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역개정]시134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내영혼이 은총입어438...찬양하라내영혼아..목마른사슴시냇물을찾아..내주님없이는못살아...주님여이손을꼭잡고...아버지그품안에서..두손들고찬양합니다..나의말에귀를기울이사..들으라이스라엘..오늘하루한영혼을..
<<마음-뜻-성품/정성>>으로 사랑함 :: ((지성=지식 + 지각분별 +지혜)) ** 지식 이해/통찰/경청분별/꿰뚫어 깨달음/성찰각성. 성찰각성/통회,교정+감동감사/감격감동감화동정동감/교통 + 뜻/의지적합일결단/순복추구실행=참된 성찰각성 = 총명/명철/지각분별[지식/기억/정보의 살아 생동함이 중요,,,,,집중-신중/상황이해추리분석/깨달음선악통찰/최선우선순위분별/해결방안도출선택제시]....총명/명철/지각분별의 생명/사랑의 지고지선 패러다임따른 운용이 지혜))...((의지))깨닫고 뜻한바, 진리따라 지혜롭게 열정일심전력추구 실행 달성 --((감성))느낌감동감화감격감사공감동감동정평강온화교통
--------------------- =====여호와 구속자, 구속하시는 여호와=====@구속[무름(속량)/자유]회복---속전(지속적으로 정결케 하는 보혈의 능력)--보수./보응/심판 la'G:(1350, 가알) 되 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행하다 [구속자 redeemer..근친/근족/혈연자 =고엘] 가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되사다, 도로 찾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redeem, 근친 역할(권리, 의무)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어근은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어근과 매우 유사한 어근 파다([d"P; , 6308): 구속하다 redeem) 사이의 한 가지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가알(la'G: , 1350)의 강조점이 구속자의 자격과 행함에 있는데, 반드시 근친이어야 하며, 근친의 특권이나 의무는 다름아닌 속량에 있다는 것이다.((JC가 바로 그러하시다..그는 태초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신 아들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이미 예고된 대로, 참사람으로서 성육신하셨고 인성을 가지셨기에 [죄로 인해 자기의 모든 것을 사탄에게 넘겨주고 파산한 자들인]우리의 피를 나눈 근친/근족으로서 모든 면에서 참된 자격과 능력을 갖추신 유일무이한 고엘이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가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자기의 친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함하는 4개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a) 첫째로, 가알은 오경의 법령에서 궁핍한 때에 판 밭을 되사는 것이나 가난할 때 자신을 판 이스라엘인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되사서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로 그대로 각 사람에게 배정/배분된 대로 모든 것을 돌려주고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지고지선의 진복 누림의 바탕을 제공하여 주는 구속의 일]로서 이런 매입과 무르는 일은 근친의 의무였다(레 25:25-54). 레 25:25에서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다. 물론, 만약에 자신이 부유하게 되면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을 '무를' 것이다(레 25:26). 한편, 가난한 자는 기업만이아니라 자기 자신을 동족 이스라엘인에게나(레 25:39)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타국인(레 25:47)에게 팔기도 하였다. 그를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척 - 형제, 삼촌, 사촌들, 가족의 혈족 - 에게 있었다(레 25:25, 레 25:48, 레 25:49).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친척을 속량한 redeemed 자(혈연자)는 '근족 - 구속자'로 알려져 있었다. (참조: EDBW). ---가난한 자의 구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실례는 수혼법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가 가장 광범위하게 미치는 룻기에 있는 것 같다. 신 25:5-10에 의하면, 남편의 형제는 후사 없는 과부를 취하여서 씨를 영속시키고, 남자 후손과 결부되어 있는 땅의 계승을 보증해야 했다. 여기 [수혼법의 실행 의무]에서 그것을 실행하는 근친은 야밤이라고 불리어지며, 어근 가알은 사용되지 않는다. ....룻의 상황에서는 두 가지 것들, 즉 밭을 되사는 것과 수혼이 언급된다. 근친은 밭을 사는 것을 기꺼워했지만, 룻과 결혼하는 것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의 요지는 나오미가 가난하여 밭을 팔 수 밖에 없었을 때, 근친은 그녀를 위해 그 밭을 되사야 했다는 데 있다. 그는 후사 없는 형제의 과부를 위해서 이 일을 기꺼이 하려 했지만,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 근본을 모르는] 룻과 결혼하여 그들의 기업을 지속시킬 자손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거부하였으며 여기에 보아스가 개입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것, 즉 친족과 수혼은 구별되어야 한다. 고엘(구속자)이란 단어는 후자의 제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레게트(Leggett)는 룻기에 구속적이고 메시야적인 유형론의 주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고엘(goel)로서의 보아스의 행동들에서 우리는 보아스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예시되어 있음을 보았다. 보아스가 구속의 권리를 소유하였으면서도 분명히 룻을 위하여 개입할 의무(까지)는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보라...룻은 나오미의 견해를 따라서 겸손하게 자신을 신부로 취하여 후사를 낳도록 해 달라는 뜻으로 보아스의 이불을 들추고 눕는다!!...겸손과 순종의 극치이다!!)) ....보아스가 이 가난한 과부들의 곤경을 보았을 때 그의 생애가 여호와와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러 왔던 것과 같이 메시야의 경우도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법에 의해 지배되고 또한 그가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었다(시 72:2, 시 72:4, 시 72:12, 시 72:13, 사 11:4). (b) 둘째로, 가알은 재산이나 여호와께 바쳐진 희생제물 아닌 짐승들을 무르는 것, 혹은 부정한 짐승들의 첫 소산을 무르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레 27:11-33). 이 [속전!!]사상은 인간이 교환물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전은 부정직한 교환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추가 몫이 제공되었다. 이런 경우에 무르는 자는 친족이 아니라 재산의 주인이었다. (c) 셋째로, 가알은 살해당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의 보수자"(RSV '보복자' revenger)가 되는 가장 가까운 친족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며, 칼 분사 고엘로 나타난다. 고엘은 구속자이며, 이 구속자는 '피의 보수자'로 불리우는데, 그의 임무는 자신의 친척을 살해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다(신 19:6). 이 사상은 가까운 친족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돈을 지불함으로서 집을 재매입하거나 노예를 속량할 수 있는 것처럼, 친족의 잃어버린 생명은 마땅히 살인자의 그에 상응하는 생명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친족은 피의 보수자이다. 