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2.0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132.YHWH구하고찾고두드림.왕적제사장의평강언약누림.야다에셰르바라크토브.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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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시132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주를앙모하는자354.


O Lord You're beautiful                    아름다운 주님

Your face is all I seek                     주 나의 모든 것

and When your eyes are on this child  앙망하는 내맘에 

Your Grace abounds to me               넘치는 은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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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구속자, 구속하시는 여호와====@구속[무름(속량)/자유]회복---속전(지속적으로 정결케 하는 보혈의 능력)--보수./보응/심판

la'G:(1350, 가알) 되 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행하다 [구속자 redeemer..근친/근족/혈연자 =고엘]

가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되사다, 도로 찾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redeem, 근친 역할(권리, 의무)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어근은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어근과 매우 유사한 어근 파다([d"P; , 6308): 구속하다 redeem) 사이의 한 가지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가알(la'G: , 1350)의 강조점이 구속자의 자격과 행함에 있는데, 반드시 근친이어야 하며, 근친의 특권이나 의무는 다름아닌 속량에 있다는 것이다.((JC가 바로 그러하시다..그는 태초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신 아들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이미 예고된 대로, 참사람으로서 성육신하셨고 인성을 가지셨기에 [죄로 인해 자기의 모든 것을 사탄에게 넘겨주고 파산한 자들인]우리의 피를 나눈 근친/근족으로서 모든 면에서  참된 자격과 능력을 갖추신 유일무이한 고엘이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가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자기의 친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함하는 4개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a)  첫째로, 가알은 오경의 법령에서 궁핍한 때에 판 밭을 되사는 것이나 가난할 때 자신을 판 이스라엘인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되사서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로 그대로 각 사람에게 배정/배분된 대로 모든 것을 돌려주고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지고지선의 진복 누림의 바탕을 제공하여 주는 구속의 일]로서 이런 매입과 무르는 일은 근친의 의무였다(레 25:25-54).

레 25:25에서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다. 

물론, 만약에 자신이 부유하게 되면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을 '무를' 것이다(레 25:26). 

한편, 가난한 자는 기업만이아니라 자기 자신을 동족 이스라엘인에게나(레 25:39)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타국인(레 25:47)에게 팔기도 하였다. 

그를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척 - 형제, 삼촌, 사촌들, 가족의 혈족 - 에게 있었다(레 25:25, 레 25:48, 레 25:49).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친척을 속량한 redeemed 자(혈연자)는 '근족 - 구속자'로 알려져 있었다. (참조: EDBW).

---가난한 자의 구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실례는 수혼법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가 가장 광범위하게 미치는 룻기에 있는 것 같다. 

신 25:5-10에 의하면, 남편의 형제는 후사 없는 과부를 취하여서 씨를 영속시키고, 남자 후손과 결부되어 있는 땅의 계승을 보증해야 했다. 

여기 [수혼법의 실행 의무]에서 그것을 실행하는 근친은 야밤이라고 불리어지며, 어근 가알은 사용되지 않는다.

....룻의 상황에서는 두 가지 것들, 즉 밭을 되사는 것과 수혼이 언급된다. 근친은 밭을 사는 것을 기꺼워했지만, 룻과 결혼하는 것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의 요지는 나오미가 가난하여 밭을 팔 수 밖에 없었을 때, 근친은 그녀를 위해 그 밭을 되사야 했다는 데 있다. 그는 후사 없는 형제의 과부를 위해서 이 일을 기꺼이 하려 했지만,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 근본을 모르는] 룻과 결혼하여 그들의 기업을 지속시킬 자손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거부하였으며 여기에 보아스가 개입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것, 즉 친족과 수혼은 구별되어야 한다. 고엘(구속자)이란 단어는 후자의 제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레게트(Leggett)는 룻기에 구속적이고 메시야적인 유형론의 주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고엘(goel)로서의 보아스의 행동들에서 우리는 보아스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예시되어 있음을 보았다. 보아스가 구속의 권리를 소유하였으면서도 분명히 룻을 위하여 개입할 의무(까지)는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보라...룻은 나오미의 견해를 따라서 겸손하게 자신을 신부로 취하여 후사를 낳도록 해 달라는 뜻으로 보아스의 이불을 들추고 눕는다!!...겸손과 순종의 극치이다!!))

....보아스가 이 가난한 과부들의 곤경을 보았을 때 그의 생애가 여호와와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러 왔던 것과 같이 메시야의 경우도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법에 의해 지배되고 또한 그가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었다(시 72:2, 시 72:4, 시 72:12, 시 72:13, 사 11:4).

(b)  둘째로, 가알은 재산이나 여호와께 바쳐진 희생제물 아닌 짐승들을 무르는 것, 혹은 부정한 짐승들의 첫 소산을 무르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레 27:11-33). 

이 [속전!!]사상은 인간이 교환물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전은 부정직한 교환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추가 몫이 제공되었다. 이런 경우에 무르는 자는 친족이 아니라 재산의 주인이었다.

(c)  셋째로, 가알은 살해당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의 보수자"(RSV '보복자' revenger)가 되는 가장 가까운 친족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며, 칼 분사 고엘로 나타난다. 

