도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자들에 대해 역시 아는 바가 그 얼마나 적은가! 우리는 우리 시대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족하며, 하나님 홀로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게” 하자(전 3:15). Ⅱ. 저들의 수명이 점진적으로 감소된다. 셈이 600세까지 이르렀다고는 해도, 이는 홍수 전의 여러 족장들보다는 단명했고, 그 다음 세 사람도 단명하여 500세에 다다르지도 못했으며, 그 다음 세 사람은 300세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그 이후로는 데라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200년을 살지 못했다. 따라서 그 후로는 나이가 그리 많지 않게 되었고, 모세는 일반적으로 인간이 오래 산다고 하면 그 수명이 70이나 80이라고 헤아렸다. 사람이 이 땅 위에 충만하게 되기 시작했을 때 인간의 수명도 짧아지기 시작했으니, 수명의 감소는 오히려 어떤 자연적인 쇠퇴보다는 현명한 섭리의 탓으로 돌려야 하겠다. 즉 선택받은 백성을 위해 인간의 생애가 단축되는 것이다. 또 세월이 험악해졌기 때문에, “우리 조상의 나그넷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47:9). 히브리인이라고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에벨로부터인데, 홍수 이후에 출생한 자들 가운데서는 누구보다도 에벨이 가장 오래 살았으니, 이는 아마도 그만이 하나님의 길을 경건하고 엄격히 지킨 일에 대한 보답이었을 것이다. ---------- 데라의 자손들 (2)(창 11:27-32) 아브람의 이야기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이름은 이후부터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서 유명해진다. Ⅰ. 그가 살던 곳은 갈대아 우르였다. 그 곳은 그의 본향으로서, 우상을 숭배하던 나라이며, 에벨의 자녀들도 거기에서 타락했다. 은혜를 통해 약속의 땅을 상속받는 자들은 어디가 그들의 본향이었고, 그들의 죄와 타락상이 무엇이었으며, 자기들의 기초가 되었던 반석이 어떤 것인가를 기억해야 마땅하다. Ⅱ. 아브람의 친척들이 아브람과 그들의 관계 때문에 언급되었다. 1. 그의 아버지는 데라였다. 데라는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다고 하는데(수 24:2), 홍수 사건의 이면에는 그처럼 일찍이 우상 숭배가 이 세상에 뿌리박고 있었으니, 선한 윤리의 소유자라고 할지라도 그 같은 시대의 조류를 거슬러 나가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인 것이다. 데라가 70세 때에 아브람과 나홀, 그리고 하란을 낳았다.(26절,이는 아브람이 데라의 장자로 그가 나이 70세에 낳은 것같이 들리는데) 그러나, 32절을 보면 데라가 205세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도행전 7장 4절(여기에는 아브람이 그의 부친이 죽었을 때 하란을 떠났다고 한다)과 창세기 12장 4절(여기에는 그가 하란을 떠난 것은 그의 나이 불과 75세였다고 한다)을 세심하게 비교해 보면, 아브람이 출생한 것은 데라의 나이 130세 때였을 것이며, 아마도 그가 가장 연소한 자로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택하시는 바는 나중 난 자가 흔히 먼저 되고, 먼저 난 자가 나중 되기 때문이다. 2. 그의 형제들에 관한 몇 가지 기사가 있다. (1) 나홀이 나오는데, 이삭과 야곱은 둘 다 자기들의 아내를 그의 가정에서 취했다. (2) 하란이 나온다. 그는 롯의 아버지였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죽었다”(28절). 자녀들이 그 부모들보다 더 오래 산다는 보장이 없음을 명심하자. 죽음이란 연장자 순위로 나이든 자에게 먼저 오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그늘에는 아무 구별이 없다”(욥 10:22). 또한 그의 가정이 저 우상 숭배의 땅에서 이동을 하기 전에, 하란이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자연 상태(불신앙의 상태)에 있는 우리를 죽음이 불시에 엄습하지 않도록 그 자연 상태를 서둘러 떠나라는 충고를 주고 있음을 기억하자. 3. 그의 아내는 사래였다. 어떤 이는 생각하기를 그녀가 하란의 딸 이스가와 동일 인물이라고도 한다. 아브람 자신은 그녀에 대해 말하기를, 그녀는 자기 아버지의 딸이지 자기 어머니의 딸이 아니었다고 했다(20:12..그렇다면 배다른 누이일 가능성이 크다!!). 그녀는 아브람보다 열 살이나 젊었다. Ⅲ.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의 아버지 데라와 그의 조카 롯과 다른 가족들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12장 1절 이하에서 더 살필 수 있다. 본 장에서는 그들이 하란 또는 카란(Charran) 지방에 머물게 된다. 그 곳은 우르와 가나안의 중간쯤에 있다. 그 곳에서 데라가 묻힐 때까지 거하게 되었으니, 이는 아마도 그 노인이 나이가 많아 허약하여 더 이상 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하란에 이르지만 가나안까지는 채 미치지 못하며, 저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은 아니로되 결코 거기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 11장: 연합과 분리 [1절] 온 땅의 구음(口音)[언어]이 하나이요 언어[말]가 하나이었더라. 오늘날 세계에 3,000개 정도의 언어가 있고 그 중에 5천만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19개라고 한다.22) 그러나 본래 아담의 자손 들과 노아의 자손들은 한 언어를 사용하였다. [2절]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과 그들에게서 난 자손들은 ‘동방으로’ 이동했고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에 정착하게 되었다. 시날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중하류의 평지로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평원, 즉 오늘날 이라크의 동부이다. 바벨은 이라크의 알 힐라이다. [3-4절]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城)(이르 )과 대(臺)(믹달 )[탑]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그들은 시날 평지에 거하며 벽돌을 잘 굽고 역청을 접착제로 사용하여 큰 성과 높은 탑을 만들려 했다. 사람의 지혜는 뛰어났다. 바벨탑 건립은 아마 니므롯이 주도하여 행하였을 것이다. 