이런 사형 제도는 피비린내 나는 숙원과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엘은 죄없는 사형 집행인이었으며 따라서 살해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보수자'라는 의미로 12회 나온다(민 35:12, 민 35:19, 민 35:21, 민 35:24, 민 35:25, 민 35:27, 신 19:6, 신 19:12, 수 20:3, 수 20:5, 수 20:9).(참조: R. L. Harris). (d) 넷째로, 가알은 하나님께서 '구속자'로서 '구속하시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출 6:6에서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라고 약속하신다(출 6:6, 참조: 시 77:15).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출 15:13).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시 78:35). ....이사야서에는 '구속자'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지칭하여 13회 나오는데 모두 사 41- 63장에서 사용되었다. 가알은 하나님에 대해 9회 사용되었으며, 사 43:1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가알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사 51:10, 사 63:9)과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의 구원(사 48:20, 사 52:3, 사 52:9, 사 62:12)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41:14)이며 '너희의 왕 이스라엘의 창조주'(사 43:14, 사 43:15)이며 '만군의 여호와'(사 44:6)이며 '야곱의 전능자'(사 49:26)이다. 그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는 '구속 받은 자'이다(사 35:9). ....시편에는 종종 영적인 구원이 육적인 구원과 병행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시 69:18.,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시 103:2, 시 1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윤택을 잊지 말찌어다...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이 그러하다(참조: EDBW). [욥19:25,26,27]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25. "And as for me,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And at the last He will take His stand on the earth. *26. "Even after my skin is destroyed, Yet from my flesh I shall see God; *27.Whom I myself shall behold, And whom my eyes shall see and not another. ....유명한 구절, 욥 19:25에서 고엘이란 단어는 흠정역성경에서 '구속자' redeemer로 번역되며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속죄의 사역을 하러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히브리어 "파다"에 의해 더욱 특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제 욥 19:25에 나오는 이 단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욥을 죽음의 먼지에서 구속할 친구이자 친족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더욱 정확하게 관련된다. 욥 19:26의 난해한 어구, "이 가죽을 벗은 후에"는 다른 모음들과 함께 "내가 깨어난 후에"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NIV 각주와 욥 14:12-14을 참조하라. 욥 14:12-14에서 부활에 관한 욥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를 돌아보시며 욥은 나무처럼 제 2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그의 소망에 의해 절정에 달하게 된다 - 욥 14:14의 할리파는 욥 14:7의 할랍에 대한 응답이다). 어쨌든 욥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기의 고엘이신 하나님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참조: R. L. Harris).
..[[사59:20,21]]..*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9:24]] *2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미가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죄인괴수 죄성 지닌 자, 세상살이는 메섹과 게달의 장막에 사는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 탈취와 노략의 쟁투, 곧 환난의 날이라, 오직 구주JC께 부르짖어 그분안에 충만히 거하라. [시120] *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3.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4.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5.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이제, 마음 열어, 중심으로 동행하시는 영원반석/성채/산성-보혜사-인도하시며 지키시는 목자, 엘에제르 HS와 동행하라 [시121]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보라, 그리스도를 살라, 사람들로 하여금 평강과 형통 허락하시는 네안의 여호와를 감사하며 흠모하고 기리게 하라, 자원하여 나아와 공예배에 함께 참석하기를 원하도록 만들라. [시122편]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네눈을 [세인의 조소와 멸시로부터]구주 JC께 돌려 중심으로 산 믿음 발휘함으로 앙망하라, 긍휼 구하라, 정복자 그 이상의 존재, , 허락하신 영생안에서 모든 이김을 감사하라 [시123편]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엘에제르, 임마누엘 여호와께 감사하라...[세인의 약탈-침노와 멸절로부터] 말씀의 뜻대로 행하시도다. [시124]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지고지선의 진복은 오직 구주로 사는 (선을 행하며 정직하게 동행하는) 기독자들은 여호와의 선대하심/평강형통 깨닫고 감사하라.. [시125편] *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요일 3:6, 9, 5:17 참조 묵상..시131편) *4.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오순절-해방/회복]구속 은혜 기쁨안에서: 섭리의 때, 해방 감격 = 전존재로 누리는 영적 기쁨과 감사, 실제적 형통 [모든 이들이 주께 돌이킴] 회복/부흥 추구 실행의 긍휼 간구 [시126편]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솔로몬에게 깨닫게 하신 말씀--친히 집과 가정을 세우며 지키시는 전능-은혜 구주를 높이며 친밀한 하나됨 이루어 따르라, 자랑-기쁨의 가정과 기업된 자녀들이여 [시127편]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 경외함 : 야다-에셰르-바라크, 구주영접/영생부활생명의 은혜, 믿음소망사랑오래참음기쁨평강-감사/형통/번성/번영/창대함-- [시128편]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세상 악인들이 주님의 기독자, 영적이스라엘을 미워하며 괴롭히나 결코 이기지 못하리라..JC안에서 소명과 사명 이루라--- [시129편]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2.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3.