고엘은 구속자이며, 이 구속자는 '피의 보수자'로 불리우는데, 그의 임무는 자신의 친척을 살해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다(신 19:6). 

이 사상은 가까운 친족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돈을 지불함으로서 집을 재매입하거나 노예를 속량할 수 있는 것처럼, 친족의 잃어버린 생명은 마땅히 살인자의 그에 상응하는 생명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친족은 피의 보수자이다. 이런 사형 제도는 피비린내 나는 숙원과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엘은 죄없는 사형 집행인이었으며 따라서 살해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보수자'라는 의미로 12회 나온다(민 35:12, 민 35:19, 민 35:21, 민 35:24, 민 35:25, 민 35:27, 신 19:6, 신 19:12, 수 20:3, 수 20:5, 수 20:9).(참조: R. L. Harris).

(d)  넷째로, 가알은 하나님께서 '구속자'로서 '구속하시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출 6:6에서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라고 약속하신다(출 6:6, 참조: 시 77:15).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출 15:13).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시 78:35).

....이사야서에는 '구속자'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지칭하여 13회 나오는데 모두 사 41- 63장에서 사용되었다. 가알은 하나님에 대해 9회 사용되었으며, 사 43:1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가알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사 51:10, 사 63:9)과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의 구원(사 48:20, 사 52:3, 사 52:9, 사 62:12)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41:14)이며 '너희의 왕 이스라엘의 창조주'(사 43:14, 사 43:15)이며 '만군의 여호와'(사 44:6)이며 '야곱의 전능자'(사 49:26)이다. 그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는 '구속 받은 자'이다(사 35:9).

....시편에는 종종 영적인 구원이 육적인 구원과 병행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시 69:18.,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시 103:2, 시 1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윤택을 잊지 말찌어다...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이 그러하다(참조: EDBW).

[욥19:25,26,27]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25. "And as for me,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And at the last He will take His stand on the earth.   *26. "Even after my skin is destroyed, Yet from my flesh I shall see God;   *27.Whom I myself shall behold, And whom my eyes shall see and not another.  

....유명한 구절, 욥 19:25에서 고엘이란 단어는 흠정역성경에서 '구속자' redeemer로 번역되며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속죄의 사역을 하러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히브리어 "파다"에 의해 더욱 특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제 욥 19:25에 나오는 이 단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욥을 죽음의 먼지에서 구속할 친구이자 친족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더욱 정확하게 관련된다. 욥 19:26의 난해한 어구, "이 가죽을 벗은 후에"는 다른 모음들과 함께 "내가 깨어난 후에"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NIV 각주와 욥 14:12-14을 참조하라. 욥 14:12-14에서 부활에 관한 욥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를 돌아보시며 욥은 나무처럼 제 2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그의 소망에 의해 절정에 달하게 된다 - 욥 14:14의 할리파는 욥 14:7의 할랍에 대한 응답이다). 어쨌든 욥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기의 고엘이신 하나님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참조: R. L. Harris). 


..[[사59:20,21]]..*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9:24]] *2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미가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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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괴수 죄성 지닌 자, 세상살이는 메섹과 게달의 장막에 사는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 탈취와 노략의 쟁투, 곧 환난의 날이라, 오직 구주JC께 부르짖어 그분안에 충만히 거하라.

[시120]   *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3.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4.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5.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이제, 마음 열어, 중심으로 동행하시는 영원반석/성채/산성-보혜사-인도하시며 지키시는 목자, 엘에제르 HS와 동행하라

[시121]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보라, 그리스도를 살라, 사람들로 하여금 평강과 형통 허락하시는 네안의 여호와를 감사하며 흠모하고 기리게 하라, 자원하여 나아와 공예배에 함께 참석하기를 원하도록 만들라.

[시122편]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네눈을 [세인의 조소와 멸시로부터]구주 JC께 돌려 중심으로 산 믿음 발휘함으로 앙망하라, 긍휼 구하라, 정복자 그 이상의 존재, , 허락하신 영생안에서 모든 이김을 감사하라

[시123편]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엘에제르, 임마누엘 여호와께 감사하라...[세인의 약탈-침노와 멸절로부터] 말씀의 뜻대로 행하시도다.

[시124]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지고지선의 진복은 오직 구주로 사는 (선을 행하며 정직하게 동행하는) 기독자들은 여호와의 선대하심/평강형통 깨닫고 감사하라..