바벨 남쪽 유브라데스 강 서편 언덕에 흔적이 남아 있는 빌스 니무룻이라는 명칭의 일곱 층계로 된 탑이 이 탑의 유적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생각한다. 노아의 자손들이 성과 탑을 건립하고자 했던 동기는 두 가지이었다.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하였다.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 그러나 사람이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은 받았지만 하늘은 하나님의 영역이다(시 115:16).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려는 생각은22) 실상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겸손히 자신들과 하나님 간의 무한한 차이를 인정하기보다 하나님과 견주려 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교만을 나타낸다. 교만은 하나님 앞에 가장 근본적인 큰 죄악이다. 사람은 창조자요 구원자이신 하나님만 높이며 자랑해야 한다. 둘째로, 그들은 온 지면에 흩어지지 않으려 하였다. 연합을 추구한 것이다. 그것도 니므롯이 주도하였을 것이다. 불경건과 교만에 근거해 이루어지는 연합은 폭군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그들의 시도는 전체주의적 사회를 지향하였을 것이다. 전체주의란 개인의 모든 활동이 국가 전체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역사상 독재 국가들에서 볼 수 있었던 생각이다. 그런 연합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 일반적으로, 연합은 선하고 좋으며, 분열은 악하고 나쁘지만, 강제적 연합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 그런 연합 아래서는 개인의 사유재산권과 신앙의 자유가 부정된다. 무신론적 전체주의 사회는 무서운 괴물과 같다. 우리는 주의 재림 직전에 적그리스도적 세계 통합과 교회 통합으로 전체주의적 국가와 교회가 나타나리라고 예상한다(계 13:7, 12, 16-17). 참된 연합은 하나님을 경외함과 그의 진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연합이란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고 진리와 의 안에서 이루어질 때만 좋은 것이다. 진리와 거짓, 의와 불의, 선과 악은 섞이기보다는 분리되어야 한다. 불경건과 교만으로 연합하기보다는 차라리 분리된 상태로 있는 것이 더 유익하다. 거기에는 최소한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자유로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된 연합은 경건과 의와 진실, 겸손과 사랑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 [5-9절]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인본주의적 연합 추구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는 그들의 일을 악하다고 판단하셨다. 그는 오늘날도 참된 진리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연합운동을 미워하신다. 그는 내려오셔서 그들의 하는 일을 보셨다. 그것은 비유적 표현이다. 또 그는 그들이 언어가 하나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음을 아셨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심으로 그 일을 중단케 하셨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다. 사람이 아무리 큰 일을 계획해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면 헛되게 될 것이다. [10-26절]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100세 곧 홍수 후 2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5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35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403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셀라는 30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에 403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벨은 34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43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벨렉은 30세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에 209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르우는 32세에 스룩을 낳았고 스룩을 낳은 후에 207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스룩은 30세에 나홀을 낳았고 나홀을 낳은 후에 2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나홀은 29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119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세기 7:11에 홍수가 노아 600세 2월에 시작되었다고 말하므로 셈은 노아가 502세 때에 낳은 아들이라고 보인다. 본문은 셈의 자손에 대해 말한다. 성경 역사는 하나님께서 셈의 자손 중에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으로 흘러 내려간다.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홍수 후 셈의 자손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로, 초산 연령이 낮아졌다. 창세기 5장의 아담의 자손의 기록과 달리, 본문에서는 초산 연령이 전부 35세 이하이며 대부분 30세 전후이다. 둘째로, 수명(壽命)이 점점 줄어들었다. 홍수 전에는 사람이 보통 900세 이상 살았으나, 홍수 후에는 현격히 줄어 데라의 아버지 나홀의 수명은 149세이었다. 노아 시대 대홍수 때 하늘의 대기층에 변화가 일어났고 태양 광선의 많은 유입으로 노화(老化)가 촉진된 것이라고 추측된다. [26절] 데라는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원문은 창세기 5:32와 같이 “데라가 70세가 된 후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는 뜻이다. 27절과 29절에 보면, 하란은 결혼하여 롯과 밀가와 이스가를 낳았고 그 중에 밀가는 삼촌인 나홀의 아내가 되었다. 