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4.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5.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6.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7.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 *8.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부르짖음과 간구로 기도하며 주님을 앙망하노라--- [시130편]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그러므로 주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바, 내마음은 임마누엘 여호와안에서 고요히 쉬며 앙망하노라---- [시131편]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Q말씀을 바라는 이는 겸손-추구-치열함으로 서원한 바 이룬 다윗과 같을지니, 제사장마다 구원과 의를 옷입고, 성도마다 승리하신 JC의 풍성한 기쁨으로 외치리라 ---- [시132편] *1.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 *2. 그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3.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4.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5.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6.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7.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8.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9.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옷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10.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옵소서 *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하지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 둘지라 *12. 네 자손이 내 언약과 그들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그들의 후손도 영원히 네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5.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떡으로 그 빈민을 만족하게 하리로다 *16.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옷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이 외치리로다 *17.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 *18.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 수치를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선하고 아름다운 다윗과 같은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연합/동거함이 복이라--- [시133편]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바로 거룩하고 선한 아름다움은 여호와의 성전이 그 근원이로다---
1. 보라 밤에(라일) 여호와의 성전에(바이트) 서 있는(아마드)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에베드) 여호와를 송축하라(바라크) 2. 성소를(코데쉬) 향하여 너희 손을(야드) 들고(나사) 여호와를 송축하라 3. 천지를 지으신(아사)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바라크) --------- NASB]시134 1. {A Song of Ascents.} Behold, bless the LORD, all servants of the LORD, Who serve by night in the house of the LORD! 2. Lift up your hands to the sanctuary, And bless the LORD. 3. May the LORD bless you from Zion, He who made heaven and earth. ------- AMP] Greetings of Night Watchers. A Song of [a]Ascents. 134 1. Behold, bless and praise the Lord, all servants of the Lord (priests, Levites), Who stand and serve by night in the house of the Lord. ((주목하십시요...밤에 주의 집에 서서 섬기는 주님의 모든 종들이여, <일심으로 주야로 주께 집중하여 교통하며>주를 송축하며 찬송하십시다)) 2 Lift up your hands to the sanctuary And bless the Lord.((성소를 향하여 <전존재 기울여 중심으로>두손 들고 주를 송축하십시다)) 3 May the Lord bless you from Zion, He who made heaven and earth.((천지를 지으신 주께서 <친히>시온으로부터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시134개요== 이 시편은 15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중 마지막이다. 만일 그들이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 모두 함께 어떤 시간에 노래를 불렀다면 이 시편은 그중에서 결론으로 적합하게 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편의 목적이 낮의 예식을 끝내고 밤에 자기들의 일과를 계속하는 성직자들을 고무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편이 대화체로 쓰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1. 여호와의 집을 지키기 위해서 밤을 새우는 제사장 또는 레위인들이 지키는 동안에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고, [오로지 심혈을 기울여 전존재로] 예배의 행위를 하는 데에 그들의 시간을 보내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1-2). 2. 이와 같이 하나님을 송축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대제사장 혹은 파수대장을 권면하며, 하나님께 기도한다. 또는 예배를 드린 자들이 서로 권면해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3). ---우리는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스스로 감동되어야 하며, 그에게서 오는 자비와 은총을 소망하도록 자신을 격려해야 한다. =====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부름(시 134:1-3) 이 시편은 우리에게 두 가지 축복에 대해서 교훈을 주고 있다. Ⅰ. 우리가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 즉 그를 찬양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1-2절). 1. 그것을 행하는 것은 “레위인”에 대한 요청이다. 그들은 직책상 거룩한 일을 사역하기 위해 임명된 “여호와의 종들”이었다. 그들은 성소에서 수고하며, 여호와의 집의 책임을 담당했다(민 3:6 등). 그들 중 몇 사람은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서서” 성전의 거룩한 것과 값진 것들이 모독되거나 약탈당하지 않도록 지켰다. 법궤가 휘장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감시가 더욱 필요했다. 또한 제단과 촛대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수고했다. 아마도 그것은 소수의 열심 있고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익숙해 있던 것 같다. 우리는 “주야로 성전을 떠나지 아니한” 사람에 대해 성서에서 읽는다(눅 2:37). 이제 그들은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부르심을 받는다. 