[시125편]   *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4.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오순절-해방/회복]구속 은혜 기쁨안에서: 섭리의 때, 해방 감격 = 전존재로 누리는 영적 기쁨과 감사, 실제적 형통 [모든 이들이 주께 돌이킴] 회복/부흥 추구 실행의 긍휼 간구

[시126편]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솔로몬에게 깨닫게 하신 말씀--친히 집과 가정을 세우며 지키시는 전능-은혜 구주를 높이며 친밀한 하나됨 이루어 따르라, 자랑-기쁨의 가정과 기업된 자녀들이여

[시127편]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 경외함 : 야다-에셰르-바라크, 구주영접/영생부활생명의 은혜, 믿음소망사랑오래참음기쁨평강-감사/형통/번성/번영/창대함--

[시128편]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세상 악인들이 주님의 기독자, 영적이스라엘을 미워하며 괴롭히나 결코 이기지 못하리라..JC안에서 소명과 사명 이루라---

[시129편]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2.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3.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4.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5.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6.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7.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   *8.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부르짖음과 간구로 기도하며 주님을 앙망하노라---

[시130편]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그러므로 주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바, 내마음은 임마누엘 여호와안에서 고요히 쉬며 앙망하노라----

[시131편]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Q말씀을 바라는 이는 겸손-추구-치열함으로 서원한 바 이룬 다윗과 같을지니, 제사장마다 구원과 의를 옷입고, 성도마다 승리하신 JC의 풍성한 기쁨으로 외치리라 ----


1.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아나..근심/겸비/근신하다.고통겪다..(심령의 가난함/죄를 애통함/온유함)피조물-죄인의 자각따라 몸과 마음의 일탈을 경계하며 삼감) 기억하소서(자카르..기억/상기하다)

2.  그가 여호와께 맹세하며(샤바...맹세/내적 자아에게 엄명하다) 야곱의 전능자에게(아비르...전능자/강한자) 서원하기를(나달...맹세/서원하다)

3.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4.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5.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미쉬칸...장막/성막/거처) 발견하기까지(마차...찾아 얻다/이르러 이루다) 하리라 하였나이다

6.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베들레헴)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나무의 도성, 기럇여아림)에서 찾았도다

7.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보)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샤하..몸을 구부려 절하다)  예배하리로다

8.  여호와여 일어나사(쿰) 주의 권능의(오즈)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메누하..안식처) 들어가소서

9.  주의 제사장들은(코헨) 의를(체데크) 옷 입고(라바쉬) 주의 성도들은(하시드..경건/충실/친밀+충절스러운) 즐거이 외칠지어다(라난...기뻐 외치다)

10.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마쉬아흐) 자의 얼굴을 외면하지(슈브) 마옵소서

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에메트) 맹세하셨으니 변하지(슈브)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킷세..보좌) 둘지라

12. 네 자손이 내 언약과(베리트) 그들에게 교훈하는(라마드) 내 증거를(에다) 지킬진대(샤마르) 그들의 후손도 영원히(아드..영세토록) 네 왕위에 앉으리라(야샤브)하셨도다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바하르..선택하다) 자기 거처를(모샤브,,거주지)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메누하..안식처)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야샤브)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5.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차이드..양식/음식) 풍족히 복을 주고(바라크) 떡으로(레헴..음식/빵) 그 빈민을(에브욘..궁핍/가난한 자) 만족하게(샤바..만족/포식히다)하리로다

16.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코헨) 구원을(예샤) 옷 입히리니(라바쉬..옷입다) 그 성도들은(하시드) 즐거이(하난) 외치리로다(란렌)

17.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케렌..광채/뿔/언덕) 나게(차마흐..싹터 나오다, 솟아나다)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마쉬아흐) 위하여 등을(니르..등불)준비하였도다(아라크...정돈/배열/배치하다.값을 정하다)

18.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오예브) 수치를(보셰트)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네제르..봉헌/헌신/성별의 왕관/면류관) 빛나게(추츠..꽃처럼 만개하여 빛나서 번쩍이다) 하리라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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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32장

1.  {A Song of Ascents.} Remember, O LORD, on David's behalf, All his affliction;

2.  How he swore to the LORD, And vowed to the Mighty One of Jacob,

3.  "Surely I will not enter my house, Nor lie on my bed;

4.  I will not give sleep to my eyes, Or slumber to my eyelids;

5.  Until I find a place for the LORD, A dwelling place for the Mighty One of Jacob. "

6.  Behold, we heard of it in Ephrathah; We found it in the field of Jaar.

7.  Let us go into His dwelling place; Let us worship at His footstool.

8.  Arise, O LORD, to Thy resting place; Thou and the ark of Thy strength.

9.  Let Thy priests be clothed with righteousness; And let Thy godly ones sing for joy.

10.  For the sake of David Thy servant, Do not turn away the face of Thine anointed.

11.  The LORD has sworn to David, A truth from which He will not turn back; "Of the fruit of your body I will set upon your throne.

12.  "If your sons will keep My covenant, And My testimony which I will teach them, Their sons also shall sit upon your throne forever."

13.  For the LORD has chosen Zion; He has desired it for His habitation.

14.  "This is My resting place forever; Here I will dwell, for I have desired it.

15.  "I will abundantly bless her provision; I will satisfy her needy with bread.

16.  "Her priests also I will clothe with salvation; And her godly ones will sing aloud for joy.

17.  "There I will cause the horn of David to spring forth; I have prepared a lamp for Mine anointed.

18.  "His enemies I will clothe with shame; But upon himself his crown shall shine."

==시132개요==

이 시편은 아마도 솔로몬이 쓴 것 같고,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준 의무에 따라 지은 성전에 헌송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대상 28:2 등). 

그는 그의 책임을 완수한 후에 그가 이룬 것을 하나님께서 소유하실 것을 간구한다.