그러면, 데라의 세 아들은 아브람, 하란, 나홀 순서일 것이며, 또한 하란과 나홀의 나이 차이도 컸을 것이다. 데라의 연대는 아담 후 1878-2083년경이며, 아브라함의 연대는 만일 데라가 그를 70세에 낳았다면 아담 후 1948-2123년경이다....((여기에 대해 분명 이론의 여지가 있다!!)) [27-30절]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와 그 아들들이 살았던 갈대아 우르는 오늘날 이라크의 나시리야에서 서쪽으로 10여km 떨어진 텔 엘-무카야르로 추정된다. 갈대아 우르는 옛 시대에 문명이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당시에 중산층의 집은 열 개 내지 스무 개의 방이 있는 이층 집이었고, 학교에서 학생들은 읽기와 쓰기와 산수를 공부하였고 곱셈과 나눗셈, 심지어 제곱근과 세 제곱근도 공부하였다.23) 데라의 아들 하란은 그 아버지보다 먼저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다. 데라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불행한 일을 경험해야 했다. 또 그의 아들 아브람(후에 아브라함이라고 이름을 바꿈)은 아내가 자녀를 잉태치 못하였다. 그것도 아버지 데라에게 큰 근심거리이었을 것이다. [31-32절]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205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24) < 23) J. P. Free, 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pp. 49-50. ..데라가 70세에 아브람을 낳았다면(창 11:26), 75세에 하란을 떠난(창12:4) 아브람은 데라가 145세에 즉 그가 죽기 전에 하란을 떠난 것이다>...((그러나 신양에서 말하듯이 데라 죽음 직후 떠났다고 보는 것이 맞고,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막내로서, 데라나이 130세에 태어났으리라.)) 데라와 그 일행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었다. 창세기 15:7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고 말씀하셨다. 느헤미야 9:7도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아마 아브람에게 어떤 계시를 주셨고(행 7:2) 아브람이 아버지 데라를 설득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데라는 가나안 땅으로 가다가 어떤 이유인지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다. 그가 중도에 주저앉고 만 것은 그의 연약 때문이었을 것이다. 갈대아 우르나 하란은 우상숭배적 환경이었다(수 24:2; 창 31:19; 35:2-4).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잘못된 연합 활동을 반대해야 한다. 노아의 자손들이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을 쌓은 것은 잘못된 연합 활동, 인본주의적 연합 활동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교만에서 나온 생각이며 활동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높이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을 높이는 인간의 교만을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에서 나온 바벨탑 쌓는 일을 기뻐하지 않으셨고 내려오셔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그 일을 중단시키셨다. 인본주의에 입각한 현대 과학과 문명은 바벨탑 쌓는 일이다. 인류는 또 다시 인간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람들은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같이 생각한다. 인간의 삶 속에 더 이상 하나님께서 계실 곳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삶에는 인간의 목적도, 죄 문제나 죽음 문제의 해결도 없다. 교만한 세상에는 허무함만이 가득하다. 성경의 예언대로, 말세를 당해 많은 교회들이 잘못된 연합을 추구하고 있다. 교회들은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고 변질된 천주교회를 용납하고 심지어 이방종교들도 포용하려 한다. 보수적인 교회들조차도 이런 넓어진 교회들을 분별하고 배격하지 않고 교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은 성경에 밝히 계시된 교제의 교훈을 어기는 잘못된 연합이다. 우리는 그런 연합을 반대하고 그런 일에 참여치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거룩한 분리를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자손 들 중에서 셈의 자손을 구별하셨다. 또 그는 셈의 자손들 중에서 데라를 구별하셨고 또 데라의 아들 아브람(후에 ‘아브라함’이라고 개명함)을 구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데라와 그 아들 아브람 부부를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셨다. 그것은 우상숭배의 환경으로부터의 분리이었다. 우리는 갈대아 우르 같은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 구원 운동은 분리 운동이다. 구원은 죄로부터와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또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불신자들과의 분리를 밝히 가르치고(고후 6:14-17), 이단들과의 분리를 밝히 가르치고(딛 3:10; 요이 7-11), 또 바른 교훈을 버리고 불순종하는 자들과의 분리를 밝히 가르친다(롬 16:17; 살후 3:6, 14). 신약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간에 서로 사랑하라고 밝히 가르치지만, 동시에 불신자들, 이단자들, 바른 교훈을 버리거나 불순종하는 자들과 교제를 끊으라고도 밝히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함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거룩한 분리를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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