이처럼 그들은 일을 하면서 깨어 있고 거룩한 활동을 위해 시간을 바쳐야 한다.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보다 더 좋게 어떻게 보낼 수 있겠는가? 경건한 묵상과 절규로 시간의 공간을 채우는 것이 최선의 책임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밤의 시간, 바로 그때, 하나님과의 대화는 가장 적합하며, 합당한 요구가 된다. “여호와의 집에” 섰는 자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해야 하며, 경건과 거룩한 활동이 그 집에 어울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송축케 하라.” 그들 모두가 또는 각자가 마음을 올리는 표시로 그렇게 하라. “거룩하게 너희의 손을 들라”(하몬드 박사는 이렇게 풀이한다). 또는 성별해 손을 들라. “성소에서” 손을 들 때, 그것이 합당하게 된다. 그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으라고 명령받을 때, 그들은 거기에서 기도와 찬양 가운데 “거룩한 손을 들라”고 가르침을 받는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제사장이요 레위인으로서 그렇게 행하라고 부르심을 받고 있다(사 66:21). 우리는 “여호와의 종들”이다. 우리는 그의 집과 그의 성소에 거처와 이름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 앞에 성직자로 선다. 밤에도 우리는 그의 눈 아래 있으며, 그에게 가까이 한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송축하라.” 반복해 그를 송축하라. 그의 영광과 인자하심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라. 기도하고 찬양하고 맹세할 때, 우리의 “손을 들자.” 근면과 즐거움과 마음의 고결함으로 우리의 일을 행하자. 이러한 권면은 주로 명령적 주의를 환기시키는 “보라!”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현존에 참여했을 때 여러분을 돌아보라. 그리고 그에 따라서 행동하라. Ⅱ.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선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갈구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3절). 파수꾼들이 그들의 대장을 축복한 것이나 레위인들이 대제사장을 축복한 것, 그들의 우두머리가 누구였든(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이 단수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또는 축복이 한 사람에 의해 많은 사람들에게 선포되었다든지 하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은 배울 수 있다. 1. 우리는 여호와의 축복받는 것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줄 그 이상의 것을 간구할 필요가 없다. 그가 축복하는 자들은 실제로 복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2. 시온으로부터 오는 축복, 영적인 축복, 즉 하나님과의 교제의 축복, 언약의 축복이 가장 좋은 축복이다. 우리는 그것을 열심히 구해야 한다. 3. 우리가 축복을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가 “천지를 지으신” 분이시며, 따라서 그의 처분대로 하늘과 땅의 모든 축복의 근원을 갖고 계심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4. 우리는 이러한 축복들을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간구해야 한다. “여호와께서는 나를 축복하실 뿐만 아니라 너도 축복하신다.” 그렇게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충만함은 우리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넉넉함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선한 의지를 입증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권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는다”고 할지라도(히 7:7), 낮은 자는 높은 자를 위해 기도해야만 한다. ---------- =========== lyIl'(3915, 라일) 밤 NIGHT 라일(명남)은 어원이 불분명하며, '밤 night'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40회 나온다. 구약성경은 어두움과 밤이 하나님에 의해서 준비되었다: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4-5, 시 74:16). 밤 동안 하나님께서는 깨어서 삼림의 짐승들을 위하여 먹을 것을 마련하시며(시 104:20-22), 사람을 염병으로부터 보호하신다(시 91:5-6). 실로, 낮과 밤의 교체와 일정한 주기는 제각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결과이며(창 8:22, 렘 33:20, 렘 33:25), 따라서 각기 연속되는 낮과 밤은 아브라함 및 다윗과 맺은 또 다른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렘 33:21-26). 하나님에게 있어서 밤은 낮처럼 밝다(시 139:11-12). 가장 기억에 남는 밤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노예상태로부터 구원하신 날의 밤이다(출 11:4, 출 12:12, 출 12:29). 그것은 해마다 유월절에 상기된다. 이런 연관성 속에서 삼상 30:12의 사흘 밤낮은 교훈적이다. 삼상 30:13은 "오늘이 사흘째이니이다". 이 표현은 72시간이 지났다는 확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날 수로 사흘이 포함될 때 적용하는 상용어구라고 결론지어질 수 있다(참조: 주 여호와의 밤낮사흘). 다른 곳에서 밤은 시련, 울부짖음, 고난,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의 시간으로 나타난다(사 30:29, 욥 7:3, 시 6:6, 시 77:2, 사 26:9, 시 1:2, 시 42:8, 시 77:6, 시 88:1, 시 99:2, 시 119:55).(참조: W. C. KAISER; BDB). -------- tyIB'(1004, 바이트) 집, 가정 house 바이트(명남)는 기본어이며, '집, 가정 house'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050회 나오며 '집' house, 혹은 '건물' building, '가정' home, '가족' household, '땅' land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명사는 아람어 성서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다른 셈어에 동족어를 가지고 있다. (a) 바이트는 어떤 종류의 재료로 만든 고정된, 세워진 구조물을 나타낸다. 이것은 '영구적인 거처'로서, 대개 장막과 구별된다(삼하 16:21, 참조: 삼하 16:22). 이 단어는 방 한 개의 거처에도 적용될 수 있다: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창 19:2). 바이트는 또한 일시적인 '장막'(booth)이나 초가(but)와는 구별된다: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house)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booths)을 지은고로..."(창 33:17). 시 132:3에서 이 단어는 '생활 거처'를 뜻하며 '장막' tent(직역하면 '내 집의 천막')과 직접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시 132:3). 이와 비슷한 용법이 대상 9:23에 나온다(직역하며 '천막 집' the tent house): "저희와 그 자손이 그 반열을 좇아 여호와의 전 곧 성막문을 지켰는데". (b) 바이트는 많은 구절들에서(특히 이 단어가 '하나님'이란 말과 결합되어 사용될 때) 예배의 장소, 혹은 '성소'를 나타낸다: "너희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니라..."(출 23:19). 다른 구절에서 이 명사는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의미한다: "또 전의 벽 곧 성소와 지성소의 벽에 돌아가며 다락들을 건축하되..."