1. 그는 이 집을 하나님의 영광과 예배를 위해 지었다. 

그리고 하나님 임재의 표징인 법궤를 성전에 들여놓았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오셔서 소유하실 것을 갈망한다(8-10). 

솔로몬은 그러한 말로 그의 기도를 마친다(대하 6:41-42).

2. 그는 부친으로부터 전수 받은 명령에 따라 성전을 지었고, 따라서 이러한 간구를 강력히 주장하는 그의 기도는 다윗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그는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경건을 말한다(1-10).

   (2) 그는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말한다(11-18).

....앞의 부분은 그의 청원을 시작하게 해주고, 뒤의 부분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복음적 교회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의 자비가 충만하게 나타난 우리의 왕 다윗과 같은 그리스도에게 신뢰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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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솔로몬의 기도(시 132:1-10)

우리는 이 대목에서 솔로몬과 그의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솔로몬의 기도를 본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성전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말을 본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해 보자.

Ⅰ. 그가 간구한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를 간구했다.

1. 그가 행함은 그의 부친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겠다고 한 경건한 맹세를 따라서 한 것이었다. 

솔로몬은 현명한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공로를 말하지 아니한다. 

“나는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주께서 이루셨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언약을 맺으신 다윗을 기억하소서(모세도 그와 같이 기도했다. 출 32:13, 언약의 처음 수탁자인 아브라함을 기억하소서). 그의 모든 근심한 것을 기억하소서. 그의 인생의 모든 문제와 그가 처한 모든 경우를 기억하소서. 혹은 법궤에 대한 그의 염려와 관심을 기억하시며, 휘장 가운데 있는 법궤가 그에게 얼마나 근심의 것이었나를 기억하소서(삼하 7:2). 그의 모든 겸손과 온유를 기억하소서(어떤 이들은 그렇게 해석한다). 계속되는 맹세에 대한 경건하고 열심 있는 모든 애정을 기억하소서.”

우리가 고백 중에 하나님께 우리 조상을 기억나게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근심과 예배와 고난을 밝히며, 그들과 맺었던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나게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 가졌던 경험, 그들이 지녔던 근심과 하나님께 올렸던 많은 기도와 그 이후에 뒤따라야 할 것들을 기억나게 함은 잘못이 아님을 주목하자. 

우리는 그것을 다윗의 후손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고난에 적용할 수 있다. 

“여호와여, 그와 맺은 언약과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배상을 기억하소서. 그의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20:3), 그의 고난을 기억하소서.” 

그는 특히 다윗이 나라를 세우자마자 결심한 장엄한 맹세를 말하며, 다윗이 그의 집을 정착시키기 전에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겠다고 한 것을 말하고 있다.

(1) 누구에게 맹세했는가? 

“여호와께,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했다. 

맹세는 증인이시요, 당사자이신 하나님께 대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호와는 야곱의 전능자이시며, 야곱의 하나님, 야곱의 보호와 구원에 참여한 전능자이시다. 야곱은 약하지만 야곱의 하나님은 전능한 분이시다.

(2) 그가 무엇을 맹세했는가? 

“여호와의 처소를 발견하기를”, 즉 그의 현존의 표징인 법궤의 처소를 발견하기를 맹세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기 위하여 택하실 처소”에 대한 빈번한 언급을 율법에서 관찰했다. 거기에서 모든 지파가 쉴 것이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러한 거처가 없었다. 실로는 황폐하게 되었고, 다른 장소도 결정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축제는 알맞은 정도로 장엄하게 지켜지지 못했다. 

다윗은 말하기를 그런데, 나는 모든 지파의 일반적인 집결지를 발견할 것이며,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위한 장소, 즉 법궤를 위한 처소를 발견할 것이다. 거기에는 참여하기를 원하는 제사장과 백성들을 위한 처소가 있게 될 것이다.

(3) 그가 거기에 얼마나 열중했는가? 

그는 이 문제가 머리에 어느 정도 떠오를 때까지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고, 침상에 들지 않으려 했다(3-4절). 

그 일은 오랫동안 거론되어 왔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다윗이 어느 날 아침 국가의 일을 보기 위해 나갔을 때 밤이 되기 전에 이 일을 결정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그의 통치 초기에 법궤의 안치를 위해 어디에다 장막을 둘 것인지, 또 솔로몬이 어디에 성전을 지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자 했다. 

그것은 백성의 많은 수가 역병으로 징벌 받은 직후인 그의 통치 말기까지 정해지지 못했다(대상 22:1, “다윗이 가로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그리고 아마도 그가 이러한 맹세를 함은 그러한 심판 때였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 일에 대한 그의 지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필요한 일이 하나님을 위해 수행될 때 우리가 스스로 하며, 시간에 맞추는 것이 유익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기해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낮을 위해 일을 아침에 준비하는 것은 좋다. 그리고 우리가 자기 전에 오직 섭리에 복종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책임있게 이행해야 한다. 

“우리가 낮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위대한 일에서도 이와 같이 염려하고 열심히 갈망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더 좋은 소망의 근거를 쌓을 때까지 이생의 위로를 즐기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할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

2. 그가 행함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에 따라서 한 것이었다(6-7절).