(왕상 6:5). 때로 이 단어는 비록 상세하게 정의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런 의미를 지닌다(참조: 겔 41:7). (c) 바이트는 방이나 가옥의 부속물을 의미한다: "전국 각 도에 관리를 명령하여 아리따운 처녀를 다 도성 수산으로 모아 후궁(harem, 직역하면 '여인들의 집')으로 들여..."(에 2:3). 이와 관련하여 바이트는 건물의 내부 혹은 바깥쪽에 반대되는 어떤 다른 구조물을 나타내기도 한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창 6:14, 성경의 처음 용례). (d) 바이트는 종종 어떤 것이나 사람이 거하거나 안식하는 장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지하세계(음부[sheol])는 '집'으로 불리운다: "내 소망이 음부에 내 집을 삼음에 있어서 침상을 흑암에 베풀고"(욥 17:13). '영원한 집'은 무덤이다: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전 12:5). '집'은 느 2:3에서처럼 '무덤'과 함께 사용될 때 '장소'를 의미할 수도 있다: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있는 성읍이 어찌하여 황무하고". (e) 바이트는 삿 3:20에서 용기(NASB, '상자' box)를 의미한다. 왕상 18:32의 '두 종자의 집' house of two seeds(한글개역 - "곡식 종자 두 세아를 용납할 만한 도랑")은 곡식 종자를 담는 용기를 가리킨다: "제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로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용납할만한 도랑(직역하면, ~의 집들)을 만들고". '널판들의 띠' house of bars는 받침대를 의미한다: "그 널판들은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장소(places, 직역하면, 집들 houses)들을 위하여(한글개역 - "널판들의 띠를 꿸) 금고리를 만들고..."(출 26:29). 이와 유사한 것으로 잠 8:2에 나오는 두 길의 교차로, 즉 '두 길의 장소' places('집' house, 한글개역 - "사거리")를 참조하라. 스텝지대(steppe)가 '짐승들의 집'으로 칭해진다: "...내가 들로 그 집을, 짠 땅으로 그 사는 처소(짐승들의 집)를 삼았느니라"(욥 39:6). (f) 바이트는 가끔 한 집에 사는 사람들, 즉 '가족' household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창 7:1). 수 7:14에서 이 단어는 '가족' family을 의미한다: "...여호와께 뽑힌 지파는 그 족속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족속은 그 가족대로(직역하면, 집 혹은 단일한 거처에 사는 사람들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수 7:14). 이 명사는 이와 유사한 의미에서 '자손'을 의미한다: "레위족속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었더니"(출 2:1). 이 단어는 '확대 가족', 심지어 주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을 삼았더라"(삼하 2:4). 그러나 창 50:4에서 바이트는 '왕궁' 또는 왕궁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house)에 말하여...". '왕궁'과 '자손'이란 개념이 삼상 20:16에서는 결합되어 있다: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삼상 20:16). (g) 바이트는 몇몇 구절들에서 '영토' 또는 '나라'를 뜻한다: "나팔을 네 입에 댈찌어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호 8:1, 호 9:15, 슥 9:8). (참조: NEDO; BDB). -------- dm'[;(5975, 아마드) 서 있다, 위치를 취하다, 머무르다, 지탱하다 아마드(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서 있다, 위치를 취하다, 머무르다, 멈춰서다, 지탱하다, 견디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0회 이상 나온다.(참조: BDB; HELOT). --------- db,[,(5650, 에베드) 노예 slave, 종 servant 에베드(명남)는 아바드(db'[; , 5647: 일하다, 섬기다)에서 유래했으며, '노예 slave, 종 servant'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800회 나온다. (a) 에베드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노예'이긴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노예 신분은 그렇게까지 넌더리 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노예 신분도 여러 권리들을 지니고 있었고 종종 신뢰할 만한 지위도 소유했기 때문이다. 동료 이스라엘인은 그의 뜻에 거스려 무기한으로 노예로 삼을 수 없으며 그 기간은 6년으로 제한되었다(출 21:2). 심지어 노예를 그 주인의 금전으로 기술하는 매우 항의를 많이 받고 있는 출 21:20-21의 서술도 하나의 '실리적인 사상'이 아니라 오히려 주인에 의한 육체적 학대를 통제하는데 기여하였다. 악한 의도가 있었음이 증명되는 경우(출 21:14)나 종이 죽는 경우(출 21:20)에는 언제든지 그 주인은 형벌을 면할 수 없었다. 만약 주인의 의도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경우 상해를 당한 노예는 최소한 자유를 얻으며(출 21:26-27) 주인은 대부금을 잃는다(출 21:21). 또한 창 24장 이하, 창 41:12(참조: 창 15:2)에 언급된 종의 영예로운 위치를 주목하라. (b) 왕의 신하들은 왕의 모든 봉신들(vassal kings, 삼하 10:19)및 속국들(대상 18:2, 대상 18:6, 대상 18:13)과 마찬가지로 그의 종들이다(창 21:25, 출 7:28). 관리들("신하" 삼상 19:1), 공무원들("시신", 왕하 22:12), 사절들("신하들", 민 22:18)을 포함하여 왕에 대한 직무를 맡은 모든 자들도 역시 왕의 종들이다(창 40:20). (c) '종'이라는 용어는 종종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공손하고 겸손한 말로 사용되었다(창 33:5). 이것은 "당신의 개 같은 종" 등등과 같은 표현에서처럼 극단적일 수도 있다(왕하 8:13, 삼하 9:8). 텔 엘 아마르나 서판들(Tell el Amarna tablets)과 라기쉬(Lachish) 서신들 2, 5, 6번을 참조하라. "당신의 종" 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자주 사용되었다(출 4:10, 시 19:12, 시 19:14, 시 109:28). (d) '종'이라는 용어의 가장 중요한 용법은 메시야를 지칭하는 것인데, 이 용어는 메시야에 대한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나타내는 가장 두드러진 인격적, 전문적 용어이다. 메시야에 대하여 중심적인 가르침을 주는 구절들은 이사야의 마지막 27장들(즉 사 39-66장)에서 발견된다. 거기에서 이 단어는 단수로 20회(사 39-53장), 복수로 11회(사 54-66장) 나타난다. (e) 단수로 쓰인 20회 용례 중 12회와 복수로 쓰인 11회의 용례에서 종은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킨다. 단수가 나타나는 구절들로는 사 41:8-10, 사 42:18-19, 사 43:9-10, 사 44:1-3, 사 44:21, 사 45:4, 사 48:20, 아마도 사 49:3이고 복수가 나타나는 구절은 사 54:17, 사 56:6, 사 63:17, 사 65:8-9, 사 65:13-15, 사 66:14이다. 윌리스 비처(Willis Beecher)가 상기시켜주는 바와 같이 이것은 단순한 인종집단으로서의 종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다른 무엇을 나타낸다. 이것은 또한 아브라함 및 다윗과 맺은 약속(언약)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원주민이든 주민으로 받아들여진 자들이든 상관없이 이 약속에 참여하는 민족인 이스라엘과 영적인 이스라엘 둘 다를 가리킨다. (f) 또한 몇몇 구절에서 종은 실제 이스라엘과 구별되며 이스라엘에 대하여 선교사명을 띠고 있다(사 49:1-9, 사 42:1-7, 사 50:4-10, 사 52:13-15, 사 53:1-12). 