(1) 그들은 법궤에 대해 듣고 싶어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법궤가 잊혀짐을 슬퍼했기 때문이다(삼상 7:2). 

그들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다”(즉, 에브라임 지파에 속해 있는 실로에). 

그들은 거기에 법궤가 있었다고 들었지만, 그것은 거기에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그것을 “나무 밭에서 찾았다.” 즉, “나무의 도시”를 뜻하는 기럇여아림에서 찾았다. 

거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 통치 시대 초기에 장엄하게 그것을 가져왔다(대상 13:6). 그리하여 법궤를 위한 성전을 지음으로써 솔로몬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법궤를 찾아나설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2) 그들은 거기에 참여하기를 결심했다. 

아늑한 장소로 가서,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우리의 경의를 표하자. 백성으로서, 기도하는 자로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 

우리는 “사울 때에는”(대상 13:3) 그런 장소가 없어서 소홀히 했다.

Ⅱ. 그가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가?(8-10절)

1.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소유하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그의 거처를 정하시기를 허락해 주실 것을 간구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그리고 “주의 권능의 궤”, 즉 주의 임재의 표지며, 주의 권능의 임재도 함께 거기에 있게 하소서.

2. 하나님께서 의무를 행하는 성소의 성직자들에게 은총을 주실 것을 간구한다.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게 하소서.” 

그들이 집행과 대화에서 의롭게 나타나게 하시며, 규범에 따르게 하소서. 

의는 성직자의 가장 좋은 예복이다. 하나님을 향한 거룩과 모든 인간을 향한 자비는 논쟁할 여지없는 성직자의 필수적 습성이다. 

그들은 “주의 제사장”이므로 “의를 입지 않는다면” 주님께 대한 그들의 관계는 불신될 것이다.

3.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 가운데서 행하는 거룩한 예식의 집행에서 위로를 얻게 되기를 간구한다.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그들은 법궤가 다윗의 도성에 들어왔을 때 그렇게 기뻐했다(삼하 6:15). 그들은 제사장들이 의로 옷을 입을 때에 그렇게 기뻐할 것이다. 

신실한 목회는 성도들의 기쁨이다. 목회는 기쁨의 사역이다. 목회는 기쁨을 도우며, 조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의 기쁨을 돕는 자”이다(고후 1:24).

4. 성전을 봉헌할 때에 솔로몬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를 위해 간구한다. 

“주의 기름 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 즉, 내가 주께 간구한 것을 거절하지 마옵시며, 나를 부끄럽게 내쫓지 마옵소서.”

(1) 그는 여호와의 기름 받은 자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크게 기름 받은 자, 그의 중재로 그의 직능의 역할을 담당한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기름 받은 자다. 그러므로 성부께서는 항상 그의 말을 듣는다.

(2) 그는 다윗의 후손이었다고 말한다. 

“그를 위해서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그리스도를 위해서(우리의 다윗) 나를 받아주시며, 주께서 그를 기뻐하시는 대로 나를 용납하소서.” 

그는 “사랑 받는 자”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이름을 가진 다윗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 받는 자로 용납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붙드는”(사 42:1) 하나님의 종이다. 우리는 간구할 공로가 없다. 다만 충만한 공로를 가진 그를 위해 은총을 찾을 뿐이다. 

우리는 교회의 번영을 위해 기도할 때, 교회를 자신의 피로 사신 그리스도를 위해 담대하게 기도해도 좋을 것이다. “성직자와 백성들은 각기 자기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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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시온 선택과 약속(시 132:11-18)

이것들은 “맹세로 확정된” 약속들이다. 그 상속자들로 하여금 “큰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다(히 6:17-18). 

우리가 기도에서 외치든 간구로써 취하든, 또는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써 취하게 되든지간에 모두 같은 것이다. 

믿는 자들은 두 가지 방법, 즉 하나님께 대해 말하는 것과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실 것인가를 들음으로써 약속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러한 약속들은 교회와 나라의 설립에 관한 것이며, 다윗의 집의 보좌와 시온 산에 정해진 이스라엘의 증거에 관한 것이다. 

시온 산에 관한 약속들은 다윗의 후손에 관한 약속들이 그리스도에 관련되듯이 복음적인 교회에 적용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우리들에 의해 탄원되어야 하며,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Ⅰ. 다윗의 집과 시온 산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이 나타나 있다. 양자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1. 하나님은 다윗의 가족을 왕의 가족으로 선택하셨고, 맹세에 의해 그의 선택을 확정하셨다(11-12절). 

그리스도의 모형인 다윗은 맹세로 왕이 되었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지라.” 그리고 후회하시지 아니하실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집을 발견하겠다고 여호와께 맹세하지 않았는가?(2절) 

여호와는 다윗을 위해 집을 짓겠다고 맹세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사랑하심과 보장하심에서 물러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다윗에게 준 약속들은 다음과 같은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그의 후손들에게 지속될 왕의 오랜 계승에 대해.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그것은 솔로몬에게서 성취되었다. 다윗은 그것을 커다란 만족으로 보기까지 살았다(왕상 1:48). 왕관도 역시 영원까지 그의 후예들에게 조건부로 주어졌다. 