이 종은 종으로서의 이스라엘과 동일시되어야 하면서도 그들에 대하여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동시에 구별되어야 한다(사 49:5-6에서 분명히 진술되어 있다. 참조: 사 49:3). 분명히 이 종은 그 이름을 그들 나라와 민족에게 남기어 그 동일한 이름이 그들 나라와 민족 양자 모두를 가리키게 하는, 이름의 시조가 되는 영웅들과 반대된다. 여기에서 그 집단의 핵심적인 일원은 처음보다 오히려 마지막에 온다. 그 집단에는 프란츠 멜리취(Franz Delitzsch)의 설명에서 맨 밑바닥은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나타내고(사 42:19), 중간은 영적인 이스라엘, 즉 본토 신자들과 양자로 받아들여진 신자들(사 41:8-10)을 나타내고, 꼭대기는 메시야, 즉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는 세 집단 간에 통합적 연대성이 있다. 또 다른 견해는 이 구절들에서 두 명의 종, 즉 사 42:19, 사 49:3 등에 나오는 소경인 실패한 종 이스라엘과 사 42:1과 사 49:5, 사 50:10, 사 52:13과 사 53:11에 나오는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종 메시야를 본다. 이 용어를 언약의 백성에게 적용시키는 선지자로 이사야 외에도 있다. 렘 30:10, 렘 46:27-28, 겔 28:25, 겔 37:25을 또한 보라. 이 단어는 렘 33:21-22, 렘 33:26, 겔 34:23-24, 겔 37:24-25에서 다윗, 약속의 메시야에게 적용되며, 학 2:23에서는 다윗의 후손 스룹바벨에게 적용된다. 특별히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가 메시야적 칭호인 '가지' branch("순", 슥 3:8)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g) 다른 종교적 용법들로서 이 단어는 모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 worshipers(모든 셈족 사람들이 예를 들면 "바알의 종", 마르둑 등과 같이 그들의 거짓 신들을 가리킬 때도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성전에 있거나 성전에서 봉사하는 모든 종들,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갈렙, 다윗, 히스기야, 엘리야김, 스룹바벨과 같은 하나님의 종들로서의 독특하고 유일한 역할로 그들의 여호와를 섬긴 자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가리키는 칭호인 "나의 종들", 혹은 "그의 종들" 혹은 "당신의 종들"이라는 표현이 24회 나온다.(참조: W. C. KAISER; BDB). -------- &r'B;(1288, 바라크)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 복을 주다, 찬양하다 바라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복을 주다), 찬양하다'를 뜻하며, 다른 의미로는 주로 하나님에 대하여 '저주하다, 욕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왕상 21:10, 왕상 21:13, 욥 1:11, 욥 2:5). 기본적으로 바라크는 '유익한 능력을 부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구약성경에서 '축복한다'는 것은 '성공, 번영, 생산, 장수 등을 위한 능력을 부여한다'를 의미한다. 이 의미는 부여하는 과정과 부여 받는 상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또한 바라크의 의미를 보면 무릎을 꿇는 것과 축복이나 복을 받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1) 무릎을 꿇는 것, 곧 기도하는 것은 축복을 받는 비결이다. 대하 6:13(참조: 왕상 8:14, 왕상 8:54)을 보면 솔로몬은 성전 봉헌에서 놋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복은 백성들이 예배가 끝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그들에게 내려졌다. 이렇게 하여 이 복은 그들의 일상 생활에 실현된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이삭의 신부를 구해오라는 주인의 부탁을 받고 메소포타미아 나홀의 성에 이르러 낙타를 그 성밖 우물 곁에 무릎을 꿇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종의 기도로 주인과 종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의 좋은 신부감을 얻는 복을 받은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열심히 기도하자. (2) 무릎을 꿇는, 곧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은 복을 받는 비결이다. 시 95:6이하에서 시인은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을 듣기를 원하노라"(빌 2:10, 빌 2:11)라고 말했다. 시인은 시 115:2이하에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무론 대소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라고 노래했다. (3) 신앙 공동체는 자기가 받은 복에 대하여 여호와를 찬양함으로서, 곧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라는 외침으로 응답했다. 시 28:6, 시 28:7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노래했다. 여러분 바라크라는 말을 기억하라. 바라크 -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다. 바라크 -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것이다. 바라크 -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다. 바라크 - 받는 복을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다.(참조: H. -G. LINK; TBC). ------- vd,qo(6944, 코데쉬) 분리됨, 거룩함, 신성함 코데쉬(명남)는 카다쉬(vd'q; , 6942)에서 유래했으며, '분리됨, 거룩함, 신성함'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470회 나온다. 명사 코데쉬는 '거룩함'의 개념을 내포한다. 즉 이것은 거룩한 영역에 속하는 사물, 따라서 범속한 것과는 구별되는 사물의 본질적 특성이다. 이러한 구분이 레 10:10과 겔 22:26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여기에서 코데쉬가 홀(불경스러운, 세속적인, 범속한)의 반의어로 등장한 것이다. "거룩한"이라는 단어가 '두려운 신비'(mysterium tremendum)를 시사한다는 오토(R. Otto, 참고문헌을 보라)의 견해는 일리가 있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경외를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단어는 신격과 거의 같은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다. "그의 거룩한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내실을 거룩한 곳들 중의 거룩한 곳이라 부른다. 곧 지성소라는 뜻이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그의 능력의 신비성과 관련시킬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선하고 전혀 악이 없는 그의 속성에로도 귀착 시킨다. 그러므로 거룩한 객체들은 제의적 불결성이 전혀 없는 객체들이며, 이러한 제의적 불결성은 도덕적 불결성도 의미한다. 이 거룩한 객체들은 단순히 바쳐졌을 뿐만 아니라 선한 것에로 바쳐졌으며 악한 것과 분리되었다는 뜻이다. 제사 의식상으로, 더럽히는 것으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진정 영적 도덕적 성결을 의미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이 구약성경으로부터 신약에 인용되었다(벧전 1:16, 레 19:1, 레 20:7 등등). 그리고 소위 성결 법전이라는 것은 윤리적 색체가 강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의 모습을 반향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윤리적으로 거룩한 분으로 계시하면서, 하나님 자신을 닮은 거룩한 속성에로 인간을 부르고 계신다(ISBE, "Holiness"). 