오고 오는 세대에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 

하나님은 그들을 교훈하는 데에 스스로 참여하셨고, 그의 책임을 담당하셨다. 

그들은 모세와 예언자들을 가졌고, 그가 기대하는 모든 것이 바로 교훈함을 지키며, 보존한다. 그러면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을 것이다.” 

왕들은 하나님 앞에 그들의 선한 행실을 두며, 그에게서 받은 임무를 “선한 행실을 하는 중”(quamdiu se bene gesserint)에 이룬다. 

이러한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생겼다. 그리하여 결국 상속이 단절되고, 점차적으로 “홀이 유다에서 떠나게 되었다.”

(2) 영원한 계승에 대해서. 

그의 몸에서 나온 왕은 “나라와 평강을 풍성하게 하여 끝이 없이 계속될 것이다.” 

성 베드로는 이것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한다. 아니, 베드로는 다윗이 스스로 그렇게 이해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았다”(행 2:30).

 “하나님은 육을 따라 그리스도를 그 위에 앉게 하기 위해 들어올리셨다.” 

그리고 때가 차서 그는 그렇게 하셨고,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셨다”(눅 1:32). 그는 약속의 조건을 성취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과 그의 증거를 지키셨으며, 그의 아버지의 뜻을 행했고, 모든 일에 그를 기쁘시게 했다. 

그러므로 그에게서와 그의 영적인 후손들에게 약속은 선을 이루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자녀 곧 모든 신앙인들과 그는 “영원히 보좌에 앉게 될 것이다”(계 3:21).

2. 하나님은 시온 산을 거룩한 산으로 선택하셨고, 그가 거기에서 취한 기쁨으로 그의 선택을 정하셨다(13-14절). 

그는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셨다”(78:68). 그는 시온 산을 법궤의 거처로 택하시고, 그것에 대해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곳은 실로와 같이 잠깐 동안의 나의 거처가 아니라고 말했고, 시온은 다윗의 도성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시온을 거룩한 도성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왕도로 정했다.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 거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다윗도 “내가 여기 거하리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다윗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그의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시온은 여기에서 “시온 산”(히 12:22)이라고 불린 복음적인 교회의 모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온에 관해서 말해진 것이 거기에서 완전한 성취를 나타낸다. 

시온은 쟁기로 밭을 간 것처럼 된 지 오래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딤전 3:15)이다. 그리고 그곳은 그의 “영원히 쉴 곳”이다. 

세상 끝날까지라도 항상 그의 임재와 함께 축복이 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서 취하시는 기쁨과 그의 교회에 현존하시는 지속성이 교회의 모든 회원들의 위로와 즐거움이 된다.

Ⅱ.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과 시온 산에 풍부하게 축복하신 선택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그가 축복하기를 원하심을 선택하신다.

1. 하나님은 시온 산을 선택하시고, 다음과 같이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1) 현재의 생을 축복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왜냐하면 경건이 그 약속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15절). 

땅이 그 풍성함을 줄 것이다. 신앙이 서 있는 곳에 식료품이 있을 것이며, 축복하시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다(67:6). 그는 확실히 그리고 풍부하게 축복하실 것이다. 

적은 식량이라도, 풍족한 축복이 거기에 더해지면, 축복 없는 많은 양식보다 더 안락할 뿐만 아니라 더 유익하다. 그러한 축복은 그들에게 특수한 기쁨을 준다. 

아니, 그 약속은 더 나아간다: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시온은 부양할 빈민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까지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① 그의 섭리에 의해서 그들은 궁핍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풍족한 양식을 얻게 될 것이다. 기근이 생긴다면 그들이 제일 먼저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이 풍족하게 된다면 그것은 풍족한 표지가 된다. 

시온의 빈민은 궁핍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시온의 자녀들에게 저의 능력에 따라 가난한 자들을 자비로 대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들이 “빠지지 않도록”(행 6:1)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② 그의 은총에 의해서 그들은 탄식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비록 마른 빵을 얻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만족케 될 것이다. 모든 다른 사람들 중 시온의 빈민들은 이 세상의 적은 것으로 만족하게 될 이유를 갖고 있다. 

그들은 그들을 위해 예비된 더 좋은 것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말씀과 예식에서 영혼을 위해 만들어진 양식이라고 영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은 새로운 사람의 식료품을 위해 풍부하게 축복하시며,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생명의 떡으로 만족케 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별해 주심으로 만족하게 될 것이다.

(2) 장차 올 생활의 축복으로 경건에 속한 것들을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16절). 그것은 기도에 대한 응답이다(9절).

① 제사장들이 “의를 입게” 될 것을 갈망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실” 것을 약속했다. 

그들을 구원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세우시고, 그의 백성의 구원을 위해 그들과 그들의 의식 집행을 도구로 삼으셨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하고, 그들의 말을 듣는 자들을 구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받을 교회에 보탤 것이다.” 

하나님은 의를 입은 자들을 구원으로 입히실 것이다. 우리는 의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실 것이다.

② 성도들이 “즐거움으로 외치게 될 것”이 갈망되었다. 

그들이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 하고 약속되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간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신다. 그리고 그가 구원을 주실 때, 그는 풍부한 즐거움을 주실 것이다.

2. 하나님은 다윗의 가족을 선택하시고, 합당한 축복으로 복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1) 융성하는 권세. 

“내가 거기서”, 즉 시온에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17절). 왕의 위엄은 점점 더 증강하며, 영광이 끊임없이 따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종 다윗의 집에서” 세우시고, 싹이 나게 한 “구원의 뿔”(풍부하고 능력 있는 구원을 의미)이다. 

다윗은 그의 권세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며, 악한 자의 뿔을 제거하고 의로운 자의 뿔을 올리기 위해(75:10) 사용할 것을 맹세했다. 

하나님은 그 보상으로 그의 뿔이 나게 할 것을 약속하신다. 권세를 갖고 선용하는 자들에게 더욱 많은 권세가 주어질 것이다.

(2) 지속되는 명예. 

“내가 내 기름부은 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하였도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실 것이다”(18:28).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저 등은 아마도 밝게 타오를 것이다. 

등불은 하나의 계승되는 물건이다. 하나의 등이 거의 꺼질 때 다른 등이 그 등에 의해 켜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상속이다. 이것에 의해 다윗은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의 결핍을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등불이요, 빛이시다.

(3) 완전한 승리. 

“내가” 그에게 대항하려고 계략을 짜놓은 “저의 원수에게는 수치로 입히리라.” 

그때에 그들은 그들의 계획이 좌절됨을 볼 것이다. 

모든 선한 통치자들의 적은 수치로 옷 입게 될 것이 기대되며, 특히 주 예수와 그 나라의 적들은 장차 올 심판 날에 “영원한 수치와 경멸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4) 우주적인 번영.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 즉, 그의 나라는 점점 더 그의 영광을 더해 갈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완전한 성취를 이루게 된다. 그의 영광과 권세의 면류관은 시들지 아니하며, 그 꽃들도 마르지 않을 것이다. 