이스라엘 종교의 기본 요소 중 하나는 신성의 영역과 범속의 영역 간의 상호 불가침적 구별을 유지시키는 것이었다(민 18:32). 고유적으로 거룩한 것, 또한 하나님의 법률이나 종교 의식에 의해 거룩하다고 명명된 대상은 범속한 것으로 취급하면 안되었다. 안식일은 거룩하였다. 그리고 그 날과 관련된 금지 사항들은, 그날의 독특한 성격을 유지시켜 주고 그 날이 범속한 날로 취급되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하였다(출 16:23-26, 사 58:13, 사 58:14). 제사장들에게는 그 거룩한 신분을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특별 제한이 가해졌다(레 21:6이하). 성교는 구약성경에서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교는 레위기 율법상의 불결 상태를 초래하는 한 요소였으며(레 15:18) 이로써 거룩한 것과의 접촉이 금지되었다(삼상 21:4). 이와 동일한 원리가 화목 제물(레 19:5-8), 거룩한 기름(출 30:32-33), 그리고 거룩한 향(출 30:37)에도 적용되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은 '거룩한' 영역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레 5:15-16에서 "성물"이라 불리는 레위기적 예배의 여러 요소들 즉 그 땅의 소산물(레 19:24), 사유 재산(레 27:28), 군사 행동으로써 획득한 전리품(수 6:19) 등이 이에 포함되었다. 오직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는 희생 제물은 '거룩하다'고 명명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제사장직에 의해 묘사된 바로서 거룩한 영역에 절대적으로 바쳐진 것이기 때문이다(레 19:18). 거룩한 영역이 불완전한 요소들을 소유한 세계와는 개념상 구별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역의 완전 무결성이 엄격히 유지되는 한 거룩한 영역도 그 불완전의 세계 내에서 적용할 수 있었다. "거룩함" holy의 완전 무결성 유지는 이스라엘 종교의 한 기능이었다. 거룩한 하나님은 규례와 율례라는 맥락 내에서 구속적 사랑을 가지고 인간에게 접근하였으며 이러한 규례와 율례들은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인 성결의 순수성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레위기적 제도가 성립되기 이전에도 이 원리가 인지되고 있었다(출 3:5을 보라). 제사 의식 역시 거기에 참여한 자들에게 거룩함을 부여했다. 이 점은 구속의 개념에 있어서 본질적 요소였다. 왜냐하면 정의를 내리건대 거룩함이란 죄악적이고 속된 모든 것으로부터의 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기(v/dq; , 6918) 때문에 인간을 거룩함에로 부르신다(레 19:2, 참조: 벧전 1:15). 그의 거룩한 속성 때문에 하나님은 필멸적(必滅的) 인생들의 연약하고 불완전한 요소들을 초월해 계시며 따라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출 15:11-12). 거룩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수 있다(시 15:1이하). 하나님은 본래 거룩하시며 도덕적 불완전으로부터 떠나 계시기 때문에 그의 약속에 그가 신실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시 33:21). 자기 백성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그리고 에덴의 저주에 비롯된 불완전성으로부터 피조물을 구속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궁극적으로 나타내겠다는 약속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본질적으로 내재해 있다(롬 8:18-23).(참조: T. E. MCCOMISKEY; BDB). ------ dy:(3027, 야드) 손 hand 야드(명여)는 기본어근이며, '손 hand'을 의미하며, 여러 가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600회 이상 나온다. 야드의 기본적인 의미는 '사람의 의지의 기능들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된 팔의 끝부분'이다. 이 용어는 문자적으로 좋든 나쁘든(창 4:11), 일반적인 일의 기능을 행하는 사람의 손에 대해 사용된다(창 5:29). 동해보복법("손에는 손")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받은 신체 부위에 해당하는 신체부위를 파괴하는 형벌이다(참조: Harris, R. L., Man-God's Eternal Creation, Moody, 1971, pp. 117-18). "손"이란 말이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사실은 신학적으로 의미심장하다. 이런 관용어들은 손의 용도가 넓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어떤 사람의 손 안으로(혹은 아래에)"라는 어구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책임, 돌봄 그리고 지배를 포함하는 권한을 나타낸다. 사람은 이런 권한의 보호하에 있을 수 있다. 아마르나 서신에 나오는 가나안인들의 어휘 바-디-우(ba-di-u)는 '그의 손안에' in his hand를 의미한다. 인간은 다른 창조물을 "그의 지배하에" 두게 되었다(창 9:2). 하갈에 대한 사라의 권한(창 16:6, 창 16:9), 보디발의 집에 대한 요셉의 권한(창 39:3-8), 이스라엘에 대한 모세와 아론의 권한(민 33:1), 그리고 아람에 대한 다윗의 권한(대상 18:3), 이 모든 것은 이 어구로 표현된다. 여호와는 우리의 생명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그의 돌보심, 주권, 그리고 심판에 맡겨둔다(시 31:5, 시 31:15, H6, 16, 삼하 24:14). 더구나 이 관용어는 어떤 사람이 '자기 손안으로 인도될 때 그에 대한 승리'를 묘사한다. 반대로, 구원은 '어떤 사람의 손 밖으로 인도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종종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원수들을 '이스라엘의 손 안으로 인도할' 것이며(창 49:8, 수 6:2) 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손 밖으로 인도하리라'고(출 3:8) 약속하였다. 도피성은 피의 보수자의 '손에서부터' 무고한 살해자의 '구출'을 제공해 주었다(민 35:15). 손은 '능력' power이나 '힘' strength을 상징한다(신 8:17). 신 32:36은 "그들의 손이 가버렸다"고 말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힘의 상실을 묘사하였다. 모세의 손은 애굽에 대항한 재앙에서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맹렬하게 사용되었다(출 10:12-15). 이 은유의 가장 두드러진 용법은 이 은유가 하나님의 능력을 전달한 것이다. 야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상징이다(대하 20:6, 시 89:21). 대상 29:12은 여호와의 손에 능력과 힘이 있다고 선언한다(참조: 시 89:13, H 14). 그의 손은 '짧지'(혹은 '약하지')(사 59:1) 않고 강하다. 하나님의 손은 천지 창조, 통치(사 48:13)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손은 구원과 해방을, 이스라엘의 적들에게는 파멸과 멸망을 나타낸다(출 7:4, 출 9:3, 삼상 7:13). 그의 능력에 대한 두드러진 증거는 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신 것이었다(출 13:3-16, 민 33:3). 모든 세상은 이 사건을 통해서 여호와의 능력을 목격했다(수 4:24). 하나님의 손은 진리와 정의를 행하시며(시 111:7), 의인들을 지지하고 인도한다(시 37:24, 시 139:10). 하나님의 손은 그의 의로운 형벌(삼하 5:6, 삼하 5:11), 그의 자애적 돌봄(스 7:6, 욥 5:18, 시 145:16, 사 49:16), 그의 보호(사 51:16)를 표현한다. 그는 언제나 우리를 위해서 손을 들어올린다(시 10:12). 그 당연한 결과로서의 개념은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한 것이다. '손이 미치다'나 '손이 있다'는 어떤 일을 하거나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낸다(레 14:21-32). 