땅의 방백들의 면류관은 “대대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잠 27:24). 그러나 그리스도의 면류관은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신실한 백성들을 위해 예비된 면류관도 그리스도의 면류관처럼 “시들지 않고” 영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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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vim;(4899, 마쉬아흐) 기름부음 받은 (자)
마쉬아흐(명남)는 마샤흐(jv'm; , 4886: 기름 붓다)에서 유래했으며, '기름부음을 받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명사와 형용사로 사용된다.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40회 나오며, 주로 사무엘상, 사무엘하와 시편에서 발견된다.
마쉬아흐는 대제사장과 같은 그러한 직위를 지칭하기도 하지만(레 4:3), 이 단어가 시에서 왕과 병행되어 나오는 경우에는(삼상 2:10, 삼하 22:51, 참조: 시 2:2, 시 18:50, H51, 시 28:8에는 "백성들"이 대응 단어로 나타남) "왕"(멜레크, q. v.)에 대한 동의어로 거의 독자적으로 사용된다. 
획기적인 것은 왕을 언급하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마쉬아흐 야훼)과 같은 구절들 혹은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와 같은 상당어구이다. 
확실히 명예로운 호칭인 이러한 표현은 또한 하나님과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한다.
많이 거론되고 있는 문제는 고레스, 즉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의 비이스라엘 사람에 관한 언급이다. 
만약 마쉬아흐가 이상적인 왕, 즉 경건하고 의로운 왕으로 간주된다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명칭은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고레스가 므로닥과 그 밖의 이방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레스는 명백한 임무 수행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자이다. 
이사야서의 구절은 마쉬아흐가 어떤 임무를 위하여 선발된 자 혹은 "선택된"(바하르) 자, 특별히 구원하는 자, 즉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지에서 구원하여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자로 인식된다고 시사한다.
왕에 관하여, 그 임무가 은혜의 맥락에서 의로운 통치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은 압제로부터의 구원을 내포한다. 
첫번째 왕인 사울은 중요한 첫 대전에서 마쉬아흐의 자질을 갖춘 자로 예증되었다(삼상 11장).
사울은 성령의 감동을 입어 적군 아말렉을 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자신들의 소행으로 인해 죽어야 할 처지에 있었던 자들의 생명을 살려주었다(삼상 11장). 
사울의 죄와 하나님 앞에서의 일반적인 자세로 인하여 마쉬아흐의 원형이 된 자는 다윗이었다.
시편 문학은 특별히 마쉬아흐를 하나님의 대행자 혹은 대리 집행자(시 2:2에서와 같이)로 간주한다. 
많이 논란이 되고 있는 구절인 시 2:2에서 그 의미의 일차적 차원은 직접적인 이스라엘 왕이라는 의미인데, 하나님과 연합하기 때문에 적의 공격이 아무런 효과 없는 마쉬아흐로서의 왕이다. 심지어 땅의 끝까지 마쉬아흐의 소유가 된다는 약속은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왕에 대한 대망에 일치하는 것이다(시 72:8 이하, 시 18:44-48).
그러나 신약성경으로부터 우리는 시 2편에서 마쉬아흐의 의미가 보좌에 앉을 왕에 한정될 수 없으며 유일한 대리 집행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행 13:32 이하, 참조: 히 1:5, 히 5:5). 시 2편을 포함하여 소위 왕의 시편은 비록 어떤 경우가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의 군주에 대한 언급이라 할지라도 메시야의 시편으로 합당하게 간주될 수 있다. 
시편의 언급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통치와 구원하는 기능 그리고 우주적인 지배를 강조한다.
이러한 이중적 언급과 예표적인 성취에 대한 견해는 의심할 여지 없이 구약성경의 몇몇 구절에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이나 당시의 어떤 상황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것이 틀림없는 시편과 예언서의 구절들이 있다는 것이 널리 주장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고 엄밀한 번역에 의한 왕의 시 45:6, H7은 왕을 신으로 언급하며, 시 110:1-5, H2-6은 다윗이 아들을 다윗의 주로 언급하는데, 이 왕을 이스라엘에서 허락하지 않았던 것인 제사장이라고 언급한다
(참으로 삼하 8:18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다윗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부르는 것 같으나[한글개역: "대신"], 아마도 본문상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히브리 성경은 엄격하게 브나야와 그렛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부르고 있다. 실제로 이 절의 70인역본과 병행 구절인 대상 18:17의 히브리 성경 그리고 70인역본은 "제사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 2편에서 직접적으로 메시야를 언급하는 증거가 있다. 
시 2:12을 정상적으로 해석하면 사람들이 진실로 다윗이 아니라 이 기름부음을 받은 아들을 믿기를 권고 받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도래할 다윗의 후손이 구약성경에서 거의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래의 설명을 참조하라. 많은 다른 명칭들이 사용되었다(가지, 순, 다윗의 아들 등). 심지어 사해 두루마리에서도 "메시야"라는 단어의 용법은 불명료하다. 
아론의 메시야와 이스라엘의 메시야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두 가지 표상인 왕과 제사장이며 메시야에 관한 언급이 아니다. 
그러나 또한 사해 두루마리의 증언(Testimonia)과 시가집(Florilegium)에서 그들의 지도자, "의의 교사"와 동일시 되지 않으며 또한 메시야로 불리우지도 않고(시 2:2을 인용한 1회의 경우는 예외임) 다윗의 후손 등으로 불리우는 위대한 인물의 도래에 관한 소망이 표현된다(T. H. Gaster, The Dead Sea Scriptures rev. ed., Doubleday, 1964, pp. 297, 329, 334-39). 도래하는 위대한 다윗의 아들에 대한 칭호로서 메시야(그리스도)라는 용어의 광범위한 사용은 주로 신약성경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마쉬아흐가 단 9:26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또한 단 9:25에서의 마쉬아흐를 같은 방법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에 대한 묘사는 방백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이 마쉬아흐의 용어를 채택하여 오실 구세주, 즉 그리스도를 지칭한다는 것이 강조되어야 한다.
또한 구약성경에서 마쉬아흐가 종종 말에 나타날 인물, 즉 메시야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반복되는 주장은 단 9:26의 해석에 대한 그 단어 확실성에 달려 있다. 
어떤 사람들은 "끊어져 없어질" 기름부음을 받은 자(마쉬아흐)가 오니아스 3세(Onias Ⅲ B.C. 175에 대제사장으로 임명됨)였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문맥(24절)상의 근거로 마쉬아흐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간주하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참조: V. P. HAMIL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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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성경이 죽이는 글자가 아니라, 살리는 영이 될 수 있는가? 
첫째는 사랑으로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말해줌으로 가능하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밥을 먹듯이 가감 없이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 우리의 머리나 귀가 아니라, 배에 넣고 창자에 채워야 한다. 
 셋째 대언의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끈힘없이 말해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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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9:10에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The testimony of Jesus is the spirit of prophecy)”고 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했으니, 대언의 영이란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내가 예수님을 대신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대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어로는 ‘Prophecy’ 곧 예언을 뜻한다. 
개역개정판 성경도 ‘예언’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개역한글판에는 ‘대언’이라고 번역했다
....흔히 ‘예언’하면 장래에 대해 예측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4장 3절에서 사도 바울은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라고 했다. 즉 예언이란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안위하는 말을 가리킨다. ‘덕을 세우고’는 세워주고 강하게 해주는 것, ‘권면’은 격려하고 북돋아주는 것을 뜻하고, ‘안위’는 위로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예언의 영’, 곧 ‘대언의 영’은 우리를 강하게 해주고 격려해주며 위로해주는 예수님의 말씀을  [HS께서 깨닫게 해 주심따라] 내가 예수님을 대신해 나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예수의 증거’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시편 119편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 ‘증거’라고 했다. 또한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예수의 증거”는 예수님께 대해 증거하는 성경을 가리킨다. 
그리고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예언은 성경의 예언을 가리킨다.
따라서 “예수의 증거는 예언의 영”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성경을 (풀어 가르쳐 깨닫게 하심으로 회개에 이르게 하시는 HS)가리키는 것이며, 그 성경을 예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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