야드는 '소유'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소유'는 손의 일반적인 기능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에'라는 어구는 종종 이런 의미를 함축하곤 한다. 이스마엘 사람들은 요셉을 그들의 소유물로 취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창 39:1). 여호와께서는 자기가 다윗 왕국을 그의 아들의 손에서 취하시겠다고 선언하였다(왕상 11:12, 왕상 11:31-35). 야드는 '복종'이란 의미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복종은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수하에 두다'라는 문구로 표현된다. 대상 29:24에서 "...여러 아들이 솔로몬 왕에게 복종하니"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여러 아들이 그들 자신을 솔로몬 왕의 수하에 두니'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반역하지 말고 그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하였다. 야드는 기호와 상징 언어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손을 펴거나 들어 올리는 것은 서너 가지의 행위와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첫째, 기도, 겸손한 탄원을 나타낸다(시 28:2, 대하 6:12 이하). 둘째, 주기적으로 공식적인 축복을 수반했다(레 9:22). 셋째, 맹세할 때 손을 들어 올린다. 아브람이 전쟁 전리품을 취하지 않겠다고 맹세할 때, 그는 소돔 왕에게 자기 손을 들어 올렸다. 맹세를 나타내는 또 다른 방법은 아브람의 종이 아브람의 명령에 충실할 것을 맹세하면서 행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넓적다리 아래에 손을 넣는 것이었다(창 24:2, 창 24:9). 성경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서원은 하나님께서 신인동형론적으로 행하신 것들이다. 성경에서 이것을 수반하는 징표로서 가장 기억할만한 맹세는 아브람에게서 한 민족을 세워 이 민족, 즉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계를 축복하시겠다고 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영원한 언약적 약속이다(창 12:1-3, 참조: 출 6:8, 민 14:30). 하나님은 또한 자기 백성의 피를 보수하시겠다고 맹세했다(신 32:40). '손을 대는 것'은 4가지의 기본적인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 어구는 죽이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창 37:22, 창 37:27). 둘째, 이 단어는 축복의 의식적인 의례에서 사용되었다(참조: 창 48:17). 셋째, 특별한 직무나 일을 위임할 때는 대개 손을 대는 것이 수반되었다(참조: 모세가 여호수아를 취임 시킨 사건과 행 13:1-3). 넷째, 대속이라는 중요한 신학적 개념은 언제나 희생 짐승에 손을 대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염소에 손을 댐으로써, 민족의 죄를 염소("대속물")에게 전이 시켰다. 각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사용하여 자기들의 죄가 희생 짐승에게 전이되어 그 짐승들이 그 죄를 짊어졌다고 묘사하였다(출 29:10-19, 레 1:4). 마침내 이런 비유적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일에서 성취되었다(골 2:14). 손을 채운다는 것은 직분을 맡기는 것을 나타낸다(출 29:9-35, 출 16:32, 민 3:3). 성직 수임은 '손을 채우다'라는 관용어로 묘사되었다. 출 29:9에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찌니라"는 문자적으로 '아론의 손과 그 아들들의 손을 채우게 하라'이다. 일부 학자들은 손을 채운다는 말은 손이 가득 차 있어 다른 일을 할 여지가 없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은 이 어구가 주로 제사장들의 성직 수임 때에 사용되었으므로, 희생 제물의 몫을 취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손을 뻗친다'는 것은 두 가지 개념을 전하는데 하나는 어떤 대상을 "공격하는 것"을 나타낸다(수 8:19, 수 8:26). 다른 하나는 여호와에 대한 시편 기자의 열망을 묘사한다(시 143:6). 손으로 머리를 싸는 것은 슬픔을 나타낸다(렘 2:37). 손뼉을 치는 것은(그 감정에 따라) '불쾌, 격렬한 흥분'(민 24:10), '기쁨'(시 47:1, 겔 25:6), '악의에 찬 기쁨'(겔 6:11)을 나타낸다. 손을 얹는 것은 능력의 전달(왕하 13:16)이나 죄의 전가(레 1:4, 레 8:22 등)를 나타낸다. '어떤 사람이 손을 어떤 일에 두다'라는 어구는 그 사람이 관여하고 있는 "일"과 활동을 나타낸다(신 2:7, 신 30:9). '손을 강화하는 것'은 어떤 사람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다윗을 돕는 요나단, 삼상 23:16). 강퍅한 반역은 "높은 손"이란 어구로 묘사된다(민 15:30). 반대로, 이와 똑같은 표현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해내신 하나님의 강한 구출을 나타내었다(출 14:8). '손을 흔드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와 파괴를 상징했다(사 10:32, 사 19:16). 마찬가지로 모욕도 이런 상징으로 묘사되었다(습 2:15). 손을 씻는 행위는, 정결하게 하는 것과 관련된 계명들을 지키기 위해 행해졌을 뿐 아니라 결백의 확증 및 깨끗한 양심을 나타내기 위해 시행되었다(신 21:6, 시 26:6, 참조: 욥 17:9, 시 24:4, 마 27:24). 의식적 정화는 '손을 씻는 것'으로 묘사되었다(레 5:11), 이것은 그 사람을 의식적으로 의롭게 만들어준다(삼하 22:21). 손의 기호(출 13:9, 출 13:16, 신 6:8, 신 11:18)는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계명들을 끊임없이 기억하기 위한 하나의 생생하고도 영구적인 수단이었다. '손을 여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 주는 것이었다(신 15:8, 신 15:11). 반면에 '손을 닫는 것'은 주지 않는 것이었다(신 15:7). 하나님은 모든 생물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그의 손을 여신다(신 145:16). '자기 손을 늦추는'(자기 손을 움츠리는) 사람은 '포기하는' 사람이다(수 10:6), 게으론 자는 "자기 손을 그릇에 묻는다"(잠 19:24). 침묵은 손으로 입을 막는 것이다(잠 30:32). 흥미 있는 것은 '손'이 '법령' ordinance(스 3:10)이나, 아마도 언약을 세우기 위해 혹은 종교적 기념으로 사용된 '기념물' monument(참조: 하솔에 있는 의식적 석비)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삼상 15:12, 사 56:5). 율법이 삶의 중심임을 이스라엘인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율법은 상징적으로 그들의 손에 두어졌다(신 6:8). 법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제공하는 수단은 '~의 손으로' by the hand of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아마도 손을 결합한다는 것 때문에, 야드가 부어 만든 바다의 바퀴들의 '축' axles(왕상 7:32-33)과 성막이나 성전의 판지를 고정하기 위한 '지주' stays(장부 tenons)라는 의미로 사용되게 된 것 같다(출 26:17-19, 왕상 7:35-36). 옆에 늘어뜨린 손으로 말미암아 야드가 '측면' side, '해안' coast, 혹은 '경계' border라는 뜻으로 사용되게 된 것 같다(출 2:5, 민 2:17, 민 34:3). 손을 펼치는 것은 '공간' space을 의미했으며(창 34:21), '손'은 또한 '부분' part이나 '시간' time을 의미했다(창 43:34, 창 47:24). (참조: R. H. Alexander; BDB; DNT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